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05 21:09
* 낭떨어지에서 떨어짐-아내 숙자 호곡(呼哭)
어느 여인(女人)은 유아(幼兒)를 버리고 어느 자식(子息)은 노모(老母)를 버림으로 길가에 호곡성(號哭聲)이 사람의 창자를 끈는 듯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다. 우리 일행(一行)은 천방지방 가는데 태양(太陽)은 내려 쪼여 구슬땀이 흐르고 목이 타서 죽을 지경이다. 어디 물 한 방울 얻을 데 없었다. 이렇게 일등(一嶝), 이등(二嶝), 삼등(三嶝)을 넘고, 사등(四嶝)째 넘는데 홀지(忽地)에 낭떠러지 언덕을 만나 오도 가도 못하고 뒤에서 아우성소리는 어서 가라는 소리이고 아니 가면 죽는다. 일행(一行)은 다 뛰어 내리는데 이 둔각(鈍角)은 뛸 수도 없다. 풀포기 나무포기를 붙들고 내려가다 낭떠러지 언덕에 떨어졌다.
떨어지고 보니 개골바탕 지질이 평평한 흙탕 물속이다. 다행 모진 돌맹이가 아니고 푸근한 진흙속이라 다치거나 상(傷)한 곳은 없다. 처(妻)는 내가 떨어져서 죽은 줄 알고 “아이고 어쩌나” 하는 소리에 나는 정신이 번쩍하며 “무사하니 어서 오우” 하고 소리 질렀다. 김 집사(執事)도 처(妻)도 나를 붙들고 동구(洞口)밖에 나오니 평탄한 모래사장(沙場)이고 옆에 개울물이 있다. 거기서 휴우하고 숨을 내쉬고 일변(一邊) 몸을 씻고 일변(一邊)다리를 쉬였다.
이 골에 우리뿐 아니라 각처(各處)에서 피난(避難)온 사람들이 모여 쉬는 중이다. 맑은 물을 떠다 목을 축이고 점심을 먹는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하여 들으면 아마도 일병(日兵)이 패하여 서북(西北)으로 달아나는 것 이 분명하다. 서소라(西小羅)에 상륙(上陸)한 소병(蘇兵)이 이 골짜기로 올런지 모르니 어서 일어나 가자고 재촉령이 내린다. 또 아픈 다리를 끌고 일어섰다.
동구(洞口) 밖을 나오니 피난민(避難民)들이 쌀을 한가마, 두가마씩 운반(運搬)하여 간다. 물으니 원철창고(原鐵倉庫)를 열어놓고 마음대로 쌀을 가져가라고 하여 난리(亂離)에 죽는 것보다 굶어 죽기가 더 무서워 포탄(砲彈)을 무릅쓰고 쌀을 가져간다.
우리 목적은 석대(石帶)를 가자는 것이다. 동구외(洞口外)를 나와 큰 길로 가는데 공중(空中)에 비행기(飛行機)가 쉴 사이 없이 자꾸 날라 온다. 우리는 비행기 소리만 나면 가다가도 풀포기 속에 숨고 또 일어나 몇 걸음 가면 또 비행기 소리가 난다. 또 풀포기를 찾아서 숨는다. 일보(一步) 이보(二步) 가다 숨고, 가다 숨고 이렇게 숨어가기를 한(限) 오리(五里)쯤 가서 수성(輸城)다리를 만났다.
다리만 건너면 무사할 줄 생각하였더니 다리 옆에 일병(日兵) 수십명(數十名)이 다리 좌우편(左右便)에서 지키고 있다. 무슨 뜻인지 몰랐더니 만일 위험(危險)하면 다리를 폭파(爆破)하려는 계획(計劃)이다. 우리를 보고 어서 건너가라고 건너다 비행기를 만나면 어찌하나 하고 죽을 힘을 다하여 그 다리를 겨우 건너 강(江)가의 나무 수풀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아무쪼록 우리 가는 것을 공중(空中)에서 보이지 않도록 숨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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