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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연합구역회

2015.10.12 10:02

aesan 조회 수:464

그리고 연합구역회(聯合區域會) 내(內)에 개척전도인(開拓傳道人) 일인(一人)을 두고 경비(經費)는 매삭(每朔) 일천원 예산(豫算)하고 인선문제(人選問題)에 있어서는 주을(朱乙) 계신 김대일(金大一) 장로를 택(擇)하여 시무(視務)하게 하고 아무쪼록 생기령(生氣嶺)에 주재(駐在)하도록 주선(周旋)하라고 부탁(付託)하였다.


그것은 생기령(生氣嶺)에는 교회가 있다가 폐지(廢止)되었으니 다시 부흥(復興)시켜 보자 함이다. 일천원을 우리 구역區域)에서 부담(負擔)하기로 하고 청진(淸津)에서 매월 사백원, 경성(鏡城)에서 삼백원, 주을(朱乙)에서 이백원, 어항(漁港)에서 일백원 이렇게 확정(確定)되었으니 청진(淸津)에서는 한국보(韓國補)씨에게 보조(補助) 일천원을 합(合)하여 매삭(每朔) 산외(算外)의 지출(支出)이 일천사백원이다.


부(副)목사 문제(問題)는 자연 4월 까지는 재연(再燃)되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교회를 보와 지금이라고 적임자(適任者)만 있다면 내가 사퇴(辭退)하고 그를 대임(代任)시킬려고 생각한다. 직원(職員)들은 원(願)치 않으나 교회 장래(將來)를 위하여 아니할 수 없는 일이다.


대임(代任)시킬 인물(人物)은 누구인가 사방(四方)으로 물색(物色)하는 중에 주을(朱乙) 김득수(金得洙) 목사로 정(定)하고 주을(朱乙)에 알아 본 결과 주을(朱乙)에서는 김득수(金得洙)씨가 아니면 그 교회의 존폐문제(存廢問題)가 있다고 하며 기어이 김목사(金牧師)를 붙들려고 한다. 주을교회(朱乙敎會)나 청진교회(淸津敎會)나 다 나의 상관(相關)인데 청진(淸津)만 생각할 수 없어 김목사(金牧師)는 단념(斷念)하였다.


또 다른 사람은 한국보(韓國補) 목사인데 본(本) 교직원(敎職員)들이 원(願)하지 않으니 할 수 없다. 너무 경제문제(經濟問題)를 고조(高調)하여 자극(刺戟)이 된 모양이다. 어항(漁港)에도 역시 그 문제(問題)로 인하여 호감(好感)이 없는 것 같으니 하여튼 목회자(牧會者)가 물질(物質)에 치중(置重)하고는 신령(神靈)한 복음(福音)의 사자(使者)가 될 수 없다.


‘주의 말씀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義)를 구(救)하라. 또한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신 말씀을 읽고 자기생활을 돌아 볼 때 그 말씀이 여합절응(如合節應) 한다.


근 수년(數年)동안 나의 생활로 보아 믿을 수 있다. 전연(全然) 예산(豫算)이 없었다. 금년(今年) 9월까지도 봉급(俸給)이라고 이백원 밖에 없었다. 백미(白米) 일(一斗) 값이 팔백원인데 한말 값도 못되는 봉급(俸給)을 가지고 어떻게 살었을까. 나도 모르고 우리 처(妻)도 모른다. 쌀이 없을 때는 누가 쌀을 갖다 주었고, 반찬이 없으면 반찬을 갖다 준다.


엘리야 때에 까마귀가 떡을 갖다 주어서 먹고 살았으니 우리 집에 누가 까마귀를 보내었는가. 나는 몰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나는 이것을 믿어서 된 것은 아니다. 할 수 없이 궁지(窮地)에 빠질 때 그렇게 되었으니 감사한 것뿐이다. 그렇게 허덕거리고 날뛴다고 사는 것 아니라 오직 주의 처분(處分)만 기다릴 것뿐이다. 곤란을 참고 믿음으로 이겨야 한다. 나의 생활뿐 아니라 우리 조선(朝鮮)사람의 생활이 전부가 다 그러하다.


어항(漁港) 장로 황종우(黃鍾宇)군은 유지회사(油脂會社)에 근 십년 근무(勤務) 중 청백정직(淸白正直)하기로 저명(著名)하여서 그 환경(環境)이 전부 기독교(基督敎)를 반대(反對)하여도 황군(黃君)에게는 반대(反對)치 못한다.


심지어(甚至於) 일본인(日本人)까지도 존경(尊敬)하며 그 회사(會社)에서 화학(化學) 급(及) 기계(機械) 연구(硏究)로 동경(東京)에 적임자(適任者) 일인(一人)을 파송(派送)할 터인데 조선인(朝鮮人) 급(及) 일본인(日本人) 중 오직 추호불범자(秋毫不犯者)는 황군(黃君) 뿐이라 동경(東京)에 파송(派送)되여 근 일개년간(一個年間) 연구(硏究)를 마치고 돌아왔다.


사변(事變) 후에도 자기의 연구(硏究)한 바를 세상에 발포(發布)하여 먼저 제혁(製革)회사(會社)를 설립(設立)하고 또 침소미제조회사(沈小米製造會社)를 설립(設立)하였다. 바다에 일년간(一年間) 침수(沈水)되여 거의 썩은 쌀을 다시 백미(白米)로 만들어 도청(道廳) 배급용(配給用)에 바치고 또 성냥 만드는 법(法)을 발명(發明)하여 청진(淸津)에서도 보조(補助)가 있었고 장차 원산(元山)에 회사(會社)를 설립(設立)하고 내왕(來往)하는 중 원산(元山)으로 반이(搬移)할 의사(意思)가 십중팔구(十中八九) 농후(濃厚)하다. 그리고 보면 어항교회(漁港敎會)에 영향(影響)이 적지 않다. 황군(黃君)의 말은 원산(元山)으로 반이(搬移)하여도 전도인(傳道人) 봉급(俸給)을 얼마간 담당(擔當)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고맙다.


한국보(韓國補)씨에게 금년(今年) 12월부터 보조(補助)를 지불(支拂)하게 되여 일천오백원을 지불(支拂)하고 원산(元山) 이감리사(李監理師)로부터 좋은 기별이 오기를 고대(苦待) 중이다. 원망하며 어항교회(漁港敎會)에 그냥 있으면 하나 지금(至今) 형편(形便)은 담임자(擔任者)의 소소변출(蘇小辨出)이 극난(極難)하고 그는 합(合)지 못하다.


어느 교회에는 목사가 있어 즐겁고 어느 교회에는 목사가 있어 도로 두통(頭痛)거리가 되니 목사 되기가 이렇게 어렵다. 이 연로다병(年老多病)한 사람이 사십년 교역(敎役)에 혹 두통(頭痛)이란 말을 듣지 않았는가 스스로 반성(反省)하여 보았다. 오늘까지 주의 용서하심과 긍휼(矜恤)하심으로 더욱 감사하다.


주을교회(朱乙敎會)는 김득수(金得洙) 목사를 높이 받들려고 청진(淸津)으로 오지 못하고, 경성교회(鏡城敎會)는 목사가 없어 영적(靈的) 기갈(飢渴)이 심하여 목사를 기다린다. 교회에 합(合)한 사람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