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8 09:59
228. 복구(復舊) 운동 베드로후서 1:4
인의 최후 목적은 신의 형상을 회복함이다. 공자도 극기복례라 하고 석가도 공상에 들어가고 이 목적을 세우고 나아가되 아직까지 참을 발견치 못하였다. 종교마다 자기의 성공을 자랑하지만 다 만족이 없다.
고로 우리 주는 이것을 위하여 인간에 오시고 이 문제 해결하셨다. 인간의 큰 장애는 죄와 죽음이다. 이 두 가지가 복구운동에 큰 장애올시다. 두 가지 철폐한 후에는 아무 것도 거리낄 것 없다. 주님의 복구운동은 중간에 가로질러 있는 이 두 가지 큰 장애물을 거두어 치우기 위하여 정치나 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먼저 자기 몸을 희생하였다.
십자가 밑에 있는 사람은 다 죄인이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달라고 소리쳤다. 다시 말하면 주의 원수이다. 주는 원수로 보지 않으시고 내게 온 사람으로 생각하시고 지도하시기를 저들은 용서하십시오. 저들이 알지 못함입니다.
하나님의 주신 양심이 죄로 가리어졌다 함이다. 가리운 것은 수건을 무덤으로 벗어질까. 다만 주의 지도하는 소리를 듣는 사랑이 없어진다. 십자가 밑에는 한 사람도 없고 다만 장립한 사람뿐이다. 그리고 그 죄를 자기에게 돌리려는 자이다.
우리가 선죽루에 가서 ***의 피를 보고 그의 충의를 생각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주님의 피를 생각할 때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큰 것을 생각하여야 한다. 만인같은 위함보다 내 죄 위하여 된 것을 생각할 때 이 죄는 없어진다.
패역한 자식이 감옥에 징역 할 때 그 모가 대신 *공을 하느라고 손이 부르트고 피가 흘렀다. 자식이 생각하기를 나 때문에 모가 저렇게 필를 흘려하고 통곡 회개하고 다시 죄를 범치 않았다. 그 마음이 곧 복구이다. 그 사랑은 죄와 사망에 나와 새 생명으로 들어갔다.
한 여학생이 자기 모의 얼굴이 얼고 흉해 어미란 말을 하지 않다가 자기가 화(火)중에 있을 때 모가 그 딸을 꺼집어 내느라고 불에 데어 얼굴이 상하였다는 것을 알고 다시 어미라 불렀다. 그와 같이 주님이 피흘림이 나 때문이란 말이 나올 때 내 죄는 없어지고 동시에 사망까지 없어진다.
이 운동은 사랑의 운동이요 생명의 운동이다. 우리 형상이 죄 없는 형상 죽음이 없는 형상으로 돌아간다. 나라에 더 많은 금전을 드려 국민의 죄를 없이하려고 재판소를 두고 법원을 두고 감옥을 두고 죄를 다스려도 죄는 여전하지만 살인 강도라도 성화가 움직이는 기독교 강단 앞에 업디어 회개하는 운동을 흘리게 되니 이것이 복구(復舊)운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