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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피난중

2013.12.05 21:04

aesan 조회 수:858

* 피난 중


하루는 김길남(金吉男) 집사(執事)가 와서 자기 집 곧 인외동(仁外洞)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교회에 일이 있으시면 내왕(來往)하시고 숙식(宿食)도 자기 집에서 하라는 것이다. 또한 그의 부인(夫人) 박복녀(朴福女) 속장(屬長)도 나를 아버지와 같이 자기 집에 오시면 한다. 피난군(避難軍)이 사면(四面)으로 흩어지고 지고 싣고 길에 널리었다. 그리하여 탁사(託事) 이기천(李基千)씨는 우리와 같이 경성(鏡城)으로 가자고 하였고 처(妻)는 먼저 경성(鏡城)에 가서 있을 방(房)까지 정(定)하여 놓고 왔다. 김길남(金吉男) 집사(執事)도 그 곳으로 가기로 정(定)하고 준비(準備)하는 중이다.


나는 들 가운데 기뢰(機雷) 떨어진 곳을 보려고 또는 소남리(小南里)에 있는 교우를 심방(尋訪)하려고 들 한 가운데로 지나가는 중이다. 별안간 수원(水源)학교에 채 가지 못하여 사이렌이 울린다. 운동장(運動場)에 교련(敎鍊)을 받던 생도(生徒)들은 귀가(歸家)하라는 구령(口令)을 듣고는 각각(各各) 집으로 도주(逃走)하는 중이고 들에 흩어 졌던 농민(農民)들은 모두 집으로 향(向)하여 오느라고 두 주먹을 쥐고 질주(疾走) 중이다.


나는 집으로 가자니 불급(不及)하고 또 야(野) 중에는 방공호(防空壕)도 없어 폭격(爆擊)을 당(當)하여도 할 수 없다 생각하고 아동들을 따라 인외동(仁外洞)으로 오는 중 숨이 턱에 차도록 헐떡거리었다. 막 인외동 동구(洞口)에 들어서니 김길남(金吉男) 집사(執事)가 나 보러 “어디를 갖다 오시느냐”고 방공호(防空壕)로 피입(避入)하여 헐떡거리던 숨을 진정 하였다.


또 며칠 지난 후에 그 때는 집에 있을 때라. 밤 10시쯤 하여 또 사이렌이 울리더니 조금 있다 기뢰(機雷) 일개(一個)가 떨어지는데 폭음(爆音)이 굉장하여 시내(市內)를 진동하여 몹시도 놀랬다. 와직끈 하는 소리가 날 때 번개불이 번쩍하여 더욱 놀래였다.


그 이튿날 아침에 명중(命中)된 곳을 보려고 나아가니 사방(四方)으로 줄을 막고 통행(通行)을 금지(禁止)하였다. 명중(命中)된 곳은 곧 청진(淸津)백화점(百貨店) 앞 대로상(大路上) 세멘트로 다진 길바닥이다. 수십(數十) 길이 파여지고 부근(附近) 수십호(數十戶)가 다 도괴(倒壞)되고 오천보 이내(以內)의 가옥(家屋)은 유리창(琉璃窓)이 전부 파괴(破壞)되었다. 유리(琉璃) 파편(破片)이 길가에 흩어진 모양은 완연(完然) 전시(戰時)의 상태(狀態)이다.


그리고 며칠 후 어느 날인지 밤 9시쯤 하여 동해안(東海岸) 부근(附近)에서 퉁탕하고 대포(大砲) 소리가 나는데 그 때는 사이렌도 없이 대포(大砲)와 비행기(飛行機)가 온 모양이라 나는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고 그 이튿날 소문을 들으니 소련방면(蘇聯方面)에서 왔다는 것이다. 소련(蘇聯)과 일본(日本)은 동맹국(同盟國)이다. 계약(契約)된지 며칠이 되지 못하여 아직 교섭중(交涉中)인데 돌연(突然)히 전쟁(戰爭)을 시(試)할 리가 있느냐고 하여 안심하는 빛을 보이더니 한(限) 3일 미기(美機)도 소기(蘇機)도 없어 아주 무사할 줄 알았다. 


그러나 8월 12일 주일(主日) 아침에 나는 예배정지(停止)를 선언(宣言)하고 그 이튿날 13일은 경성(鏡城)으로 갈려고 이기천(李基千)씨에게 이불과 옷 몇벌을 싸서 구루마에 실어 보내고 같이 갈 김길남(金吉男) 집사(執事)를 기다리던 중 별안간 동해방면(東海方面)에서 대포(大砲)소리가 요란하매 사방(四方)에서 불이 일어나며 경비단(警備團)과 순경(巡警)들은 총을 들고 왔다갔다 매우 장황 중이다. 우리는 경성도 갈 수 없고


숙자는 인식(仁植)(김집사 유아(幼兒))을 업고 우리와 함께 인외동(仁外洞)으로 올라가는데 사면(四面)에서 퉁탕하는 소리 천지(天地)를 진동(震動)한다. 신창균(申昌均) 장로는 한약(漢藥)부스러기를 묶어 짊어지고 내외(內外)분이 인외동(仁外洞)으로 올라가며 같이 가자하나 김집사와 진퇴(進退)를 같이 하자고 약속(約束)한지라 어길 수 없어 김집사 가족(家族) 5인, 우리 2인 합 7인이 며칠 먹을 양미(糧米)를 조금씩 싸 짊어지고 인외동(仁外洞)중학교(中學校) 뒷 산상(山上)으로 기여 올라갔다.


가며 뒤를 돌아다보니 청진시내(淸津市內)가 온통 불바다가 되여 방금(方今) 연소(燃燒)중인데 청진중학교(淸津中學校), 청진역사(淸津驛舍)와 부청(府廳)과 경찰서(警察署) 그 후 중요(重要) 건물들이 다 불이 붙어 화광(火光)이 충천(衝天)하였고 또 일인일살(一人一殺)이라고 하던 일본인 남녀(男女)들도 다 간 곳이 없고 경비단(警備團)과 순사배(巡査輩)도 다 도망질 치고 말았다.


이것은 일인들의 응전기분(應戰氣分)을 양성(養成)한지 기구(己久)라 볼 수 있다. 전쟁(戰爭)을 주장(主張)하던 사람들이 각처(各處)에서 패전(敗戰)을 호도염치(糊塗廉恥)하여 민가(民家)를 속여 왔고 지금 홍군(紅軍)이 상륙(上陸)하여도 총(銃) 한방 교전(交戰)해 보지도 못하고 다 도망가거나 그렇기 않으면 다 포로(捕虜)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산상(山上)에 올라가 이것을 바라보고 염려하기는 우리 교회당은 어찌 되었는가? 아무쪼록 우리 무죄(無罪)한 백성들의 사는 집은 이 전화(戰火)를 면(免)케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높은 산마루턱을 셋이나 넘어가노라니 수풀은 우거지고 사람들의 가는 것이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 소리 질러 사람의 가는 것을 짐작하였다. 다른 동행들은 다 건각자(健脚者)이라 빨리 가지만 이 노물(老物)은 뒤에서 총(銃)소리가 덜미를 쏘는 것 같지만은 도저히 빨리 갈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