Home LOGIN

회원로그인

ID/PW 찾기회원가입

Favorite

55. 추회록(追悔錄)

2016.02.29 16:28

aesan 조회 수:851

추회록(追悔錄)

예전 소동파(蘇東坡)란 철학자(哲學者)가 말하기를 나는 명궁(命宮)이 마갈(魔喝)에 있다고 하니 그는 일생(一生)을 통()하여 한번도 평화(平和)한 날이 없고 매일(每日) 마갈(魔喝)의 혹독(酷毒)한 경험(經驗)을 만났었다. 나는 그런 철학자(哲學者)와 같은 학식(學識)도 없고 사업(事業)도 없었다. 다만 주님을 위하여 북관(北關)에 파송(派送)을 받아 전도여행(傳道旅行)을 갔다가 청진역(淸津驛)에 내릴 때부터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 고통(苦痛)을 피하려면 그날부터 나의 전도직(傳道職)을 그만두어야겠는데 예전 주님이 시험 받으신 것을 생각하고 참아보자고 한 것이 아무 성공도 없이 죽도록 고생만 당()하였다.

 

오늘 와서 왕사(往事)를 생각하니 너무 급진적(急進的)으로 전도(傳道)를 경영(經營)한 것이다. 8년간에 교회 오처(五處)를 세웠으니 이것은 주님이 이 어두운 곳에 교회를 설립(設立)하여 마국(魔國)을 멸()하려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첫째 안흥석(安興錫)의 부허(浮虛)한 열심만 보고 그 내용이 든든치 못한 것을 모른 것이 나의 실수이고 그 다음은 최주경(崔柱景)의 음험(陰險)한 것을 알면서 그를 이용(利用)하여 성공해 볼까 생각한 것이 잘못이다. 그 후에 최주경(崔柱景)의 범죄(犯罪)가 심함으로 교회에 광고(廣告)하고 출교(黜敎)를 선언(宣言)한 후에 교회가 잠잠하여졌다.

 

그 다음은 경성교회 이들의 말을 들어보니 교회에서 무조건(無條件) 한목사(韓牧師)를 반대(反對)하는 것이라. 한목사(韓牧師) 성질이 강직한 사람이요 설교도 능한 목사라. 그 이유를 물으니 나도 잘 모른다고 하여튼 그 교회에 있기 어렵다. 무조건 나더러 오라는 것이다. 좀 생각해 보자고 하고 돌아왔다. 그 교회를 아무나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없어 한목사(韓牧師)는 청진(淸津)으로 오게 할까 하였다. 그때 나의 잘못은 그 내용을 더 자세히 알고 갈 것을 알아보지 않고 간 것이 잘못이다. 다만 교회 한 곳이라도 잃어 버릴까 하고 간것이 잘못이다.

 

나는 경성(鏡城) 오기로 작정 중이다. 그때 청진(淸津) 안흥석(安興錫)씨가 자기 맘대로 홍종숙(洪鍾肅) 목사를 청하여 교회를 주장(主張)하였더니 그 후에 80여명 교우가 다 흩어지고 교회가 비게 되었다. 나는 경성(鏡城) 가서 주재(駐在)하여 있는데 며칠 지난 후에 보니 교회가 이상하다. 기도하다 뛰는 사람, 넘어지는 사람, 웃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전부 미신행동이다. 지금 보니 한국보(韓國補)씨 배척이 여기에서 시작된 줄 알았다. 여러분이 은혜가 넘쳐 감격하여 된 줄 알지만 바울이 유두고를 살리고 부탁하기를 종용히 하라고 부탁했습니다. 여러분이 은혜가 넘칠 때 조용히 기도하시고 기다립시오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김목사(金牧師)는 신이 없는 사람이다 한다. 이 미신운동이 청진(淸津) 당파싸움보다 더 어려웠다.

 

일년(一年) 지난 후에 나는 신종악(申鍾岳)씨에 말하기를 나는 교회 없는 어항(漁港)으로 가겠으니 이 교회는 신장로(申長老)가 맡으시오 하고 곧 어항(漁港)으로 왓다. 나는 경성(鏡城)을 떠나 올 때 신종악(申鍾岳)씨는 즐거운 맘으로 허락하여 경성(鏡城)에서 매삭 40원을 드리겠다 하더니 내가 그것을 믿은 것은 아니지만 한푼도 받지 못하고 나는 생활비(生活費) 부족으로 고생을 많이 겪었다.

 

그 후에 안흥석(安興錫)씨가 경성교회(鏡城敎會)에 무슨 편지를 보냈다고 야단이 났다. 경성교회(鏡城敎會) 김광호 전도부인(傳道夫人)이 병()으로 고생한다 해서 기별이 있기로 갔다. 경성역(鏡城驛)에 막 내리니 주을교회 속장부인(屬長夫人)이 나더러 이르는 말은 경성 전도부인(傳道夫人) 김씨가 떠났다고 한다. 나는 깜짝 놀라 갔더니 신종악(申鍾岳)씨는 불문곡직(不問曲直)하고 욕설을 퍼붓는다. 무슨 일이요 물으니 당신이 안흥석(安興錫)을 시켜 편지하기를 김전도(傳道) 부인(夫人)을 쫓아 보내라 하였지. 나는 금시초문이요 나는 그런 일 없다 대답하고 내가 경성서 얼마나 잘못하였기에 오늘 신장로(申長老)에게 이런 꾸지람을 듣게 되었으니 내 잘못이오 하고 이왕 간지라 장례를 지나고 곧 돌아오고 말았다. 경성교회 미신운동은 김씨로 인하여 된 것인데 그가 며칠 전에 주을에 목욕탕에 가서 목욕하고 와서 별안간 병()이 나서 폭사하였다. 섭섭하다.

 

그 다음은 노춘섭씨가 더욱 불쌍하다. 김전도사(金傳道師)가 병사(病死)한 후 노씨 집안에 큰 화()가 일어났다. 그 딸이 죽고 사위도 죽고 아들은 도적으로 잡혀 징역하고 노씨는 고향에 있을 수 없어 타처(他處)로 이사하고 그 보던 교회는 없어졌다. 그 미신(迷信)의 화()를 권고하면 나로 무신론자(無神論者)라 배척(排斥)하니 말도 할 수 없으니 어찌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다 자복기도할 뿐이다.

 

그 후에는 어항(漁港)에 있는 중 청진교회(淸津敎會)를 사려고 주선(周旋) 중 고아원(孤兒院) 안흥석(安興錫)씨에게 빼앗기고 불민(不敏)을 회고(回顧)하였다. 그 후에는 또 안흥석(安興錫) 방해로 적지 않게 고생을 당()하였다.

 

병마(病魔)가 침입하여 죽음 외()에는 아무 계책이 없었다. 집에 아들들이 기별을 듣고 장사지낼 수의까지 가지고 왔다가 다행히 장연옥 속장(屬長)의 소개로 침의(鍼醫)를 데리고 와서 침을 맞고 다시 살아났고 그후에는 연달아 일본경찰(日本警察)의 침해(侵害)가 심하였다. 말을 들으니 경찰서에서 비밀문서(秘密文書)가 발현(發現)되었는데 기독교내(基督敎內) 모모(某某) 인물(人物)들을 다 죽이기로 결정하고 일자(日子)는 오는 815일로 정()하였다. 물론 내 이름도 그 명단(名單) 속에 들었다. 장로교(長老敎) 목사들은 비밀히 상경(上京)한 이도 많았다. 그러니 나는 어찌할고. 나는 교회를 지키고 죽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랬더니 금 23일부터 미국비행기(美國飛行機)가 날라 오고 소련군이 상륙(上陸)하여 항내(港內)가 불 천지(天地)가 되어 모두 피난(避難)을 목적하고 달아나는 판이다. 피난(避難)도 어렵지만 일본(日本)경찰의 죽음을 면하였다. 한 도적이 가면 또 한 도적이 온다는 셈으로 지금(至今)은 소련군(蘇聯軍)이라 했더니 한편 들으니 소련군은 조선 사람을 죽이지 않고 일본인만 죽인다 하여 모두들 나는 일본인이 아니라는 표로 모두 양복을 벗고 조선옷을 갈아 입는다.

 

우리 식구는 김길남(金吉南) 장로 식솔(食率)과 동행(同行)하여 부장현(富章現)에 사는 박종건(朴鍾建)씨 댁()으로 가기로 결정하고 갔다. 가다 고생하여 죽을 뻔한 것을 말할 것도 없다. 박종건씨 댁에서 며칠 있다가 청진(淸津)서 기별오기를 피난(避難) 간 사람들은 다 돌아오라는 말이 있다. 가지고 간 양식도 다하여 더 있을 수 없는 고로 김길남(金吉南) 가족과 동행(同行)하여 돌아오는데 길에 죽은 시체가 즐비하게 누워 있다. 이런 고생이 다 자초(自招)는 아니지만 그간에 나의 잘못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