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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세번째 만세

2013.12.05 21:15

aesan 조회 수:932

* 시민대회


이제는 집집마다 붉은 기와 태극기를 달게 하여서 달았고 전 시내(市內)에 사람의 기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루는 시민대회(市民大會)가 된다고 불타버린 신역전(新驛前) 광장(廣場)에 모인다 하는 고로 나도 가보았다. 인외동방면(仁外洞方面)서도 오고, 소남방면(小南方面)서도 오고 각처(各處) 민가(民家)들이 구름같이 모여든다.


난데없는 태극기(太極旗)가 번뜩이고 홍기(紅旗)도 섞여 있다. 가장행렬(假裝行列)도 있고, 조선(朝鮮) 고음악(古音樂)도, 나팔도 어디서 났는지 형형색색(形形色色) 조선색(朝鮮色)을 꾸며 놓았다. 도포(道袍)를 입은 사람, 관복(官服) 입은 사람, 사모관대(紗帽冠帶) 한사람, 광대희광이 기생(妓生), 무당(巫堂) 등도 섞여 장사진(長蛇陣)으로 열(列)을 지여 큰 길로 잡아들어 신암정(新岩町) 심항(尋港)까지 뻣쳤는데 민중(民衆)들은 독립만세(獨立萬歲)를 부르며 춤추는 사람, 노래하는 사람, 각색(各色) 오락(娛樂)이 구비(具備)하였고, 유건(儒巾) 쓰고 춤추며, 예복(禮服)을 입고 춤추며, 장구 들고 춤추며, 가야금을 들고 춤추며 춤과 노래뿐이 전시(全市)의 기색(氣色)이다.


* 세 번째 만세


나도 그 사이에 섞여가며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지만 눈물이 저절로 흘러 옷깃을 적신다. 나는 만세(萬歲)를 세번 불렀다. 광무제(光武帝) 즉위(卽位) 제이년(第二年)에 독립문(獨立門)을 세우고 전국(全國)이 만세(萬歲)를 부를 때와 제 2차 기미년(己未年)에 손병희(孫秉熙) 등 33인의 주장(主張)으로 만세(萬歲)를 부를 때 이번에 세번째 만세(萬歲)를 불렀다. 금번(今番) 만세(萬歲)는 일차(一次) 이차(二次)의 만세(萬歲)보다 좀 더 의미(意味)있게 불러보자는 것이다.


나는 감사의 눈물뿐이 아니라 조선독립(朝鮮獨立)을 위하여 해내(海內), 해외(海外)로 다니며 고생하다가 죽은 사람, 또 일구(日仇)들에게 붙들려 고문(拷問)에 죽은 사람, 감옥(監獄)에서 참형(斬刑)을 당(當)한 사람 그들이 오늘 있었으면 얼마나 기뻐하였을까. 나는 혁명(革命)으로 희생(犧牲)된 사람 위로회(慰勞會)에서 유가족(遺家族)들의 눈물 먹음과 위로금(慰勞金)을 받으러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울음을 참지 못하였다.


* 원영이가 찾어 옴


이튿날 나는 우리 교우의 집을 찾어 보았다. 태반(太半)이나 돌아오지 않고, 돌아온 이는 길가 혹은 어느 친구 집에 둔 의복(衣服)과 집물(什物)을 다 잃어버리고 어떤 심사(心事)가 부정(不淨)한 이는 물건을 두고도 소련군(蘇聯軍)이 가져갔다 핑계하고 주지 않아 찾지 못하고 어떤 이는 보안서(保安署)가 생긴 후에 서(署)에 말하여 찾는 이도 있다. 찾는 이는 10에 1이 못되고 잃은 이가 전부이다.


이날 원영(源永)이가 찾아왔다. 저의 물건을 지하실(地下室)에 두었고 동리(洞里)사람들도 우리 지하실(地下室)에 둔 것은 다 그대로 있어 찾아가고 신장로(申長老)의 약품(藥品)도 재봉기도 그대로 있어 찾아가고 유독히 장연옥(張蓮玉) 속장(屬長)은 자기 친척(親戚)의 집에다 두었더니 전부 도실(盜失)하였고, 한옥수(韓玉洙) 속장(屬長)은 정거장(停車場) 수송부(輸送部)에 둔 것이 전부 불타버리고, 장행선(張行善)은 경성(鏡城) 어느 아는 사람의 집에 둔 것이 없어지고, 이학열(李學烈)군은 한(限) 80리 밖 어느 아는 집에 갖다 둔 물건이 소련군(蘇聯軍)이 가져갔다는 핑계로 잃어버리고 우리 지하실(地下室)에 둔 물건과 인외동(仁外洞) 김집사(金執事)의 집에 둔 물건만은 다 그냥 있다. 우리도 재봉기(裁縫機)와 이불 등을 갔다 둔 것이 그냥 있어 찾았다.


어항(漁港) 진 전도부인(傳道婦人)의 소식(消息)을 몰라 가장 궁거워 가고자 하나 길이 막혀 갈 수 없고 소남리(小南里)의 원영(源永)에게 기별하여 좀 알아보라 하였더니 진 전도부인(傳道婦人)은 우리 온 것을 어찌 알았는지 찾아오시고, 황종탁(黃倧卓)군도 찾아와서 얼굴을 대하였다.


진전도부인(傳道婦人)의 피난담(避難談)은 참 자기자기하다. 어항(漁港)은 사면(四面)으로 총(銃)소리가 콩볶는 소리같이 볶아대고 대포(大砲)가 터질 때에 번갯불 같이 번쩍번쩍할 때에 그냥 교회당 안에 업디여 기도하고 정히 급하면 방공호(防空壕)에 들어가 숨기도 하고 그냥 주께 맡기고 기도만 하여 교당이 불타면 나도 같이 다 죽을 것을 각오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다.


황종우(黃鍾宇)군 부자(父子)는 피난(避難)갔다 돌아와 진 전도부인(傳道婦人)이 죽은 줄 알고 장례(葬禮)할 생각까지 하고 와서 진부인(陳夫人)을 만나고 서로 만나니 봉면희극(戱劇)은 웃음절반 울음절반 참 희극(戱劇)에 희극(戱劇)이다. 그 후에 소청(素晴)으로 돌아온 이학열(李學烈) 부처(夫妻)는 와서 붙들고 울기를 시작(始作)하여 목메인 소리로 “어서 남(南)으로 갑시다.” “남(南)에는 별 수 있는가. 조선(朝鮮)이 남의 나라 군사점령지(軍事占領地)가 되였으니 이것이 해방(解放)되기 전에는 갈 수 없고 오늘 해방(解放) 참 해방(解放)이 아니라 주의 처분(處分)만 기다리고 안심하시오.” 하고 위로(慰勞)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