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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69. 실패를 돕는 자(助失敗者) / 마가복음 9장


儒者釋神意曰 傾者扶栽者培, 此豈當解耶? 今看吾主行事, 可知神意, 決非傾扶栽培也. 至於人力所不及處, 施能使之成事也. 彼得沒海時拯之, 五千在曠野時食之, 由此觀之, 神意純愛而已也. 人於敗時易觀其惡, 興時易觀其善. 然神則不然, 不念其善惡純愛而已. 今門徒在山下,爲人祈禱失敗, 不思其失敗之由. 徒相紛爭, 主下山助之勸使祈禱, 然則吾人之信仰失敗, 在不力祈禱. 人於空間及時間, 無不受制限者, 假如王者命將出戰于千里之外. 而戰敗則王聞報當助其將, 而地遠不能送兵, 則將敗亡而已也. 此時何人能助力乎? 曾聞闕內有火則燒失而已, 何也? 如欲滅火, 則開,重重之門, 而經各司之人以後, 可出軍救火, 則必經數時間以後可矣. 其間屋已燒盡, 今門徒不爲空間所阻, 不爲時間所制. 而使兒盡空間之力而至, 又使兒盡如金之時間, 徒增苦痛, 前愈而今不愈, 前成而今不成, 此何故也? 此時徒之失敗, 在不思自己如何人, 前祈今不祈, 祈禱之心, 漸次薄弱者, 在累自己云者, 能有力故也. 由此對人生驕, 遇事輕易, 不敗何爲也? 譬如衡平, 一高一低, 己高則主低, 己低則主高, 阿伯(아브라함)之獻子以此也. 病而思主, 愈則不思. 無子而思主, 有子則不思. 貧而依主, 富則不依. 欲得醉而依主, 得則背, 故主曰 盡心盡力云者何也? 司徒有力也. 故保羅曰 何物能間我之愛乎? 人於失敗時必生妄念. 必生怨讟, 愚者必禱于山川之神, 淫祀在其心, 利賽亞指此等人曰, 犯淫者云. 其次主倡無神論, 妄行無忌, 以爲神者, 助有力者, 惟以養力爲主, 譬如逆臣陰蓄不臣之心, 陰養士馬, 以爲後圖, 則所謂力者, 皆出于王者, 至於衣食, 皆王之所賜, 其臣妄以爲吾有而陰養之, 則得力乎? 決不可爲也. 更不如順其上而得上之力. 然則何事不成也? 今門徒失敗, 有許多錯誤, 一門徒無力, 而使雙有苦痛. 由此觀之, 在上者失敗, 故其苦痛在赤子之民也. 赤子之安, 在指導者, 今日最貴者指導者也. 譬如艦長不識航路而妄行, 則船中之人十生九死. 父母不良而子女苦, 敎師不善而生徒苦, 官吏不良而人民苦, 故在上者常洞洞燭燭, 書曰 天乃錫禹洪範九疇, 自古聖人一何有忘上帝者乎? 以色列之王者, 及祭祀等, 信則國安, 背則國危, 舊約昭記之. 其次門徒失敗, 故世人輕易之, 以主之敎會爲無益於世, 今日敎會在四面楚歌. 中國在核心, 而外無可觀之儀, 內實無可恃之力, 此何故也? 敎役不遵主道, 信徒不守主訓, 所謂敎會者, 反不如社會, 四方紛爭起焉. 敎徒互相毆鬪, 又倡唯物主義, 信則能飽暖乎, 由是而敎會日益墜落, 謗訕彌興, 無一分靈的價値, 此何故? 敎會無祈禱, 又無靈的恩惠也. 吾等信主, 望物質而信乎? 主道在物質乎? 求物往市, 欲得財興販可也. 何嘗以信仰欲得物質乎? 近日有共産主義, 此皆政治制度也. 非敎會制度也. 敎會則敎會也. 社會則社會也. 何嘗混同而言之也? 加利海上幾乎舟沈, 而主不顧乎? 主曰 少信者乎? 何有疑惑乎? 此時門徒之心, 內有疑惑綿弱無能, 主助之. 英國詩人曰 顚者欲起, 眠者欲醒云, 吾人之失敗, 如秋天之落木, 又如敗軍之將, 徒呼泣悲憤無益矣, 吾人常言若在甲午以前, 不行今日之事云. 甚矣人之錯誤也. 前日歇價賣土者, 見今日之土價高貴, 悔之曰 我於前日有今日之知識, 則不賣此土云, 大邱安牧師使金長老買石事可爲證也. 世情如許變易, 物情又如許不同也. 然惟主道則古今不變, 依之者興, 故主曰 經之言一點一劃, 不變云. 敗於眞理者, 以眞理助之, 然敗於罪惡者, 不以罪惡助之也.


유교를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해석하기를 기운 것은 붙들고, 심은 것은 북돋운다라고 하는데, 이게 어찌 마땅한 해석이겠습니까? 지금 우리 주님의 행사를 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결코 기운 것을 붙들고 심은 것을 북돋우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이르러 능력을 발하여 그것을 성사시켜 줍니다.

베드로가 바다에 빠졌을 때 건져주셨고, 5천 명이 광야에 있을 때 먹여 주었으니, 이로써 본다면 하나님의 뜻은 순전한 사랑일 뿐입니다. 사람은 실패했을 때 그의 악한 점을 쉽게 볼 수 있고, 일어섰을 때는 그의 착한 점을 보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아니하여 선악을 생각지 않고 순애(純愛)로 사랑하셨습니다.

지금 제자들이 산 아래 있으면서 남을 위한 기도가 실패했는데, 그 실패의 원인은 생각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서로 분쟁하자 주님께서는 산에서 내려와 그들에게 기도를 권했습니다. 그런즉 우리 인간이 신앙을 실패하는 것은 기도를 힘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공간과 시간에서 제한을 받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가령 임금이 장수에게 천리 밖으로 전쟁하러 보냈다고 합시다. 전쟁에 실패하면 임금은 보고를 듣기가 바쁘게, 그 장수를 도와야 하는데 거리가 멀다하며 군사를 보낼 수 없다면 장수는 패전하게 됩니다. 이때, 누가 능히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까?

일찍이 듣자니, 대궐 안에서 불이 나면 다 타버리고 만다고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불을 끄려고 하면 겹겹이 닫힌 문을 열어야 하고, 각 기관을 경유한 뒤에야 군대가 나와서 불을 끌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자면 두어 시간은 지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에 대궐은 다 타 버리겠지요.

지금 제자들은 공간의 방해와 시간의 제약도 받음이 없으나, 아이들로 하여금 공간적인 힘을 다하여 이르게 하고, 또 금과 같이 소중한 시간을 다하도록 했지만, 공연히 고통만 더했습니다. 전에는 나았었는데 지금은 낫지 않고, 전에는 이루었었는데 지금을 이룰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 이때 제자들의 실패는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지 않는데 있었습니다.

전에 기도하던 사람이 지금은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는 마음이 점차 박약해졌습니다. 허물이 자기에게 있다라고 이르는 자는 힘이 있기 때문인데, 교만으로 인해서, 일을 만나면 쉽고 가볍게 생각하니, 실패하지 않고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유하자면 저울대가 한쪽이 높고 한쪽이 낮은 것 같아서, 높아지면 주님이 낮게 하고 낮아지면 주님이 높여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을 바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병들면 주님을 생각하다가 병이 나으면 주님을 생각지 않고, 자식이 없을 때는 주님을 생각하다가 자식을 낳으면 생각지 않고, 가난하면 주님에게 의지하다가, 부자가 되면 의지하지 않으며, 술 취하고 싶어 주님을 의지하다가, 취하고 나면 주님을 등집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마음을 다 하고, 힘을 다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사도에게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무엇이 나의 사랑을 방해 하겠는가하였습니다.


사람이 실패하였을 때는 망령된 생각이 나고, 원망이 생깁니다. 어리석은 자는 산천의 귀신에게 기도하니 귀신에게 제사지내는 음사(淫祀)가 그 마음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사람들을 지적하여 말하기를 간음을 범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거리낌 없이 함부로 행하면서 신은 힘 있는 사람만 도와 준다고 말하며, 힘을 기르는 것을 위주로 삼고 있습니다. 비유해 보면, 역모를 꾀하는 신하가 남의 신하가 되지 않으려는 힘을 기르기 위하여 몰래 병사와 말들을 길러서 뒷날 배반을 도모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른바 힘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임금으로부터 나오므로 먹고 입는 것까지도 모두 임금이 내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하된 자가 망령되게 나의 소유라고 생각하며 몰래 힘을 기른다고 힘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다시 생각하여 윗사람에게 순종하고 윗사람의 힘을 얻게 되면 무엇이든지 이루지 못하겠습니까?

제자들의 실패에는 많은 착오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제자가 힘이 없게 되면 다른 제자에게까지 쌍으로 고통이 있게 됩니다. 이로 보건대, 위에 있는 사람이 실패하였기 때문에 그 고통이 벌거숭이 같은 백성들에게까지 미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이 편하게 사는 데는 지도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가장 귀한 것은 지도자입니다. 비유해 본다면, 배의 함장이 항로를 모르면 배 안에 탄 사람이 살아남기 힘듭니다. 부모가 어질지 못하면 자녀가 고통을 받고, 교사가 좋지 못하면 제자들이 고통 받으며, 관리가 불량하면 인민이 고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위에 있는 사람은 항상 조심조심하고 살피고 살펴야 합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하늘에서 우(禹)임금에게 백성을 다스리는 큰 법도인 <홍범구주(洪範九疇)>를 내려주셨다고 하였으니, 예로부터 성인들이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잊은 일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왕이나 제사장이 하나님을 믿으면 나라가 편안해지고, 배신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졌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에 명백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은 제자들이 실패하였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가볍고 쉽게 여기기를 주님을 믿는 교회가 세상에 무익하다고 합니다. 오늘 날의 교회는 사방에서 반대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처지에 빠져 있습니다. 중국이 핵심이 되고 있지만, 그 밖에는 볼 만한 의식들이 없습니다. 지금 교회 안에 믿을 만한 힘이 없으니 이는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교역자가 주님의 도를 따르지 않고, 교우들은 주님의 가르침을 지키지 않게 되니, 소위 교회라고 하는 곳이 도리어 사회만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방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신도들은 서로 때리고 싸우며, 게다가 유물주의(唯物主義)를 앞서서 부르짖고 있습니다.


신앙을 가지면 배부르고 등이 따뜻해 질 수 있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교회는 날마다 타락하게 되고, 헐뜯고 비방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 영적 가치는 조금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교회에 기도가 없고, 또 영적인 은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데 물질을 바라서 믿는다 하면 주님의 도가 물질에 있습니까? 물질을 구하려면 시장에 가야하고, 재물을 얻으려면 장사 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떻게 신앙으로 물질을 얻고 싶어 한단 말입니까?

근래에 공산주의(共産主義)가 있는데 이는 모두 정치제도이지 교회제도가 아닙니다. 교회는 교회이고, 사회는 사회입니다. 어찌 일찍이 혼동해서 말하였습니까? 갈릴리 바다에서 배가 거의 뒤집히려 할 때 주님이 돌아보지 않았습니까? 주께서 믿음이 없는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는가? 말씀하셨는데, 그 당시. 제자들의 마음속에 의혹이 있고 마음이 연약하고 무능하였기에 주께서 도우신 것입니다.

영국 시인이 이르기를 자빠진 자 일어나려고 하고, 잠자는 자 잠 깨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실패는 가을 하늘에 떨어지는 나뭇잎과 같고, 또 전쟁에 나가 패한 장수 같아서 그냥 울부짖고 슬퍼하고 분하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은 늘 말하기를 갑오경장 이전에만 있었더라면 오늘날 같은 일은 행해지지 못하였으리라고 합니다. 심하기도 하도다! 우리들의 착오여! 지난 날 헐값으로 땅을 판 자는 오늘날 땅값이 비싼 것을 보고 후회하기를내가 지난날에도 오늘과 같은 지식이 있었더라면 이 땅을 팔지 않았을 것이라하고 말입니다.

대구에 사는 안(安) 목사님이 김 장로를 시켜서 돌을 사게 한 일이 그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 물정이 이와 같이 변하여 바뀌고 또 물정이 이와 같이 똑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그 도를 의지하는 자는 흥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경>에 나오는 글자 한 점이나 한 획까지도 변함이 없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에 실패한 자는 진리로써 도와주어야 하지만, 죄악으로 실패한 자를 죄악으로 도와주어서는 아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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