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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연백해안 도착

2016.02.29 16:26

aesan 조회 수:828

연백해안(延白海岸) 정박

그 이튿날 아침 4시에 연백해안(延白海岸)에 배가 정박(碇泊)된다. 선주가 경계선에 왔으니 마음을 놓으시고 배에서 내리시오. 짐짝을 운반(運搬)하는 인부(人夫)가 해상(海上) 얕은 물을 건너보기 시작한다. 흔들리는 선상에서 급히 황종우 장로(黃長老)에게 눈물겨운 편지를 썼다. 그는 시간과 노력과 물질(物質)까지 희생(犧牲)하며 이 노물(老物)을 보호(保護)하고 이 위험(危險)지대(地帶)를 끝까지 밟고 도와주니 참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편지를 쓰다가 손이 떨리고 눈물이 흘러 중지(中止)하였다. 편지를 뱃사람에게 부치고 짐짝 운반(運搬)하는 인부(人夫)를 따라서 역시 얕은 해수(海水)로 건너오는데 처()를 붙들고 온다. 운반(運搬) 인부(人夫)가 떼를 지어 오는데 누가 우리 짐을 가지고 가는지 알 수 없어 몹시 염려하였는데 인부는 해안(海岸) 조그마한 여관집에 짐을 갖다놓고 운임(運賃)을 청구(請求) 하는데 짐 두짝에 삼백원이다. 곧 지불(支拂)하고 처()는 수질(水疾)이 맞지 않아 온실(溫室) 아랫방에 쓰러진다.

 

팔학주재소(八鶴駐在所)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마치고 또 짐을 운반(運搬)하여 팔학(八鶴) 경관주재소(警官駐在所)에 가서 짐짝을 검사(檢査)를 받아야 한다고 주인은 주의(注意)를 준다. 해안(海岸)에서 내린 사람들이 구름같이 짝을 지여 행진(行陣)하는 모양이 참 가관(可觀)이다. 모두 북선(北鮮)서 살 수 없어 남선(南鮮)으로 가는 사람들이다. 날마다 이렇게 밀려온다 하며 이곳 뿐 아니라 삼팔경계선(三八境界線)을 두고 곳곳마다 서해안(西海岸)부터 동해안(東海岸)까지 이렇게 인가(人家)가 몰려 건너오니 북선(北鮮)은 경제파멸(經濟破滅)보다 인민(人民) 이산(離散)으로 유지(維持)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해안(海岸)에서 팔학(八鶴)까지 운반비(運搬費) 350원을 지불(支拂)하였더니 어느 농민(農民)은 부처(夫妻)가 와서 남자는 지고 여자는 이고 짐을 운반(運搬)하여 준다. 그 부처(夫妻)의 결심은 이런 경제혼란(經濟混亂)도 그리 무섭지 않을 것이다. 팔학주재소(八鶴駐在所)에 와서 이곳은 삼팔이남(三八以南)이라 마음 놓고 왔는데 또 무슨 조사(調査)?”고 경관(警官)에게 물으니 미안(未安)합니다. 규칙(規則)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며 대답한다.

 

청단역(靑丹驛)

팔학(八鶴)에서 청단역(靑丹驛)까지는 사람도 타고 짐짝도 싣고 하는 자동차(自動車)를 이용(利用)하는데 운반비(運搬費) 오백원을 지불(支拂)하였다. 이렇게 길에 돈을 늘어놓고 오는 셈이다. 거진 두시간이 지나 청단역(靑丹驛)에 도착(到着)하니 시간은 정오(正午)이다. 어느 청년 한사람이 나와 연설(演說)를 시()하는데 매우 열렬(烈烈)하다. 삼팔선(三八線) 넘어오는 인가(人家)를 위로(慰勞)하는 말이고 이곳에서도 짐짝을 검사(檢査)하는데 그 청년은 이 곳 청년회(靑年會) 총무(總務)이다. 연설(演說)중에 오늘은 차를 타지 못하고 내일(來日) 오전 6시 차를 탈 수 밖에 도리(道理)가 없다하고 약간의 비용(費用)을 내면 우리 청년회(靑年會)에서 짐을 다시 묶어 준다하며 표까지 사준다하여 우리의 행리(行李)와 숙박소(宿泊所)까지 전부 위임(委任)하였다. 어찌 다행한지 감사하다.

 

여관에 와서 아픈 다리를 좀 쉬었다. 오늘이 주일(主日)인데도 불구(不拘)하고 아니 올수 없는 고로 예배도 보지 못하고 이곳까지 왔다. 저녁밥을 먹은 후에 시골 감리교회(監理敎會)를 찾아가서 예배 보고 목사를 물으니 조피득(趙佊得)이라 한다. 오늘 예배 헌금(獻金)으로 일백원을 주고 돌아오다.

 

아침에 여관밥을 먹을 수 없어 숙박비(宿泊費)를 회계(會計)하여 주고 곧 정거장(停車場)에 나왔다. 마침 해주(海州)에서 온 청년학생이 있어 행리(行李)를 그 학생에게 맡기고 우리는 먼저 차에 올랐다. 차는 뚜껑도 없는 짐차이다. 짐짝이나 다름없이 차내(車內)에 늘어 앉아 아침의 찬바람을 쏘이며 동()쪽을 향()하여 주파(走破)한다. 야색(野色)이 창백(蒼白)하여 밖을 내다보니 어느 곳은 물이 고여 있고 어느 곳은 이앙(移秧)을 한참 옮기는 중이다. 괴탄(塊炭)이 왕왕야중(往往野中)에 퇴적(堆積)한 것을 보고 어떤 사람에게 물으니 연백(延白)의 소산(所産)인 토탄(土炭)이올시다. 연료(燃料)없는 이곳에서는 이 토탄(土炭)으로 연료(燃料)를 대용(代用)한다고 그 산지(産地)는 전답(田畓) 중 깊은 곳에 있어 논바닥을 깊이 팔수록 토탄(土炭)에 달한다고 한다.

 

연안읍(延安邑) 부근(附近)에 오니 안명옥(安鳴玉)양이 와서 인사(人事)한다. 부군(夫君)과 같이 연안읍(延安邑)에 와서 병원사무(病院事務)를 보고 있다 하며 조신일(趙信一) 목사가 이번 연백읍(延白邑)교회에 오셔서 일주간(一週間) 부흥회(復興會)를 인도하시고 지금 상경(上京)하시는 중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