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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권총 든 심문관

2015.10.08 11:35

aesan 조회 수:645

* 공립교 조선사


또 보안서(保安署)의 호출(呼出)이 있어 갔다. 수색(搜索) 시(時)에 왔던 성명을 모르는 소위(所謂) 감찰(監察)계장(係長)이 심문실(審問室)로 데리고 가서 또 묻는다. “학생들에게 무슨 불온(不穩)한 말한 것을 다 말하오.” “우리집이 교당(敎堂)이고 또 주택입니다. 남학생(男學生) 2명, 여학생(女學生) 3명이 왔었는데 남학생(男學生)들은 한번 오고 다시 오지 않았으며 여학생(女學生) 들은 예배 시(時)에 와서 참례(參禮)하고 예배 후에 조선(朝鮮史)를 가르쳐 달라고 하여 몇 번 가르친 일이 있었고 불온(不穩)한 말을 한일은 없오.” “바로 말하지 않으니 여기서는 취조(取調)할 수 없고 사령부(司令部)로 넘기겠다.” 한다. “마음대로 하시오.” 

 

* 권총 든 심문관(審問官)


조금 있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청년이 들어오더니 또 취조(取調)를 시작(始作)한다. 다시 주소(住所)성명(姓名)을 묻고 사건전말(事件顚末)을 묻기에 나는 전과 같이 진술(陳述)하였더니 눈을 똑바로 뜨고 호령(號令)하였고 이놈 죽일놈 하고 “바른 말하지 않고 내 손에 죽어 보려느냐. 나는 너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하고 독(毒)한 구두 신은 발로 냅다 차고 뺨을 여러 번 때려 피가 날 지경이다.


나는 의자에서 떨어졌다. “이놈 어서 일어서지 못하겠어”하고 대성질호(大聲疾呼)하고 피스톨 내여 쏘려 한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왜 이놈 대답하지 않느냐. 나 죽여 달라고 기도하느냐. 나는 만주(滿洲)에서 돌아 다닌지 십여년(十餘年)이오 조선민(朝鮮民) 해방(解放)을 위하여 피땀을 흘린 사람이다. 나는 유물철학(唯物哲學)을 공부(工夫)한 사람이고 너 같은 놈을 살려 줄 수 없다.”한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무슨 죄(罪)로 그러는지 알 수 없다. “나를 알려면 사령부(司令部)에 있는 최동무라면 안다.”하니 그의 종작이 없는 말을 변명(卞明)할 것도 없고 법원권근(法遠拳近)이란 말과 같이 되었다.


죽음을 무서워 횡설수설(橫說竪說)할 것 없고 침묵(沈黙)을 지켜 말이 없었다. 그 사람은 노발대발(怒發大發)하여 혼자 꾸짖고 지껄이고 떠들다가 나아간다. 유물(唯物)철학(哲學)을 가르치는 말인지 아무 죄(罪)의 명목(名目)을 가르치지도 않고 덮어놓고 죽일놈 살릴놈하는 것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없다.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서 침묵(沈黙)을 지킨것 같이 나는 아무 말하지 않고 이 무법(無法)한 일을 주께서 살펴주십시요 하고 기도할 뿐이다.


나는 서원(署員)과 같이 유치장(留置場)에 돌아왔다. 귀가 멍하여 잘들리지 않고 정신이 희황하며 다리가 떨려 넘어질 뻔하였다. 내 짐작에 그 자는 공산주의자(共産主義者)인듯한데 소련(蘇聯)서는 노유(老幼)를 보호(保護)하는 나라이다. 그 나라에서 교육(敎育)을 받았으면 어찌 그렇게 포학(暴虐)한 행동(行動)을 하는가 하고 나는 의심(疑心)하었다. 그런 사람을 인하여 주의(主義)의 신성(神聖)이 다 없어지고 도리여 세인(世人)으로 하여금 그 주의(主義)를 의심하게 된다.


한번은 거의 오십이 된 남자가 들어왔다. 성명(姓名)은 이택수라 하며 이익수와 집안이라 한다. 특별한 지식가(知識家)는 아니라도 사상(思想)이 있고 시대(時代)를 잘 아는 인물(人物)이다. 하여튼 그 이씨(李氏)가 함북(咸北)에 유수(有數)한 집이다. 현금(現今)도 도청(道廳)에서 봉직(奉職)하는 이익수와 이한수 등이 그의 일족이고 또 보안서장(保安署長)도 그의 일족이고 고(古) 이용익 대신(大臣)도 그의 일족이다.


이택수씨는 다소간 종교를 이해하고 믿어보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지난 십월(十月)에 피검(被檢)이 되여 십개월(十個月)동안 장기(長期)구류(拘留)중이라고 한다. 나는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가 야소(耶蘇=예수)를 믿고 구원(救援) 얻게 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자기도 기도하기를 배웠다. 청년 이하운도 믿기로 작정하고 방내(房內)에 있는 사람들이 한사람도 반대(反對)하는 이는 없다. 아침마다 기도로 많은 위로(慰勞)를 받는다.


하루 아침엔 소련병(蘇聯兵) 일명(一名)가 와서 나를 호출(呼出)한다. 장소(場所)는 새로 정(定)한 육군(陸軍)사령부(司令部)이고 문(門)앞에 수삼명(數三名)의 병졸(兵卒)들이 있고 조선인(朝鮮人)도 몇명이 있다. 어느 조선인(朝鮮人)의 인도로 취조실(取調室)로 들어갔다.


심문(審問)하는 장관(將官)의 성명(姓名)은 모르고 통역(通譯)은 마(馬)동무라 한다. 성명(姓名), 주소(住所), 연령(年令)을 물은 후에 “여기서는 고문(拷問)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거짓이 없어야 한다고 거짓말 하면 삼년(三年) 징역에 처(處)한다.”고 선언(宣言) 한다.


"이학근을 아는가."하고 묻는다. "안다." 답(答)하였고 “어찌 아느냐.” “우리 교회에 교인이오.”. "그가 지금 어디 있는가." "황해도(黃海道) 사리원(沙里院)에 있오." “그가 갈 때 학생을 소개한 일 있었으니 누구냐.” “최영수, 장동식이요.” "무슨 뜻으로 소개하였는가." "교회에 입회시키고 믿음으로 인도하라는 뜻이요." "다른 말을 한 적이 없오." "없오." "그 후에 몇번이나 왔오." "두번인가 왔오." "또 오라고 부탁하였오." "요다음 주일(主日)에 예배 보러 오라고 하였오." "믿지 않는 학생을 왜 오라고 하였오." "목사는 전도(傳道)하는 사람이라 아무 사람에게든지 전도(傳道)하는 법(法)이고, 그 학생에게도 전도(傳道)로 인도하려고 함이오."


"다른 학생은 없오." "여학생 세명이 왔지만 이름은 잘 모릅니다." "언제 왔느냐." "주일에 와서 예배를 보고 예배후(禮拜後)에 조선사(朝鮮史)를 가르쳐 달라 하여 두어번 가르친 일이 있오." "다른 말을 한일 없느냐." "그 생도(生徒)들이 '당국(當局)에서 김구(金九), 이승만(李承晩) 타도매장(打倒埋葬)이라 함이 옳은 일인가요' 하고 묻기에 나의 양심(良心)대로 '불가(不可)타' 답(答)하였오." "왜 불가(不可)라 하오." "성경(聖經)말씀에 남을 미워하는 것이 죄(罪)라 하였고 또 조선독립(朝鮮獨立)에 방해(妨害) 하였오." "왜 방해(妨害)냐."


"조선(朝鮮)의 독립(獨立)은 우리가 원(願)하여서 되는 것 아니오. 다른 삼국(三國)이 인허(認許) 후에 되겠는데 무엇을 보고 인허(認許)할가. 인물(人物)도 없고 물질(物質)도 없고 과학(科學)도 없으니 무엇을 보고 승인(承認)을 하겠소. 다만 조선(朝鮮) 삼천만인(三千萬人)이 마음을 합(合)하여 하나이 되면 그것이 다 승인(承認)의 조건(條件)이 될지라. 하여튼 뭉치고 합(合)하여야 됨에 불구(不拘)하고 이렇게 타도(打倒)니 매장(埋葬)이니 하는 것이 도리여 승인(承認)을 방해(妨害)하는 것이라 하오." "그 외에 다른 말이 없었오." "없오." "오늘은 이만큼 묻고 그치겠으니 다음 또 오라." 한다. 소병(蘇兵)과 같이 유치장(留置場)에 돌아왔다.


며칠 후에 구내(拘內)가 몹시 계엄(戒嚴)이 되었다. 육군사령관(陸軍司令官)이 온다고 조금 후에 나를 취조(取調)하던 장관(將官), 사령관(司令官), 보안서장(保安署長), 검사(檢事), 또 통역(通譯) 등이 실내(室內)에 들어와 각 수인(囚人)의 죄명(罪名)과 갇힌 시일(時日)과 고문(拷問) 여부(與否)를 묻는다. 모든 사람을 다 묻고 나에게 이르러 별(別)로 묻지 않고 지나가고 어떤 이는 바른대로 심문형편(審問形便)을 직고(直告)하였다.


사령관(司令官)이 간 후에 보안서장(保安署長)이 또 와서 “당신(當身)들이 죄명(罪名)은 생각도 않고 억울하니 무엇이니 하고 서(署)의 잘못을 말하니 될 뻔할 일이요. 그리 함으로 유익(有益)이 될 줄 아오.” 하고 소리를 높인다. 서장(署長)의 체면(体面)도 있겠거든 어찌 침묵(沈黙)지 않는고 하고 모두들 말한다.


며칠 후 또 사령부(司令部)에서 호출(呼出)이 있다. 또 전과 같이 묻고 "최학생을 오라고 한일 있느냐."고 "있다." "무엇 하려 오라 하였오." “예배를 보러 오라고 하였오.” “믿지 않는 자를 왜 와보라 하였오.” “목사는 누구에게든 전도(傳道)하는 고로 최학생을 믿게 하려고 함이오.” "어디로 오라고 하였오." "예배당으로 오라고 하였오." "집으로 오라고 하지 않았오." "우리집이 곧 예배당이요." "학생에게 무슨 다른 말 한적히 있다고 최학생이 자백(自白)하였는데 왜 거짓말을 하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소." "진정(眞情)으로 고(告)하지 않으면 몽둥이로 때리겠다." "맞아도 아니 한말 할 수 없오." "그러면 유치장(留置場)에 가서 죽을 때까지 있으라."


일병(一兵)을 대동(帶同)하고 돌아오다. 수인(囚人)들은 또 묻는다. “유치장(留置場)에 가서 죽어라 하는 말 들었소.” 다시 업드려 기도하되 “생(生)도 사(死)도 다 주께 있으니 처분(處分) 대로 하시고, 사람의 뜻대로 되지 않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사령관(司令官)의 서슬이 늙은이를 돌아보지 않고 죽이기로 작정하고 구수(久囚)로 정할지 혹 시베리아로 보내어 객사(客死)하게 하든지 어디가 죽든지 상관(相關)이 없고 다만 주만 같이 하시면 어디든 천당(天堂)이 될 수 있으니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다시금 기도를 하였다.


며칠 후에 또 호출(呼出)이 있었다. 또 묻기를 “공산주의는 좋아도 공산당의 행위(行爲)가 좋지 못하다 하였지.” “그 말 하였오.” “무슨 행위가 좋지 못한가.” “동족(同族)을 원휼(願恤)치 않고 타도(打倒)니 매장(埋葬)이니 하여 모든 행위(行爲)가 무자비(無慈悲)한 것이 많다. 그 뿐인가 백미(白米) 소두(小斗)한말 값이 백원이 되어도 이것을 등한시(等閑視)하고 자기들은 먹을 것이 풍부(豊富)하며 일반(一般) 민가(民家)는 사지(死地)에 빠져도 돌아보지 않으니 한심(寒心)한 일 아니요. 무엇 잘한 것 있오.” 최학생에 대(對)한 말 다시 묻고는 다른 무슨 말이 있는데 왜 말하지 않소. 다른 말 한 적이 없오. 직고(直告)하지 않으면 지하실(地下室)에 가두겠으니 어찌하려는가. 아무 곳이라도 죽음을 각오하였으니 마음대로 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