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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김집사 가방을 잃고

2013.12.05 21:10

aesan 조회 수:1079

* 김집사 가방을 잃고


거의 석대정거장(石帶停車場) 부근(附近) 수풀이 갚은 속에 들어가 숨어 다리를 조금 다리를 쉬는 중 인수(仁秀)<김 집사의 차자(次子)>가 오는 길에 가방을 잃었다고 그 속에는 현금(現金) 일천(一千)여원과 중요(重要) 약품(藥品)이 있다. 길가에 쉬다가 놓고 온 모양이다. 인수(仁秀)는 이것을 찾으려고 돌아서 간다. 말해도 듣지 않고 간다. 할 수 없이 김집사(金執事)도 따라 나섰다.


보낸 후 우리는 다시 업디여 기도하고 아무쪼록 무사 생환(生還)하기를 빌었다. 그러는 동안 별안간 와직끈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바로 우리 업디여 있는 옆 불원(不遠) 원지(遠地)에 폭탄(爆彈)이 떨어져 어느 자동차(自動車)가 부서지고 승객(乘客) 여자 일명(一名)이 죽고 또 운전수(運轉手)도 죽었다. 아이고 하나님 하고 다시 업디여 기도하고 인수(仁秀) 부자(父子)의 무고(無故) 귀환(歸還)하기를 간절(懇切)히 기도하였다. 조금 후에 김집사(金執事)는 인수(仁秀)를 데리고 무사히 돌아왔다.


* 박종건씨 댁 장흥역


일행(一行)은 다시 길을 발정(發程)하여 석대(石帶) 어느 집으로 갈까하고 정거장(停車場)을 지내니 역정(驛亭)(역과 역사이의 거리)은 지금 불타는 중이고 부근(附近) 가옥(家屋)은 다 창(窓)을 박아 놓고 사람이 있는 집은 한 집도 없다. 어디 접족(接足)(발을 들여 놓음)할 곳이 없고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두컴컴하다.


나는 장흥(章興) 박종건(朴鍾健)씨 댁(宅)으로 갈까 급(急)하거든 오라는 상약(相約)이 있었으니 박복녀(朴福女) 속장(屬長)은 그리고 가기를 주장(主張)한다. 한(限) 이십리(二十里) 거리(距離)를 또 가야겠다. 달빛은 희미(稀微)하고 인적(人迹)은 고요한데 난데없는 마병(馬兵)이 수백(數百)필 말을 몰고 일병(一兵)이 수십(數十)필씩 끌고 어둠속에 오는데 아마 회령(會寧)에 있는 마병(馬兵)이 패(敗)하여 말을 몰고 남(南)으로 가는 것은 틀림없고 또 그 곳에서 패전(敗戰)한 것도 분명하다. 그렇게도 기승을 피우고 천하(天下) 막강(莫强)을 자랑하던 일본인들의 최후(最後)가 이런가 하고 아픈 다리를 끌고 절뚝거리며 갔다.


가다 배가 고파서 찬밥덩이를 개천가에 앉아 먹고 또 떠났다. 길가에 인가(人家)가 있어도 한 집도 불 켜놓은 집이 없고 사람도 있는 것 같지 않다. 모두 피난(避難)간 모양이다. 가다 오는 사람들의 말을 들으니 일병(日兵)이 패하여 무산(茂山)방면(方面)으로 도주(逃走) 하였다 하며 소련군(蘇聯軍)은 북(北)으로 쳐들어오고 또 남(南)으로도 쳐들어오니 그 사이에 있는 일병(日兵)이 어찌 견디리요. 독안의 쥐처럼 되었다.


회령방면(會寧方面)으로 비행기가 수(數)없이 날라 남(南)으로 가고 또 동(東)으로 수(數) 없이 날라 온다. 대규모(大規模)적이요 일병(日兵)은 비행기(飛行機)도 대포(大砲)도 다 없는 것 같다. 나남방면(羅南方面)은 대포(大砲)소리가 쉬지 않고 비행기(飛行機)에서 던지는 폭탄(爆彈)소리도 전부 나남방면(羅南方面)인 듯하다. 달빛 밑에 어슴푸레 하게 보이는 것은 장흥(章興) 앞산인 듯하다.


박 속장(屬長)은 그 집을 한번 가보았다고 하나 밤이라 짐작을 할 수 없는 고로 길가 가까운 아는 집에 먼저 찾아가서 박종건(朴鍾健) 댁(宅)을 물어보고 찾아갔다. 박종건(朴鍾健)씨는 우리보다 먼저 와서 우리 소리를 듣더니 마주 나와 영접(迎接)하여 토(土)마루에 걸터앉고 다리를 쉬었다. 인제는 살았구나 하고 숨을 내쉬였다.


달빛 밑에 동리(洞里) 노인(老人)들이 놀러 온 모양인데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은 일병(日兵)도 있지 않고 홍군(紅軍)도 오지 않고 지나만 가며, 비행기(飛行機)도 휙 한 바퀴 돌다 지나가고 한번도 폭탄(爆彈)이 떨어진 일이 없었다고 한다. 박종건(朴鍾健)씨 춘장(春丈)은 농업(農業)으로 기가(起家)(쇠퇴하여 가는 집안을 다시 일으킴)하여 사는 모양이 고경(枯鏡)하여 보이고 깊은 학식(學識)은 없어도 순후(淳厚)한 고인(古人)이다. 또 그 집의 사돈이라 하는 노인(老人) 한 분도 피난(避難) 온 모양인데 성명(姓名)은 황희언(黃希彦)이라 주인 박노인(老人) 자부(子婦)의 실부(實父)라고 한다. 박씨는 이 고을에서 거성(巨姓)이고 또 황씨(黃氏), 장씨(張氏)도 거성(巨姓)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