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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경성교회는 신장로 전담

2015.10.12 09:53

aesan 조회 수:723

교회용도(敎會用道)는 유사부(有司部)에 맡기고 가정용도(家庭用道)는 가인(家人)에게 맡기고 밥주면 먹고, 옷주면 입을 뿐이고 오직 전도(傳道)에 힘쓸 뿐이다.


청진지방(淸津地方)의 교회 중에 경성교회가 좀 어지러우나 가장 신령(神靈)한 교회로 칭찬(稱讚)이 있었더니 8.15사변(事變) 초(初)부터 쇠약(衰弱)하여졌다. 신종악(申鍾嶽) 장로 둘째아들 신동척(申東拓)군은 근본주의자로서 일반(一般) 인사(人士)에게 증오(憎惡)의 집점(集点)이 되었다. 그 이유는 사변(事變) 초(初) 군내(郡內)의 다수(多數) 유명(有名)한 인사(人士)가 주을보안서(朱乙保安署)에 검거(檢擧)되었으니 그것이 모두 신동철(申東哲)의 소위(所爲)로 지목(指目)이 되었다. 그 후에 석방(釋放)이 되었으나 그 혐의(嫌疑)는 씻을 수 없고 교회도 이로 인하여 어려움을 받게 되었다.

 

신장로(申長老)는 자신(自身)이 다니며 변명(辨明)을 하였지만 운소운산(雲消雲散)은 되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들이 회개(悔改)치 않으니 아버지 전도(傳道)가 무력(無力)할 것은 웅변(雄辯)으로 증명(證明)한다. 그리고 유력(有力)한 직원(職員)들이 모두 청진(淸津)으로 반이(搬移)하여 신장로(申長老) 혼자 교회를 가지고 고력(苦力)중이다. 아들 형제(兄弟)가 다 주의화(主義化)하고 보니 신장로(申長老) 별세(別世) 후에 누가 교회를 붙들까. 혹 사상누각(沙上樓閣)이 되지 않을지 염려이다.


그런 중 직원(職員)중 유력(有力)한 집사(執事) 마루기씨가 교회를 나아가 장로교(長老敎)에 다니게 되니 역시 교세(敎勢)가 많이 그 편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모든 점(点)으로 보아 안전성(安全性)이 없는 것 같으니 실(實)로 염려이다.


경성교회는 신장로 전담


주께서 원(願)치 않으신 이유가 무엇인가. 신장로(申長老)는 믿음은 없고 자아심(自我心)이 많다는 것이 일반논평(一般論評)이다. 교회 재정(財政)은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다고 문부(文簿)와 재물(財物)은 혼자 맡아 가지고 5년 동안 모으기만 한 것이 만여원(萬餘元)이라고 일전(日前) 감리사(監理師) 앞에 보고(報告)하였고, 교회 직원(職員) 신장로(申長老) 자기 외(外)에는 맡길 데 없다고 하여 혼자 맡아 가지고 전도(傳道)도 자기, 주일학교(主日學校)도, 문부유사(文簿有司)도 자기, 재정유사(財政有司)도 이렇게 자기가 모두 주장(主張)하니 다른 사람이 원(願)치 않은지라. 자아(自我)란 우상(偶像)이 진실로 교회에 피해(被害)가 많다라는 것이다.


나는 신장로(申長老)에게 부탁(付託)하고 명년도(明年度)에는 교회직원(職員)들을 전부 바꾸워 재정유사(財政有司) 따로 문부유사(文簿有司) 따로 정(定)하여 각각(各各) 부문(部門)을 정(定)하면 어떠냐 하니 돈은 자기가 맡고 문부(文簿)는 다른 교우에게 맡기겠다고 하니 과연(果然) 맡길 사람이 없어 자주(自主)함은 허물할 수 없다.


이번 이감리사(李監理師)와 순북(巡北)하는 기회에 나는 제의(提議)하였다. 출옥(出獄) 후에 몸이 차차 쇠약(衰弱)하여 성역(城役)을 감당(堪當)키 난(難)하니 다른 목사를 파송(派送)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부(副)목사 한분을 두고 나로 자유케 하기를 청하였고 그뿐 아니라 연로다병(年老多病)한 사람이 교회를 맡아 가지고 있다가 일조(一朝)에 불행(不幸)하면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影響)이 있겠으니 미연(未然)에 준비(準備)하는 것이 가(可)타 하였다.


감리사(監理師)는 의견(意見)을 청진구역(淸津區域) 제직(諸職)들에게 물어보았다. 아주 체임(遞任)은 절대불가(絶對不可)하고 부(副)목사 두는 것은 명년도(明年度)에 예산(豫算)을 보아 처리(處理)하자고 가결(可決)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