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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강성주 목사의 설교

2015.10.12 10:04

aesan 조회 수:555

강성주 목사의 설교


청진교회(淸津敎會)에서는 1947년 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강성주(姜晟周)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復興會)가 있었다. 강목사(姜牧師)는 나의 교우 강매(姜邁)씨의 영윤(令胤)이다.


강매(姜邁)씨와 나는 막역(莫逆)의 교우이다. 배재교(培材校)에 근 20여년 봉직(奉職)하였고 그 후에 강매(姜邁)씨가 간도(間島) 용정(龍井)에 와있으며 농촌여자학교(農村女子學校)를 경영(經營)하였다가 불행(不幸)하게도 그 곳에서 최후를 마치었다. 강매(姜邁)씨는 조선(朝鮮)의 대시가(大詩家)인 대산 선생(先生)의 영손(令孫)이요, 우리 집과 세의(世誼)를 강(講)하는 집이요, 또 강매(姜邁)씨는 조선(朝鮮)의 문학가(文學家)로 굴지(屈指)하던 선생(先生)이다.


그런데 성주(晟周)군은 일찍 동경(東京)에 가서 공부(工夫)하던 중 가정(家庭)에 실연(失戀)이 되여 번민고통(煩悶苦痛)으로 세상(世相)을 비관(悲觀)하고 자살(自殺)까지 하려다가 어느 은인(恩人)을 만나 구조(救助)되어 성결교회(聖潔敎會) 신학(神學)을 공부(工夫)하였고 그 전에는 고등사범(高等師範) 영문학(英文學)을 졸업(卒業)하였다.


어느 일본인(日本人)교회에 십여년(十餘年) 시무(視務)하는 중에도 가정문제(家庭問題)를 오히려 해결(解決)하지 못하다가 하루는 신(神)의 책망(責望)을 받아 홀연(忽然)히 깨닫고 사변(事變) 전에 귀국(歸國)하여 그 부인(夫人) 남씨(南氏)를 맞아 동거(同居)하며 전에 박대(薄待)하고 불화(不和)한 잘못을 일일(一一) 자복(自服)하고 귀(貴)한 아들까지 얻었다. 자기의 받은바 은혜가 풍성(豊盛)하매 여러 곳에 부흥회(復興會)를 인도하여 은혜가 풍성(豊盛)하였다.


간도(間島) 용정교회(龍井敎會)에도 시무(始務)하였고 그 후 연길교회(延吉敎會)에도 있었고, 또 그 후에 훈춘교회에 시무(始務)하다가 사변(事變) 후에 그 곳을 떠나 지금 동해안(東海岸) 장로교회(長老敎會)에서 시무(始務)중이다.


이렇게 객리(客裏)에 서로 만나기는 천만(千萬) 뜻밖이다. 성주(晟周)군의 경력(經歷)을 듣고 또 교우를 생각하고 돌연(突然)히 눈물을 금(禁)치 못하였다. 일주간(一週間)은 은혜가 풍성(豊盛)하다. 나는 교우들의 은혜 받는 것을 보고 감사의 마음을 금(禁)치 못하였다. 영혼간 은혜가 풍만(豊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