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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58. 기독교인의 장래(基督敎人의 將來) / 로마서 8:18-30


체부동(體府洞)


吾人不當思往日之非, 當思未來之榮也. 往日 死亡埋葬沒落等也, 未來 生活創造革新等也. 往迹雖美皆水流雲空已耳. 凡吾生活, 必分三期觀, 卽過去現在未來也. 人桎梏于此三期之間, 而期有長短. 長期有長三期, 短期有短三期. 人常有關係于此三期, 故必硏究三期之事. 或追過去之榮光及罪過, 或務踐現在之實地. 或戒未來之憂虞及希望. 或洞觀三期而硏究, 今余欲言者, 非卽三期, 卽未來也. 余非預言者, 不能測未來之風雨, 又不能斷未來之榮枯. 禍福皆非人所能, 余所言者, 卽種豆得豆之眞理, 於蒺藜 不能指無花果, 於荊棘 不能指葡萄. 以此相戒, 使兄弟姊妹, 不架虛鑿空, 終至失望也. 人之禍福, 在推察未來也, 信妄則落空, 信眞則結實, 人不能知目前之事, 而主則洞觀三期, 主戒徒曰 少後爾不知我矣, 彼得亦不省察, 妄言不背, 然少後之不知主, 人欲知未來, 則當依主訓而可得矣. 今朝鮮人, 好言未來, 或憑卜筮, 或因風水之師, 其中鄭鑑錄, 唯一豫言書, 朝鮮人酷信之, 人皆務合秘錄, 或入山而隱, 三豊兩白, 務求得之, 此迷信之弊也. 其後數十年, 至今日雖不信鑑錄, 有甚於鑑錄者多, 卽虛榮虛勢耳. 此兩者, 使我永永埋葬, 無復生命. 生命雖暫失敗, 後必更生, 虛榮如糠飛風, 生命如溪邊之樹, 必有結實之日, 前以鑑錄 防朝人之未來, 後以虛榮, 葬朝人之未來也. 支那康熙時代, 支那人酷嗜吟嘆, 常以吟嘆防支那人之未來. 故曰 賺得英雄盡白頭, 今始覺之. 余隣比有眞信之兄弟, 曾視務於銀行, 得厚俸後遞任, 欲視務他處, 以曾經銀行長之名, 意求之皆失敗. 其夫人曰 銀行長, 卽吾偶像也. 雖薄俸無關矣. 勿慮焉. 其兄弟大得安心, 落職敎員의 物語, 眞可以證吾人之信仰也. 欲看未來者, 或速或遲, 遲者欲速不可, 速者欲遲亦不可. 桑葉化爲蚕絹, 要許多時日, 不可不遲待也, 木片化爲新聞, 不過一日之間, 一日成紙, 有經許多機械而後成紙, 今吾人不備機械, 欲木化紙甚不可, 主遲臨者, 以欲盡得救故也 야곱이爲妻沒十四年而不爲苦者, 以其愛也. 吾人欲望將來, 必如猶人之望未來也. 猶人失國二千年, 其國人之運命, 浮沈不已, 而其希望則一貫不變望메시야之來救猶人也. 吾東洋人恒言孔孟, 孔孟之後, 更無孔孟云, 諸葛之後, 更無諸葛云者, 皆非也. 豈有如許之理乎? 人類比上古, 尤爲進步, 未來必有堯舜也, 但不求已矣. 把握記石非不美也, 而必待未來而見其功也. 匡山老嫗磨杵, 愚人視之, 似甚愚鈍而智人視之, 甚知識之事也. 幼兒啼哭, 不過以一錢之糖慰之, 然在長年, 則可以最貴之寶石慰之. 在至人, 此亦不足貴, 可以貴於寶石萬萬者, 與之可也. 由此觀之, 只足現在者, 如一錢之糖, 或望民族及國家之將來者, 亦不可以寶石慰之, 故摩西棄埃及宮中之富貴者以此也. 故不可以現在之不快, 不可落心. 必如猶人, 望메시야百折不屈, 進進不已可也. 猶大古木이새之幹, 有新芽結花, 枝葉蔽空, 萬邦來依, 朝鮮亦古木也, 豈無干雲之大幹乎? 受聖靈之雨露, 立乳蜜之地壤, 朝鮮之草木, 待衆子已現, 況吾民族之在苦痛者乎? 故敎人特注意于未來, 不飮酒, 以其將有病也, 不拜偶者, 以其將見怒于眞神也, 不貶人者, 以其將受貶也, 信未來如是, 故其信心, 惟精惟一, 不入于迷惑也, 其信心百折不屈, 一向進進不已也, 巴奈馬運河, 數十年前米國人之未來, 乾提十餘年前, 印度人之未來人也. 勿念今日之苦難, 必有來日之榮光也. 神之衆子, 果何人也? 有確信不疑, 不撓不屈之人也. 朝鮮之古木, 必有開花之日矣. 僉位念之勉之哉!


우리 인간이 지난날의 잘못을 생각하는 것은 마땅하지 아니하고, 미래의 영화를 생각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지난날은 사망한 것으로 매장이나 몰락한 것들입니다. 미래는 생활에 있어서 창조하고 혁신하는 것들입니다. 지나간 자취는 아무리 좋아도 모두 흘러간 물이고 떠나고 없는 구름일 뿐입니다.


대체로 우리의 생활은 세 기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곧 과거와 현재와 미래입니다. 사람은 이 세 가지의 기간에 꽉 매어 있습니다. 그 기간을 길고 짧은 것으로 나눌 수 있는데, 긴 기간도 3기[三期]가 있고, 짧은 기간도 3기[三期]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늘 이 3기(期)와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 3기에 대한 일을 연구하여야 합니다.


혹은 과거의 영광이나 죄과를 쫓기도 하고, 혹은 현재의 실질적인 일을 실천하는데 힘쓰기도 하고, 혹은 미래에 대한 근심이나 희망을 경계하기도 하며, 혹은 이 3기를 통찰하여 살펴보고 연구하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3기에 대하여서가 아니라 곧 미래입니다. 나는 예언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미래의 비바람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또 미래의 잘 살고 못 사는 것을 단정해 말할 수도 없습니다. 화복은 모두 사람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팥을 심어서 팥을 얻는 진리입니다. 찔레나무를 보고 무화과라 할 수 없고, 가시넝쿨을 포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것을 서로 경계하여 형제와 자매로 하여금 허영을 추구하다가 마침내 실망하는데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받는 화와 복은 미래를 살피는 데 있습니다. 허망한 것을 믿으면 허공에서 떨어지고, 진리를 믿으면 결실을 합니다. 사람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지 못하나 주님은 이 3기를 환하게 관찰합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경계하기를 얼마 후에 너희는 나를 모른다고 하리라고 하자, 베드로가 역시 자신을 살펴보지 않고 배신하지 않겠다고 망령되이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조금 뒤에 주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미래를 알려고 하면 마땅히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조선 사람은 미래를 말하기 좋아하여, 혹은 점쟁이를 의지하기도 하고, 혹은 풍수쟁이를 따르기도 하는데, 그 중에는 정감록(鄭鑑錄)이 유일한 예언서로서 조선 사람이 그것을 너무 믿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신비스러운 기록에 맞추려고, 혹은 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며 삼풍(三豊)과 양백(兩白)의 설에 맞추려고 애쓰니 이는 바로 미신의 폐단입니다.


그 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비록 <정감록>을 믿지 않게 되었으나, 이 <정감록>보다 더 심한 것이 많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허영과 허세입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들로 하여금 영영 매장 시켜서 다시 생명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생명은 비록 잠시 실패하더라도 후일 반드시 다시 생겨나게 됩니다. 허영이란 것은 마치 쌀겨가 바람에 날리듯 하지만, 생명은 시냇가의 나무와 같아서 반드시 열매를 맺을 날이 있습니다.


전에는 <정감록>이 조선 사람의 미래를 막더니, 그 뒤로는 허영이 조선 사람의 미래를 매장해 버렸습니다. 청(淸) 나라 강희황제시대에는 중국인들이 탄식을 읊는 시가를 매우 좋아하여, 늘 이 탄식으로 중국 사람의 미래를 막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르던 애써 얻은 영웅들 모두 늙어버렸네라는 말을 지금에야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 이웃에 참으로 믿을 수 있는 형제가 있습니다. 일찍이 은행에서 사무를 보게 되어 많은 봉급을 타다가 뒤에 물러났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 가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은행장 경력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구하려는 자리는 다 실패했습니다. 그러자 그 부인이 이르기를 은행장은 이제 우리의 우상이 되어 버렸고, 비록 박봉이라도 괜찮으니 염려하지 말고 구해 보시오 라고 말하자, 그 형제는 크게 안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직업에서 떨어져 나온 교회 직원의 이야기는 진실로 우리들의 신앙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미래를 바라보려고 하는 자는 혹 빠르기도 하고 혹은 더디기도 하지만, 더딘 것을 빨리 하려고 하여도 안 되고, 빠른 것을 더디게 하려고 하여도 역시 안 됩니다.

뽕잎이 누에고치로 변하자면, 오랜 시일을 요하기 때문에 불가불 더디게 기다려야 합니다. 나무 조각이 신문지로 바뀌는 데는 불과 하루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하루 만에 종이로 바뀌는 데는 여러 기계를 거치고 난 뒤라야 됩니다. 지금 우리가 기계를 갖추어 놓지도 않고 나무 조각으로 종이를 만들려고 하면 될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더디게 임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야곱이 아내가 죽은 지 14년이나 되도록 괴로워하지 않은 것은 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인간이 장래를 바라보려고 하면 반드시 유대인이 미래를 바라보는 것 같이 하여야 합니다. 유대인은 나라 잃은 지 2천년 동안 그 나라 사람들의 운명은 부침(浮沈)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변함없는 일관된 희망은 메시야가 와서 유대인을 구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동양인은 늘 공자와 맹자를 말해 왔습니다. 공자와 맹자 뒤에 다시는 공자와 맹자 같은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제갈량의 뒤에는 제갈량 같은 사람이 다시는 없다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어찌 그런 이치가 있습니까? 인류는 상고시대에 비하여 더욱 진보하였으니, 미래에도 반드시 요순(堯舜) 같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그런 사람을 구하지 않을 뿐입니다.


돌에 새긴 글을 파악하는 것도 좋지 않은 것이 아니나 그 공효를 기다려야 합니다. 광산의 늙은 할머니가 방아공이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고 하니 어리석은 자가 볼 때 매우 우둔한 것 같지만 지혜 있는 사람이 보면 매우 식견이 있는 일임을 알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울면 불과 1전 짜리 사탕으로도 달랠 수 있지만,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가장 귀한 보석으로 달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인(至人)에게 있어서는 이것도 역시 족히 귀한 것이 못 되고 이 보석보다 천만 배나 귀한 것을 주어야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다만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은 1전 짜리 사탕으로 만족하는 사람과 같지만, 혹 민족과 국가의 장래를 바라보는 자는 역시 보석으로 위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애굽의 왕궁에서 누릴 수 있는 부귀를 버린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불쾌한 것을 가지고 낙심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반드시 유대인이 메시야를 바라며 나아가듯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그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옳습니다.

유대의 고목나무 이새의 줄기에서 새싹이 돋고 꽃이 피었으며, 가지와 잎이 하늘을 가리며 울창하여지자 만방의 나라들이 와서 의지하였습니다. 조선도 고목입니다. 구름을 가릴 만큼 큰 줄기가 어찌 없겠습니까? 성령의 은혜인 비와 이슬을 받고 젖과 꿀 같은 토양에 선 조선의 초목들 같이, 여러 사람이 기다리던 사람이 이미 나타났다면 우리 민족이 고통에 있는 것쯤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 교인은 미래에 특별히 주의하십시오.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합니다. 장래에 병이 들지 않기 위하여서입니다. 우상을 숭배하지 않아야 합니다. 장차 하나님의 노여움을 받지 않기 위하여서입니다. 남을 깎아내리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이 깎아내려지지 않기 위하여서입니다. 이와 같은 미래를 믿어야 하기 때문에 신앙의 마음은 오직 순수하고 한결 같아서 미신의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 믿음의 마음은 백절불굴로 한결같이 끊임없이 나아가고 나아가야 합니다.

파나마 운하는 수십 년 전 미국 사람들의 미래였고, 간디는 십여 년 전 인도인의 미래였습니다. 오늘의 고난을 생각지 말아야 반드시 내일의 영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과연 누구입니까? 확실한 믿음이 있어 의심하지 않고 흔들리거나 굽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조선의 고목은 반드시 꽃을 피우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이점 생각하고 힘쓰고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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