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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파옥에 돌아와

2013.12.05 21:14

aesan 조회 수:960

* 밤은 김길남 집에서


저는 다리를 끌고 인외동(仁外洞)을 바라보며 오니 우선 궁금하던 김집사(金執事)의 집은 아무 상(傷)함이 없이 그대로 서있다. 내심(內心)에 어찌 다행한지 해가 너웃너웃 넘어 갈 무렵에 김집사(金執事)의 집에 오니 이상용(李相龍) 부처(夫妻)가 그 집에 유하고 있으며 우리를 영접(迎接)한다. 아픈 다리를 끌고 방(房)에 들어가 누우니 김집사(金執事)가 와서 “목사님 기도하신 덕(德)으로 집과 집물(什物)이 그냥 있으니 참 감사합니다. 그보다 우리 일행(一行)이 무사생환(無事生還)한 것 더욱 감사합니다.”


조금 있으니 보고 싶고 궁금하던 신창균(申昌均) 장로가 왔다. 서로 붙들고 눈물겨워 반기며 감사하였다. 위선(爲先) 예배당 존재(存在)를 물으니 다른 집은 다 타버려도 성전(聖殿)만은 무사하다고 마음에 위안(慰安)을 받었다. 신장로(申長老)는 13일 저녁에 인외(仁外) 최선처(最線處) 산하동(山下洞)에 들어가 피난(避難)하였는데 다소 곤란이야 있었지만 비교적(比較的) 안전(安全)하였다고 하여 기외(其外) 일반(一般)교우들의 존망(存亡)은 아직 알 수 없다고 위선(爲先) 업디여 감사기도(感謝祈禱)를 드리고 화원동(花園洞) 집에 가볼 용기(勇氣)가 나지 않아 그날 밤은 김집사(金執事)의 집에서 자고


*파옥에 돌아와


그 이튿날도 시내(市內)가 흉용(洶湧)하여 아직 정돈(整頓)이 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우리 부처(夫妻)는 큰 길로 갈 수가 없어 원동 골목길로 가노라니 모두들 완상(脘上)에 홍색장(紅色章)을 동이고 다닌 고로 우리도 홍색장(紅色章)을 한 조각 얻어 좌완상(左腕上)에 잡아매고 집에 찾아오니 세간물건은 난민(難民)이 다 가져가고 서책(書冊)은 실내(室內) 흩어 놓았고 예배당에 들어가니 강대상(講臺床)은 한 옆으로 밀쳐놓고, 풍금(風琴)도 가져갈 양으로 꺼집어 내여 놓았고, 시계(時計)도 떼여 놓았다. 며칠 전에 신장로(申長老)가 와서 보니 어느 장한(壯漢)이 올라와서 시계(時計)와 풍금(風琴)을 가져갈 뜻을 먹는 고로 신장로(申長老)가 “왠 사람이냐?”고 물으니 “나는 독립당(獨立黨)이라.”하며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그러니 우리가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비품(備品)을 전부 도실(盜失) 당(當)할 뻔하였다.


우리 부처(夫妻)는 다시 업디여 감사기도(感謝祈禱)를 드렸다. “부근(附近)가옥(家屋)이 다 불타버려도 아버지 집만이 보전(保全)되었으니 참 감사합니다. 이 집이 우리 교우들의 눈물로 산 것을 아시고 특히 보호(保護)하심 입니다.”하고 일어나 먼저 예배당 내(內)에 유리파편(琉璃破片)과 벽(壁) 떨어진 흙과 먼지를 다 청소(淸掃)하고 다시 강대와 풍금(風琴)을 정돈(整頓)하여 놓고 떼여 놓은 시계(時計)도 다시 걸고 물걸레로 맑았게 닦아 놓고 다시 일층(一層) 주택에 내려오니 마침 신장로(申長老)도 오셨다. 같이 깨어진 유리창(琉璃窓)에 널로 막고 또 양철로도 막고 흩어 놓은 서적(書籍)을 정돈(整頓)하여 깨여진 책장(冊欌)에 집어넣고 의복(衣服)이 성한 것은 다 가져가고 헌것은 발기발기 찢어 방내(房內)에 늘어놓은 것을 큰 보(褓)에 싸서 협실(夾室)에 넣어두고 부엌에 내려가 보니 부목정(釜目井)과 기명(器皿) 등은 전부 가져가고 당장(當場)에 밥 지여 먹을 곳도 없는지라. 쓸쓸한 빈방(房)을 다 소제하였다.


피난(避難)간 이웃사람도 돌아오지 않고 전등(電燈)도 다 깨여져서 전시(全市)에 불빛이라고 일점(一點)도 볼 수 없다. 단 두식구가 빈방에 잘 수 없어 할 수 없이 도로 인외동(仁外洞)으로 가서 밤을 지내고 그 이튿날 고아원(孤兒院)을 방문하니 안흥석(安興錫)은 서울 오지 않고 전위종(全渭鍾) 혼자서 고아(孤兒)들을 데리고 무서운 전란(戰亂)을 지내었다 한다. 먹을 것은 아이들을 위해 보리 쌀 좁쌀 전분 등을 얻어 놓고 몇 달 먹을 것을 예비(豫備)하여 놓았으나 앞으로 살 길이 막연(漠然)하다고 그런 중에도 전선생(全先生)은 우리의 생활까지 염려하여 석채일대(釋菜一帶)와 보리쌀을 보내주어 끓여 먹는 중이다.


인외동(仁外洞)에서 이틀밤을 지내고 화원주택(花園住宅)으로 내려오니 이기천(李基千)씨가 경성(鏡城)으로부터 돌아오고 이웃사람도 더러 오고 신문(新聞)집 김화봉(金華鳳)도 왔으나 그러나 빈 집에 혼자 있을 수 없어 이기천(李基千)씨의 가족(家族)과 한집에서 이틀밤을 지내였다. 하루, 이틀 지낸 후에 시내(市內)에 종종 사람이 보이고 집집마다 사람소리가 들리기를 시작(始作)하여 각처(各處)에 건설(建設)이란 소리가 외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