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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양집사의 간증

2015.10.12 10:23

aesan 조회 수:985

양집사의 간증


원하(元下) 1속에 있는 양한순(梁韓順) 집사(執事)의 이야기를 듣고 심장(心臟)이 서늘하였다. 그것은 이곳에 미가(米價)가 태고(太高)하여 다솔성구(多率省丘)하고 비소(粃逍)이 심난(甚難)한 고로 양집사(梁執事)는 쌀값이 좀 싼 곳을 찾아 평북(平北), 신의주(新義州) 등지(等地)에 여행(旅行)하기로 작정하고 떠났다.


평양(平壤)서 신의주(新義州)로 가는 차중(車中)에서 어느 미지인(未知人)이 자리를 비어 주며 여간 친절(親切)하게 구지 않는다. 마음이 감사한 끝에 그 사람은 엿 한 개를 주며 먹으라고 권한다. 처음에는 사양(辭讓)하였으나 너무 친절(親切)하게구니 그 엿을 받아먹게 되였다. 먹은지 수십분(數十分) 후에 목이 타오르며 물이 먹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어느 정거장(停車場)에 내려 물을 싫컨 먹고 다시 차에 오르니 그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정거장(停車場)에 가서 또 물을 마시는 중 정신(精神)이 없어지고 목에 피가 올라오기 시작하여 그 후로는 세사(世事)를 알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 후에는 몸이 정거장(停車場)에 있지 않고 어느 철로선상(鐵路線上)에 놓여 있는데 철도경비대원(鐵道警備隊員)에게 발견(發見)되여 끌고 사무실(事務室)로 데리고 가서 힐문(詰問)이 시작(始作)되였다. 그 때 양집사(梁執事)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횡설수설(橫說竪說)이고 다만 돈 팔만오천원을 내어 놓으라고만 소리를 질렀다. 철도원(鐵道員)들은 무슨 영문(營門)도 모르고 미친놈이라 취급(取扱)하였다.


그때 양(梁)집사(執事)는 집에서 떠날 때 돈 팔만 오천원을 가지고 갔었는데 도적은 이것을 알고 빼앗으려고 이런 흉계(凶計)를 만든 것이다. 양(梁)집사(執事)는 그런 중독(中毒)에 실진(失眞)되였으나 돈 팔만오천원은 가족(家族)들의 생명(生命)인 고로 이것만은 생각에 간절하였던 것이다. 이때 사람을 만나는 대로 돈 팔만오천원을 내라고 욕설(辱說)을 퍼부었다. 서원(署員)들을 만나도 그 말 뿐이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다. 신의주(新義州)라 하니 그 역(驛)에서 신의주(新義州)로 보내주어 신의주역(新義州驛)에 하차(下車)하였다.


그런 중에도 교회를 연상(聯想)하게 되었다. 다행하게 우리 감리교(監理敎)를 찾어 간 모양이다. 그 교회의 목사가 양집사(梁執事)를 보고 말을 횡설수설(橫說竪說)하고 종작(鍾酌)이 없지만은 믿는 사람인 듯하여 주택에 영접(迎接)하여 숙식(宿食)을 도와주고 그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물으니 역시 돈 이야기를 정거장(停車場)에 가서 또 돈 팔만오천원을 너희들이 가져갔으니 내여 놓으라고 야단을 쳤다.


그 역원(驛員)들은 눈이 둥그래지며 무슨 소리냐고 묻는다. 내 돈 팔만오천원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그 역원(驛員)들이 짐작에 이 사람이 돈을 잃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고향이 어디냐고 묻고 차를 태워 보낼 터이니 고향(故鄕)으로 가라 부탁(付託)하고 내일(來日) 아침에 다시 오라한다. 양집사(梁執事)는 차차 정신(精神)이 돌아 목사 주택에 돌아와 자고 그 이튿날 떠날 때 그 목사는 돈까지 오백원 주어 역(驛)에서 기차(汽車) 타는 증명을 얻어 가지고 집을 떠난지 근 일주일 만에 돌아오니 이것이 꿈인지 생시(生時)인지 지금도 정신(精神)이 희황하다.


우리 직원(職員)들 가운데 간증(干證) 겸 이야기를 하여 모두 놀래였다. 그러나 지금 양집사(梁執事)는 돈 잃은 것은 생각이 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한 생각뿐이라고 이번 살아온 것은 전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간증(干證)한다. 우리 직원(職員) 일동도 아멘하여 죽은 형제를 다시 만난 듯이 감사(感謝祈禱)를 드렸다. 이런 도난(盜難)의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이고 또 생명(生命)까지 빼앗긴 일이 부지기수(不知其數)이다.


지난 3월 10일부터 모스크바 사상회의(四相會議)가 열렀으니 조선문제(朝鮮問題)와 세계문제(世界問題)가 순조(順調)로히 잘 진행(進行)되기 위하여 교우 일동(一同)은 날마다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