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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한문과 한글번역 서평 - 전창희 박사

2013.10.12 20:16

aesan 조회 수:9006


전창희 박사

협성대학교 설교학 교수


한국 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예배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그 예배는 설교 중심의 예배로 뿌리내리고 발전되어져 왔습니다. 초기 선교사들이 가지고 들어온 복음주의의 신앙적 전통뿐만 아니라, 한국 초기의 말씀(성경 보급과 읽기) 중심의 선교 형태도 예배에 있어서 설교가 중요한 요소로 뿌리내리는데 중요하게 작용하였다는 것을 초기 선교사의 여러 기록들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교회 초기 설교들의 다수가 일제시대의 핍박과 한국전쟁의 혼란을 겪으면서 현재까지 온전히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몇 몇 목사님의 설교가 후세에 전해지고 출판되어 읽혀지고 있지만, 그 속에서 감리교 설교자들의 설교를 발견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한국 감리교회가 그리고 초기 감리교 설교자들이 한국 사회에 끼친 영향과 한국 교회를 세우는데 기여한 중추적인 역할을 생각해본다면 오늘날 우리가 보존하고 있는 소량의 자료들은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던 차에 애산 김진호 목사님의 설교집이 보존되었고, 그것이 번역된다는 소식은 한국교회, 특히 감리교회에는 참으로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본인이 서평자이기 때문에 누구 보다 먼저 애산 김진호 목사님의 설교집 무화과를 읽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하고 또한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무화과에 실린 설교들에 대해 설교학적으로 접근하기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설교는 절대적으로 구두사건입니다. 더군다나 이번 출판된 무화과 설교집의 한글 설교들은 원래 무화과 설교 노트에 기록되었던 한문으로 요약된 설교들로써 본래의 구두적 의사소통의 본질을 잃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원 설교자들의 원고라고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화과 설교집은 오늘날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강단의 현실에 도전하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귀중한 설교 자료로써 그리고 사료로써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화과 1집은 애산 김진호 목사님의 설교 외에 40여 선배 설교자들의 설교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설교들은 대개 짧게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 설교의 요약본들로 생각이 됩니다. 김진호 목사님께서 기록한 무화과 설교노트가 5권까지 있고, 기록연대가 1926년부터 1959년까지라고 하니, 1번 설교노트가 번역된 무화과 제1권의 연대가 1920년대에서 30년대쯤 되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이 시기는 한국 설교사에 있어서 조금 특별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한국 초기 설교자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들로 인식되었고 또한 시대는 설교자들에게 선각자가 되도록 요구하였습니다. 그들의 설교 속에는 신분사회의 몰락, 국권의 상실, 일제의 탄압, 그리고 민족해방의 과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919년 독립운동이 벽에 부딪힌 이후 교회 지도자들의 설교는 다양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한국 교회의 설교의 내용이 십자가와 부활, 회개와 천국이 크게 강조되는 설교로 점차 옮겨가기 시작합니다. 무화과에 실린 설교들도 이러한 경향성이 분명히 있습니다만, 그 설교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선포나 기독교 신앙의 신비성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사회를 적극적으로 변혁시키려는 의지가 뚜렷하며 또한 낙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민족의 갈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의 내용이 이전처럼 직접적이진 않지만 민족의 수난 속에서 앞장서서 십자가를 매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들의 설교 속에는 복음과 사회를 분리시키려고 하지 않고, 복음이 있어야 하는 자리를 정확하게 찾고 있습니다. 무화과에 나오는 설교자들이 대부분 감리교의 설교자들이라면 이것은 감리교회가 가진 귀중한 유산이라고 평가해도 좋을 듯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무화과에 나오는 설교들에서 오늘날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세계적인 흐름을 잘 알고 또한 그 흐름을 읽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실제로 그 시대의 설교자들은 이 민족의 가장 선두에 서서 사람들을 이끌어 가는 선각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당시의 설교자들은 세계정세에 가장 밝은 정보통이었다고 합니다. 무화과를 잘 읽어보면 중국의 고전뿐만 아니라 성서의 배경, 또한 그 시대에 세계의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도 그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음이 언뜻 언뜻 엿보입니다. 아마도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던 민족을 자각시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라고 생각되며, 그 속에 담겨있는 그들의 지혜와 폭넓은 세계관은 오늘날의 설교자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무화과에는 그 시대의 또 다른 설교적 특징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이명직 목사님의 설교 청년이여(전11:9)와 강매 목사님의 설교 기독교는 누구의 것입니까(전12:1-2) 그리고 제사(레7:37)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본문이 신약성서에서 선택되어진 것들입니다. 이것은 김진호 목사님이나 설교집에 나오는 다른 설교자들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그 시대 설교자들의 관심과 그들의 추구했던 말씀의 본질을 짐작해 볼 수 있게 합니다. 사실 초기 한국 설교의 대부분은 하나님에 대한 설교보다 예수님과 신약성서에 대한 설교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아마 복음 전파가 시급했던 시기에 그러한 것들에 강조를 두고 우선적으로 선포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나 신앙에 대한 딱딱한 교리적인 설교들 보다 신약성서 특히 복음서를 중심으로 기독교 복음의 쉽게 선포하였습니다. 무화과의 설교들도 회중으로 하여금 신학적인 기초를 세우는데 우선하지 않고 복음의 본질을 삶 속에 풀어서 전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교리적 내용보다 복음과 실제적인 삶에 관해 관심에 대해 말하고 있는 대부분의 설교 제목들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무화과에 나오는 우리 선배들의 설교들이 오늘날의 설교자들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을 꼽자면, 저는 복음을 교회의 언어로 교회 안에 가두어 놓지 않고 세상에 풀어 놓은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한국 교회는 폭팔적인 성장을 해 왔습니다. 특별히 1960년대 70년대의 성장률은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설교사역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강단에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라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 위기에서 설교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입니다. 그 자성의 목소리들이 한국 강단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은 성장 중심주의 적 메시지’, ‘기복적 개인주의 신앙의 선포, 그리고 복음의 왜곡 이었습니다. 설교는 목회자의 가장 큰 목회 수단으로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제는 혹독한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여러 학자들이 이 같은 현실에 대해서 설교의 위기라고 조심스럽게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서 설교가 누리고 있던 절대적 위치만큼이나 현대적인 여러 가지 목회적인 위기가운데 설교의 위기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설교자들의 실수는 그들의 질문이 어떤 방법론이 오늘날의 설교에 더 적합합니까?가 라는 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설교가 무엇입니까?하는 설교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어느 덧 한국 교회는 선교 1백년을 넘어 새로운 세기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교회의 성장해온 바탕인 강단의 말씀이 한국 교회와 민족 앞에 어떻게 선포되고 도전 했었는가는 뒤돌아보는 토론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참으로 교회되어지기 위한 바른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대한 탐구를 하고자 할 때 지난 한 세기동안 한국 교회의 설교 모습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 설교가 민족의 가슴에 어떻게 뿌리 내렸는가를 물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애산 김진호 목사님의 설교집 무화과는 한국 교회의 설교가 무엇이었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을 제시해 주는 좋은 자료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후배들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애산 김진호 목사님의 설교를 인용하며 서평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금 조선 안에 이름이 알려진 교회들이 매우 위태롭게 된 것은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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