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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부춘산과 칠리탄

2013.12.05 21:13

aesan 조회 수:914

* 부춘산과 칠리탄


한가하면 나는 주인 노인(老人)에게 물어 보았다. “부령(富寧)에 정말 부춘산(富春山)이 있고 또 상강(相江)도 칠리탄(七里灘)도 다 있습니까?” 박노인(老人)은 “예전부터 그런 말이 있지요. 조선(朝鮮)사람이 중원(中原)을 흠모(欽慕)하느라고 엄자능(嚴子凌)의 살던 곳을 모방(模倣)하여 산수(山水)의 이름을 지은 일 있고 또 고대(古代)에는 택처(宅處)에 숨은 선배도 많었다.” 한다. 그 말을 듣고 다시금 산수(山水)을 바라보니 산세(山勢)가 그윽하고 수색(水色)이 명랑(明朗)하여 자취를 감추는 높은 선배가 가(可)히 서식(棲息)할 만한 곳이다. 시대(時代)가 평정(平定)되면 나도 이 곳에 주택을 정(定)하였으면 하고 호기심(好奇心)이 생(生)한다.


박노인(老人)의 사돈되는 황노인(老人)은 말하되 “내일(8월 18일)엔 집에 가보아야겠다.”고 주인 박노인(老人)도 “인외동(仁外洞)을 가보아야겠다.” 한다. 김집사(金執事) “우리도 가겠다.”하고 그 이튿날 아침밥을 일찍 지여 먹고, 김집사(金執事)는 어디서 얻었는지 조선복(朝鮮服)을 갈아입고 또한 베낭을 짊어지고 우리 칠인(七人), 황노인(老人), 박노인(老人) 이렇게 구인(九人)이 발정(發程)하여 완연(宛然)히 큰 길로 가지 못하고 강변(江邊) 유림(儒林)속으로 길을 찾아 들었다.


유림(儒林)을 지나 산 밑의 소로(小路)로 길을 찾으니 황노인(老人)은 여러번 다니는 도로(道路)이고 이 산 밑이 고갈되는 집도 있어 그리로 찾어 가는 중이다. 오다가 보니 유림중(儒林中)에 두어 민호(民戶)가 있는데 그때 일본(日本) 패잔병(敗殘兵)이 진(陣)을 치고 있고 바야로 취반(炊飯) 중인 듯하다. 파수(把守)를 보는 병졸(兵卒)에게 이리 통행(通行)이 무방(無妨)하냐고 물으니 가라고 하여


* 의사 이주섭을 만나


우리 일행(一行)은 진(陣)을 뚫고 무사통과(通過)하여 도동(桃洞)이란 곳에 오니 뜻밖에도 의사(醫師) 이주섭(李周燮)씨가 있어 맞이한다. 자기도 피난(避難)하여 친구(親口)의 집에 왔다. 가족(家族) 몇은 먼저 귀가(歸家)하고 자기는 의복(衣服)과 모양이 일본인 비슷한 고로 좀 예냉(礼冷)을 기다려서 가겠다 한다. 큰 기와집에 들어가니 황노인(老人)의 사돈집이라고 부르기는 이유사(有司), 이장의(掌儀)라고 부르니 아마 향교(鄕校)의 도유사(都有司)를 지내고 또 장의(掌儀)를 지낸 모양이다. 그 집에서 냉수(冷水)를 주어 점심밥을 먹었다. 다시 발행(發行)하여 한 낮으막한 고개를 넘으니 공동묘지(共同墓地) 소재(所在) 곧 직하동(稷下洞)이다. 이곳은 몇번 와 본적이 있어 산행(山行)이 익숙하다. 전에는 산등(山墱)을 넘어 다니던 것을 오늘은 길을 고쳐 큰 길을 잡아들었다.


* 일본천황 사진 치워달라


큰 길을 채 못 미쳐 나와 어느 나무 그늘 밑에 오니 화원동(花園洞) 우리집 이웃집 신문(新聞) 경영(經營)하는 김화봉(金華鳳)군의 부부(夫婦)를 만났다. 자기도 피난(避難) 왔다. 며칠 후에 갈 작정으로 지금 기다리는 중이라고 하며 우리가 먼저 화원동(花園洞)에 가거든 자기 집에 들어가 일본(日本)천황(天皇)의 사진(寫眞) 걸어 놓은 것 치워 달라는 것이다. 대답은 하였지만 어디 겨를이 그 집에 들어가 사진(寫眞)을 간수할 수 있으지 확답(確答)을 못하였다.


언제는 걸어 놓고 언제는 치워달라고 인심(人心)은 조석(朝夕)으로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위(所謂) 신붕(神棚)을 만들어 놓으라, 신사(神社)에 참배(參拜)하라 아니하면 역적(逆賊)이라 하는 소리는 귀 아프게 들었다. 그 소리가 다 어디로 갔는지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神社參拜)를 반대(反對)하다가 평양감옥(平壤監獄)에서 최후(最後)를 마쳤으니 참 충성(忠誠)스런 종이다. 나는 신사참배(神社參拜)를 한 적은 없으나 참배(參拜)를 무섭게도 주장(主張)하는 감독(監督) 밑에서 목사로 있었으니 참배자(參拜者)나 다름없다. 심히 부끄럽다.


*소련군인과 시체


큰 길에 오니 서슬 엄숙한 소련병(蘇聯兵)이 종종(種種) 길가에 늘어섰고 길가에 넘어진 시체(屍體)를 왕왕(往往) 볼 수 있다. 길을 아니 갈수 없어 가지만 참으로 무시무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