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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65. 그리스도께서 세 번 나타나심(基督之三顯) / 히브리서 9:23-끝


夫愛有引力, 如太陽吸地球, 雖暫相分離, 有愛則必復合. 夫婦之離婚何故, 無愛故也. 吾主基督愛世人, 離寶座降世, 爲世人捨命, 其愛何等深厚, 且入墓復活亦愛也. 後世再臨, 亦不忘世也. 如父母離子遠離, 於心不忘其子, 必來觀子之所在處. 若子之所處不美, 則必携去乃已也. 主曰 我在處爾必往, 亦以愛故也. 古詩曰 故園長在目, 魂去不須招. 亦以愛故也. 吾等願見耶蘇 則主必來, 吾等願入天堂則主必導, 主之來世亦以此. 主雖在天堂, 猶不意罪世, 必復來見, 亦以愛故也. 保羅傳道各處而歸, 於心不忘, 復往巡視, 亦以愛故也. 人世之來來去去, 皆以愛故也. 經言基督三顯, 顯有或深意, 如仙家之三關, 佛之三昧也. 主亦以三爲顯也. 第一顯, 卽末世一顯, 代人贖罪, 神之最惡者罪也. 人亦最惡者罪也. 人能有力敵罪, 則神不必降. 然人甚軟弱, 不能敵罪. 經曰 人軟弱時, 基督死矣. 誠哉是言, 人犯罪, 不能自爲於世, 如癰病者之見逐, 又如稅吏之見排. 人各有末世, 勢如駑末, 不能自爲, 余兒澤永, 年前入獄, 時積雪滿山, 余負衾而往, 不見澤永而歸, 心甚悲痛, 而乃托之於主, 心始獲安, 年前尙洞, 鍾落數十丈之下, 時全德基在下, 鍾落直下, 則必不免粉身, 而鍾落于其傍. 人陷于罪惡, 心有苦痛, 見樂不樂, 見美不美, 大圍犯奸, 以帝王犯如是難赦之罪, 而乃自悔流淚自服後, 始獲安也. 人當極難之試驗, 如阿伯罕之獻子, 此時主必敎訓, 今朝鮮人, 當如此之苦試, 此時必有敎訓, 卽主顯現之時也. 不必徒怨, 不必徒恨也. 第二顯 神前一顯人於悔改之後, 所遇者何也, 哲學及修身書, 無非敎訓, 而皆無益於見神也. 孔孟雖賢, 不能導我入神國, 佛陀雖哲, 不能導我入天國. 我之不動心在見神, 神之於人, 落落難合, 有罪隔故也. 惟耶蘇導我見神, 自古見神者, 惟예수故, 信耶蘇者, 又能見之, 此不易之法也. 經曰 主今爲我祈禱云, 主顯于神, 爲我祈禱, 吾等崇拜往昔之英雄及聖賢, 此何益也? 先哲曰 畵之英雄, 不如腹中之英兒也. 誠哉是言, 嬰兒有希望, 而英雄已去, 仰慕徒勞已耳. 惟主更生于天堂, 爲我等, 至神前祈禱, 使我至神前也. 此時指敎人重生之時, 主不但祈禱也, 且降聖神, 慰藉敎人之心, 始信後若無聖神之導, 則不知信之道, 惟沓沓已耳. 然聖神一降, 則心始豁然, 如太陽一昇宇宙間, 黑幕盡爲捲去也. 此時喜樂無雙矣. 第三顯, 爲無罪受難者顯主也. 此未來之事也, 信主之後, 心有苦難, 至終得救也, 信徒在世, 受無理之謗, 又蒙無道之待遇, 經曰 忿心雖發, 無至犯罪云, 若遇惡待之, 則犯罪也. 聞謗亦謗, 聞詛亦咀, 聞怒亦怒, 在世已報其惡也. 在天無所報, 救濟亦然, 在世已受賞, 在天無賞云. 使人吹喇叭, 廣告其行善 報惡亦然, 在世不報, 則主必報之, 在世已報, 在天無報明矣. 요한 黙示曰 彼白衣人誰也? 天使對曰 彼多經患難之人也. 世人不信審判, 信有審判, 若無來世審判, 則亘古無罪受難者, 當何時伸寃也. 世多不公, 而神國甚公平, 經曰 爾寃勿報, 報寃在我云. 吾人當信此聖言, 可賴而安心行善, 勿落心可也. 不但報寃, 使我負義之冕旒. 永生于天國矣. 以上三顯, 可歷歷記憶, 如趙簡子之子, 誦簡得位, 仙有三關, 佛有三昧, 基督亦三顯, 保羅之三層天, 豈非指此意而言耶? 主以愛三顯, 不忘吾等, 主之來世, 世人不願釘殺, 主猶不怨, 敎人在世亦然, 世人皆不願基督敎, 甚欲撲滅, 而我學基督之愛, 不撓不屈可也. 有三顯, 更座順序則, 信贖罪而悔改, 其次重生成, 其次至天國永生也.


대개 사랑에는 인력(引力)이 있어서 마치 태양이 지구를 빨아 당기듯 합니다. 비록 잠깐 동안 서로 떨어졌다가도 사랑이 있으면 반드시 다시 합쳐집니다. 부부가 이혼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그리스도는 세상 사람을 사랑하여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내려 오셔서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두껍습니까?

무덤에 들어가셨다가 부활하신 것도 역시 사랑입니다. 후세에 재림하실 일도 역시 세상을 잊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떠나 멀리 갔어도 그 마음은 그 자식을 잊지 않고 반드시 자식이 있는 곳에 찾아옵니다. 그리하여 그 자식이 사는 곳이 좋지 않으면 반드시 데리고 가야 그것이 그칩니다.

주께서 이르기를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반드시 가리라고 하신 것도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고시古詩>에 이르기를 고향 동산이 늘 눈에 어려 [故園長在目], 영혼이 찾아 가거던 굳이 부르지 말라[魂去不須招]고 한 것도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보기를 원하면 주님은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천당에 가고 싶어 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인도해 줍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도 역시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비록 천당에 있으나 오히려 세상을 나무라지 않고 반드시 다시 오실 것이니, 이 역시 사랑 때문입니다.

바울이 각처에 가서 전도하고 돌아온 것은 그 마음에 잊지 못하는 것이 있어서 였으며, 다시 또 가서 순행한 것도 역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인간 세상에 오고 가고 하는 것들도 모두 사랑 때문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그리스도가 세 번 나타나셨다고 하니, 나타났다는 현(顯) 자에는 깊은 뜻이 들어 있으니, 마치 신선세계의 삼관(三關)과 같고, 불교의 삼매(三昧)와 같습니다.


주님은 3번 나타나셨습니다.

첫 번째의 나타남은 곧 말세(末世)에 한번 나타나서 사람들을 대신해 속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것은 죄입니다. 사람도 역시 가장 미워하는 것은 죄입니다. 사람이 죄와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면 하나님께서 내려오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매우 연약하여 죄와 맞설 수가 없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사람이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라고 하였습니다. 진실하도다! 이 말이여. 사람이 범죄 하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독한 전염병 환자가 쫓김을 당하듯이, 또 세리가 세상에서 배척을 당하듯이 버림을 받습니다. 각각 말세에 그 형세는 아주 둔한 말자[駑馬]이 되어 스스로 세상에 설 수가 없습니다.


나의 자식 택영(澤永)이 연전에 감옥에 들어갔는데, 당시 산에 눈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내가 이불을 지고 갔다가 택영이를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마음이 매우 비통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주님께 의탁했더니 마음이 비로소 안정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연전에 상동교회의 종이 수십 길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당시 전덕기 목사님이 그 밑에 있었는데, 종이 바로 떨어졌더라면 몸이 가루가 되는 것을 면할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종은 그의 옆으로 떨어졌습니다.

사람이 죄악에 빠지면 마음에 고통이 와서 좋은 것을 보아도 즐겁지 않고, 아름다운 것도 아름답지 않습니다. 다윗이 간음을 범하였는데 임금으로써 이와 같이 용서 받기 어려운 죄를 범하였으나 마침내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며 자복한 뒤에 비로소 안정을 얻었습니다. 사람은 극히 어려운 시험을 당할 때 마치 아브라함이 자식을 바치듯 하여야 합니다. 이 때 주님은 반드시 가르침을 주십니다. 지금 조선인은 이와 같이 고통스러운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이 때 반드시 있을 것이니, 바로 주님이 나타나실 때입니다. 그냥 원망만 할 필요도 없고 그냥 한탄만 할 필요도 없습니다.


두 번째 나타나는 데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한번 나타나신 것은 사람이 회개한 뒤라고 하였습니다. 만난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철학이나 수신서(修身書)가 교훈을 주는 책이 아님이 아니나 다 하나님을 아는 데는 도움이 없습니다. 공자, 맹자가 비록 현인이기는 하나, 나를 하늘나라로 인도해 줄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비록 훌륭하다 하더라도 나를 천국으로 인도 할 수 없습니다. 나의 움직일 수 없는 마음은 하나님을 보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하여 멀리 떨어져 있어 합치기 어려웠습니다. 죄가 가로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합니다. 예로부터 하나님을 본 자는 오직 예수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또한 하나님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바꿀 수 없는 법입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보이시며 나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지난날의 영웅이나 성인을 숭배하지만 이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옛 철인이 말하기를 영웅을 그리는 것이 뱃속의 영특한 아이만 같지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진실하구나! 이 말이여. 어린 아이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영웅은 이미 가버린 사람입니다. 우러러 사모해 봐야 쓸데없이 수고로울 뿐입니다.


오직 주님은 천당에서 다시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드리고,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이르게 합니다. 이때가 교인들에게 거듭나게 하는 때입니다. 주님은 단지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성령으로 강림하시어 교인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니다. 처음에 신앙을 가지게 된 뒤에 만일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신앙의 도리를 알지 못하여 오직 답답할 뿐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한번 강림하시면 마음이 비로소 확 넓게 터지어 마치 태양이 우주 사이에 올라 와서 검은 장막을 다 걷어 가버린 것 같아집니다. 이때의 기쁨과 즐거움은 무엇과도 짝할 수가 없습니다.


세 번째 나타나심은 죄 없이 고난을 받는 자를 위하여 주님이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이는 미래의 일입니다. 주님을 믿은 후에 고난을 받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신도가 이 세상에 있으며 무리한 비방을 받든지, 또는 도리에도 없는 대우를 받게 되었을 때, <성경>에 이르기를 분한 마음이 비록 나더라도 범죄에 이르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악으로 만나 악으로 상대하게 되면 범죄가 됩니다. 비방을 듣고 비방하든지, 저주함을 듣고 또한 저주하든지, 성나는 말을 듣고 성을 낸다든지 하는 것은 이 세상에 있으면서 이미 그 악한 일을 보복한 것이니, 하늘나라에 가서 갚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구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 있을 때 이미 보상을 받았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보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나팔을 불면서 그가 착한 일을 행하였다고 광고한다든지, 악한 일을 보조하는 일도 또한 이와 같아서 이 세상에서 갚음을 갚지 못하면 주님께서 반드시 갚아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이미 갚았으면 하늘에서 갚아주지 않을 것이 명백합니다.

요한계시록에 이르기를 저 흰 옷 입은 사람이 누구인가하니, 천사가 대답하기를 저들은 환난을 많이 겪은 사람들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심판을 믿지 않으나, 신앙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만일 내세에 심판이 없다면 예로부터 죄 없이 고난을 당한 자 어느 때 원통함을 풀겠습니까? 세상에는 불공평한 일이 많으나 하늘나라는 매우 공평합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너의 원통함을 보복하지 말라. 원통함을 푸는 일은 나에게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이 말을 믿고, 그 말에 따라 안심하고 착한 일을 행할 것이며 낙심하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다만 원통함을 보복해주는 일뿐 아니라, 나로 하여금 의(義)를 등에 지고 면류관을 쓴 뒤 천국에서 영생하도록 해 주십니다.

이상 3 가지의 나타남에 대하여 낱낱이 기억하였다가, 춘추전국시대 조간자(趙簡子)의 막내아들 무휼(無卹)이 대쪽에 새긴 훈계를 외우며 왕위에 나아가듯 하십시오.

선교(仙敎)에는 삼관(三關)이 있고 불교에는 삼매(三昧)가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에게는 또한 삼현(三顯)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삼층천(三層天)이 이것을 지적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3번 나타나시며 우리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 사람들도 원하지 않는 못 박혀 죽으심을 주님은 오히려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도 이 세상에서 또한 이와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원하지 않아서 심하게 박멸하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워서 흔들리지도 말고 굴하지도 않는 것이 옳습니다.


세 번 나타나심의 순서를 다시 정한다면, 속죄하고 회개하는 것을 믿는 것이고 그 다음은 생성(生成)을 중히 여기는 것이고, 그 다음은 천국에 가서 영생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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