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3 15:19
189. 여성들의 모험 누가복음 7:36-50, 24:1-12, 고린도후서 12:1-3 전영택 목사
기독교는 부인들의 모험으로 시작되었다. 예수 당시에 남자들은 모두 도망하였으나 부인들은 주 못 박히던 날 밤새도록 지키고 있었고 새벽미명에 먼저 무덤에 가서 형지를 살피었다.
사랑은 저버림에 큰 죄이다. 시집간 여자가 자녀를 낳고 남편도 사랑하건마는 그 남편이 금전이 없던지 인격이 부족하던지 하면 자녀와 남편을 버리고 가는 것이 큰 죄이다. 그와 같이 우리가 주를 섬기다가 별로 육신에 유익이 없으면 그만 주를 배반한다면 그 얼마나 큰 죄인가. 아무 변함이 없는 깨끗한 양심으로 주를 섬겨야 한다.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를 잠간 소개하면 한다. 처음 주께서 바리새 교인의 집 잔치에 가서 주의 말 옆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울었다. 자기의 전일 생활을 돌아보고 주의 거룩함을 쳐다 볼 때 자연 뉘우치는 눈물이 솟아났다. 우리가 아무 의미 없이 남이 가니 나도 간다. 아무 의미 모르고 그저 다니는 교우는 힘 있는 교우가 되어야 한다. 누구든지 눈물의 고개를 넘지 않고는 보배로운 믿음을 얻지 못한다. 교우 중 비원에 있을지언정 특별한 은혜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다.
고로 전국에 제일 귀한 것은 회개하는 눈물이다. 천국 문에 이르는 자 다 문에 들어가기를 원하나 원대로 되지 않는다. 혹은 전공을 칭하는 자 혹은 자선자 혹은 교육자 혹은 의료자 혹은 청상수절자 다 선한자이지만 천국에는 들어가지 못한다. 천국에 들어갈 조건은 회개하고 피로 구속 받은 자이다.
골방에서 혹은 제단 앞에서 회개의 눈물이 가장 귀하다. 이 마리아가 눈물로 주의 발을 적신 것이 주의 칭찬하신 바이다.
그 다음은 귀한 기름을 부었다. 이 기름은 값이 귀하여 이 여자의 평생 먹고 살 것인데 이것을 생각지 않고 안 바치면 될 수 없는 마음으로 바치었다. 이 얼마나 귀한가. 사람이 주님 앞에 바친다는 것이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주님의 자기 생명을 맡기지 않고 우리 위하여 버리셨다는 그 큰 사랑은 감동치 않고는 바치지 못한다.
아메리카 흑인시장에 흑인 한 사람이 기피야 높은 대 위에 세우고 호가하는데 어느 돈 있는 자선가 한 사람을 돈을 주고 그 흑인을 사서 그 흑인들로 자유 가르치니 흑인이 성명을 묻는지라. 주인이 대답지 않고 가니 그 흑인이 쫓아와 나는 당신 댁에 영원히 같이 있겠다 하여 허락하였다. 우리는 주님의 피로 사셨으니 영원히 주를 봉사하여야 마땅하나 그런 고로 내게 있는 것 무엇이든지 건강 지식 도덕 다 주께 바쳐야 한다.
그 다음은 모험이다. 이 여성들이 주 정살 하신 후 문도는 다 도망하고 밤새도록 지키고 있다가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감사로 돌아보지 않고 또 로마 병정이 이 네 명씩 네 패로 지키는 것도 물고 날도 밝기 전 어둠 컴컴한 곳에 여자들이 무덤을 찾아 갔다. 이 얼마나 모험인가.
우리 조선은 장차 곤란, 조금 있으면 북에서 남으로 쳐들어오는 이 공산당이 오는 이 하고 미리 두려워하는 만일 그런 때를 만나면 어찌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