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3 20:51
238. 동정 없는 세상 요한복음 19:23-24 궁삼
동정은 곧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당신 모양 같이 지은 사람도 곧 사랑이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 한 후로 사람의 마음 가운데 사랑이 식어졌다. 가인부터 이 마음을 잃은 고로 동생을 죽이었고 그 후에 하나님의 꾸지람이 임하여 벌을 내리심에 가인은 두려워 떨며 하는 말이 벌이 너무 중하니 감하여 달라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벌을 감하시고 사람 죽이는 것이 큰 죄인 것을 증명하시고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표를 주셨다 하니 이 표는 사람의 양심에 인치기를 사람을 죽이면 7배가 벌을 받는다고 선언하셨으니 이것은 사람의 양심에 표를 준 것이라. 그 후로부터 사람마다 이 표가 있다. 이표를 잃은 자는 지금도 사람을 죽인다.
이때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네 패로 네 명씩 지키더니 그 군인들이 하는 행동은 짐승이라 할 수 있을 만치 흉악하였다. 가시면류관을 씌워 얼굴에 피투성이를 보고 무심하였고 수족에 못을 박아도 아파할 것을 조금도 생각지 않고 또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가 쏟아져도 심상하고 어쩌면 그렇게도 장인우도 그렇게도 동정이 없는 짐승 죽는 소리를 듣고 참아 그 고기를 먹지 못하거든 하물며 사람을 짐승처럼 죽이고 조금도 불안한 마음이 없으니 이것이 무슨 까닭인가.
그때 병의 눈에는 무죄하신 예수가 보이지 않고 다만 보이는 것은 예수의 입었던 옷이다. 이것에 욕심이 나 예수를 보지 못한다. 이 욕심을 마귀가 준 것인데 겉옷은 네 깃에 나누고 속옷은 제비 뽑았다. 이것은 이사야 53장 말씀을 응함이다.
오늘도 이런 일을 종종 볼 수 있다. 가령 교회에 된 일과 여수 순천의 참살의 일이 모두 그것이다. 오늘의 살인 사람이 종종 발생함은 모두 물질문제이다. 카톨릭 잡지에 게재된 소련노동자수용소에 104만 명이 있는데 수천 명의 순사가 둘러서고 이 노동자가 행진할 때 뒤를 돌아다보던지 무슨 불평의 말이 있으면 총으로 쏘아 죽이고 체중이 떨어지기 전에 그 노동자의 옷을 벗기고 신체는 곡간에 던지며 병들어 죽을 때도 숨지기 전에 웃을 벗겨 시체를 욕간에 던진다.
병들어 자기 빵을 다 먹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상 밑에 숨었다가 그 남은 빵을 빼앗아 먹는다. 이런 참혹한 일이 모두 먹는 문제로 사랑이 없어지고 살육이 상잔하여 차마 볼 수 없는 형상이다. 우리도 날마다 먹어야 살고 입어야 살지만 이런 분위기 가운데 믿음을 잃지 말고 세상을 이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