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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해주역 도착 소지품 압수당함

2016.02.29 16:21

aesan 조회 수:1197

그 이튿날 오후 2시에 차를 타고 사리원(沙里院)을 오니 이미 날이 저물었다. 삼십팔도선(三十八度線)이 가까워서 그런지 조사(調査)가 심하다. 또 무슨 변()이 없을까 하였더니 다행히 무사통과(無事通過) 되어 여관안내자(旅館案內者)의 인도로 역전(驛前) 강산여관(江山旅館)에 들었다. 차에서 내릴 때부터 어느 여생(女生)이 처()를 따라 같이 들어왔다. 우리 부처(夫妻)를 부모(父母)라고 하겠다 한다. 어린 여생(女生)이 단신(單身)으로 여행(旅行)하는 것을 보니 위험(危險)이 불무(不無)하다. ()는 보기 가엾어서 데리고 들어왔다.

 

그날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 5시에 해주차(海州車)를 탔다. 그 여생(女生)도 같이 탔다. 차내(車內)에서 신천재령(信川載寧) 넓은 들을 내다보며 온다. 이앙(移秧)이 한참인데 아직 물이 없어 농민(農民)들이 하늘을 쳐다보며 춘우(春雨)을 바라는 것 같다.

 

상오(上午) 10시에 해주역(海州驛)에 도착(到着)하니 때는 세우(細雨)가 내리는 때라. 철도(鐵道) 보안대원(保安隊員)들이 승객(乘客)을 모아놓고 반시간(半時間) 동안이나 조사(調査)를 마치지 못하고 함경(咸鏡) () 평안(平安) 양도(兩道)에서 온 사람 중 공무여행자(公務旅行者)를 제외(除外)하고 전부 철도보안서(鐵道保安署)로 데려가는지라. 그 곳에 가서도 세우(細雨)를 그냥 맞으며 광장(廣場)에 세워 두었다가 한사람씩 불러 들여 취조(取調)하는 통에 아무 죄() 없이 다리가 떨리는지라. 우리 부처(夫妻)를 불러 들여다 세워놓고 아무 죄()도 언명(言明)하지 않고 거짓말 한다 하며 소지금품(所持金品)과 소지물품(所持物品)을 전부 압수(押收)하고 또 성경(聖經)과 십자표(十字表)를 압수(押收)한다. 그리고 나아가 기다리라 한다. 나온 후 처()는 혼자 취조(取調)를 받는다. 역시 소지물(所持物)과 금품(金品)을 전부 압수(押收)하고 일졸(一卒)를 불러 철도지정여관(鐵道指定旅館) 즉 동양여관(東洋旅館)으로 보내주어 왔다. ()는 소지품(所持品)을 전부 빼앗기고 기가막혀 앉아 우니 일병(一兵) 와 하는 말이 왜 우느냐. 이곳이 물건을 빼앗는 곳이 아니오 돌려준다 하며 공갈(恐喝) 하는지라.

 

이 여관은 이름이 여관이나 실은 감옥(監獄)이나 다름없다. 출입(出入)을 감시(監視)하고 여객(旅客)의 행동(行動)을 일일히 주시(注視)한다. 비는 쏟아지고 황장로(黃黃長老)에게 기별하여야 하겠고 또 교회도 가보아야겠다. 나는 처()와 같이 점심을 사먹는다고 말하고 여관을 나와 비를 맞으며 돌아 다니였다. 감리교(監理敎) 예배당을 찾아 목사 조창석(趙昌錫)씨를 만나 내가 가졌던 돈 천원을 꺼내여 맡기고 돌아오니 방()은 냉한(冷寒)이고 비 맞은 옷을 입은지라 추위를 견디지 못하여 자연 몸이 떨린다.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마치고 잠깐 기도한 후에 자리에 누웠다. 옆방()에도 같이 온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은 모두 조사(調査)라고 하여 죄()없이 구류(拘留)를 당()하는 것 참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원망(怨望)같이 말한다.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들은 이렇게 의미 없이 백성을 다스리니 공산주의(共産主義) 천지(天地)가 된다면 우리 백성들은 다 어육(魚肉)이 된다고 하여 미리 두려워한다.

 

밝은 날에 처()는 본서(本署)에 가서 이유를 물으니 조금 후에 오라 하여 또 가서 물으니 또 조금 후에 오라고 한다. 조금 후란 말은 한()이 없는 말이다. 그럭저럭 또 날이 저물었다. 옆방에 있는 윤모(尹某)는 상삼봉(上三峯)에서 장사 차 왔다가 소지금(所持金) 사만오천원을 빼앗기고 기다린다. 집에 있는 식구(食口) 십여명(十餘名) 양식(糧食)도 없는 것을 보고 왔다. 초조(焦燥)해 하는 모습을 보기 민망(憫惘)하다. 우리 일행(一行) 이십(二十)여명(餘命)이 다 조사(調査)하게 붙들려 고생 중이다. 또 밝은 날 아침에 처()는 또 서()에 가보고 이유를 물으니 또 조금 있다 오라 한다. 또 작일(昨日) 모양으로 밀수자로 자꾸 연기(延期)할 작정인 모양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니 그렇게 차일피일(此日彼日)하다가 기다리다 못하여 그저 도망하는 이가 절반(折半)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빼앗은 물품(物品)과 금품(金品)이 하루에도 수십만원 가량이다. 물품(物品)은 창고(倉庫)에 산같이 쌓아 놓고 금품(金品)은 금()구에 차도록 쌓아 두었다. 이것은 백주행도(白晝行盜)라 할 수 있다.

 

마침 진성애(陳成愛)씨의 딸 김성일(金成一)이 찾아왔다. 그런 조사(調査)한 일을 말하였더니 성일(成一) 양이 직접(直接) 본서(本署)에 들어가 우리의 사정(事情)을 상술(詳述)하고 다소(多少) 금품(金品)을 찾아왔다. 그리하여 그날 감리교회 예배당으로 찾아가서 직접 황장로(黃長老)도 만나고 하룻밤을 그 곳에서 쉬었는데 조목사와 김동규 전도부인(傳道夫人)의 후대는 말할 수 없이 감사하다.

 

그 이튿날 어느 장로교(長老敎) 집사(執事) 한사람을 만나 무사히 도항(渡航)하기를 의뢰(依賴)하고 행리(行李) 두개도 찾고 그날 캄캄한 밤에 용당포(龍塘浦)로 나아가기를 약속(約束)하였다. 낮에 황장로(黃長老)와 같이 산보(散步)하며 시내(市內)를 관람(觀覽)하다. 수양산(首陽山) 아래 청성묘(淸聖廟)를 찾아가니 교변(橋邊)에 비()가 서있는데 백세청풍(百世淸風)이란 사대자(四大字) 새겼다. 묘내(廟內)에 들어가 보니 이 고을 선비들이 춘추(春秋)로 백이숙제(伯夷叔齊) 양현(兩賢)에게 향화(香火)를 받들다가 요사이는 토지(土地)를 다 뺏기고 향화(香火)를 받들지 못한다고 어느 고노(古老)는 강개(慷慨)한 어조(語調)로 이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