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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화원정 집을 구입

2013.11.25 16:40

aesan 조회 수:1157

* 경관들의 핍박


나는 최후(最後)에 이 소식(消息)을 듣고 도고등계(道高等係)를 찾아가서 늦게 들은 것을 사과(謝過)하였으나 근본 나를 미워하던 고등계(高等係)주임(主任)은 무례(無禮)한 말을 함부로 토(吐)하매 교회를 장로교(長老敎)와 합병(合倂)하라는 위협(威脅)이 무쌍(無雙)하였고 일어(日語)를 모르는 교역(敎役)은 쓸대 없다 하며 모욕(侮辱)이 무수(無數)하다. 그 후에는 임원(任員)들 중 일어(日語)에 능통(能通)한 자 몇 사람 추천(推薦)하라 하여 청진(淸津) 김남수(金南洙), 어항(漁港) 황종우(黃鍾宇), 경성(鏡城)의 신병철(申炳哲) 이렇게 이름을 적어 주었다.


이번 경찰서(警察署)에서 이런 수욕(受辱)을 받게 됨을 보아 앞으로도 무슨 위해(危害)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폐지(廢止) 명령(命令)이 내리기까지 교회를 지키기로 결심하였고 보국대(報國隊)로 나오라 또 근로봉사(勤勞奉仕)로 나오라는 추상(秋霜)같은 호령(號令)이 내리였지만 70세 노물(老物)이 나갈 수 없는 고로 거절(拒絶)하였으나 부득이(不得已)하면 가처(家妻)를 대신 하였으니 당국(當局)의 주목(注目)은 말할 것도 없고 또 장로교(長老敎)에서는 주일(主日) 조예배(朝禮拜)를 정지(停止)하여 근로봉사(勤勞奉仕)에 일하고 저녁예배만 보는 중 우리 교회에서는 조예배(朝禮拜)를 폐(廢)치 않고 그대로 계속(繼續)하여 보는 고로 더욱 주목(注目)이 심하다.


* 화원정 집을 구입


우리는 예배할 집을 사자고 직원회(職員會)에 가결(可決)하고 기도하던 중 고아원(孤兒院)에서 나온 후 교우들이 한푼 두푼 모은 것이 한(限) 2,000원 가량 되고 더 모아 가지고 착수(着手)하기로 하고 어느 삼일기도회(三日祈禱會)에서 직원(職員)들부터 연보(捐補)를 시작(始作)하자고 정(定)하고 그날 적은 모인 것이 최고(最高)가 이익수 장로 700원, 김길남 집사 600원, 김진호 500원의 위시(爲始)로 그 다음 주일(主日)까지 허락(許諾)된 것이 한(限) 7,000원이 되었다. 뜻밖에 놀라운 숫자이다.


현금(現今) 예배를 보는 집 주인 배석현(裵錫賢)씨가 와서 집을 사라고 권고(勸告)한다. 사면(四面)으로 집을 구(求)하여 보아도 예배소(禮拜所)가 이 집같이 든든한 곳이 없는 고로 이 집을 사면하던 차에 배석현(裵錫賢)씨의 권고(勸告)가 있다. 대가(代價)가 얼마냐고 물으니 일 만원이라고 한다. 현금(現今) 돈이 칠천원 밖에 없으니 살 수가 없다 답(答)하니 배씨는 일천원은 내가 교회에 기부(寄附)할 터이니 구천원에 사라고.


나는 감사합니다 만은 직원회(職員會)에 상의(相議)하여 보겠다 하고 그 이튿날 이장로와 김집사(執事)에게 그 말을 전(傳)하였더니 두 분은 그 이튿날 배씨를 찾아가서 구천원이 많은 것은 아니나 우리 힘이 부족하다 하였더니 배씨가 또 하는 말이 그러면 내가 일천원을 더 기부(寄附)하겠으니 팔천원에 사라하여 그 말을 들은 두 분은 곧 나에게 그 소식(消息)을 전(傳)하였다.


나는 그 집을 사기로 내정(內定)하고 계약금(契約金)으로 삼천원을 주기로 결정하였더니 이익수(李搦洙)씨는 반대(反對)하여 우리 교회에서 그런 큰 집을 사 무엇하느냐고 칠천원 중에서 삼사천원을 제(除)하여 합당(合當)한 전도인(傳道人)을 두는 것이 가(可)치 않느냐고 한다. 나는 부답(不答)하고 기여이 계약금(契約金) 삼천원을 주고 매매계약(賣買契約)을 성립(成立)하였다.


그러나 현금(現金)이 칠천원은 있으나 또 부족이 일천원이라. 나는 일년간(一年間)의 봉급(俸給)을 제공(提供)하고 빚을 얻어 산 후에 갚겠다고 본부(本部)에 보고(報告)하였더니 본부(本部)에서 나의 봉급(俸給) 제공(提供)한다는 말을 듣고 일천원의 보조(補助)가 내려왔다. 이 돈을 합(合)하여 팔천원을 다 지불(支拂)하고 본부(本部) 감독(監督) 정춘수씨의 명의(名義)로 이동(移動)하여 본(本)교회 재단법인(財團法人)에 편입(編入)하니 시(時)는 1945년 3월이다.


교회가 고아원(孤兒院)과 분리(分離)하여 나온지 8개월 만에 이 집을 샀으니 우리 사랑의 하나님은 제일을 제가 하는 자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고아원(孤兒院)에 있을 때는 모든 것을 고아원(孤兒院)에 의뢰(依賴)하였다. 전정비(電灯費)도, 겨울에 석탄(石炭)도, 교당(敎堂)물건도 다 고아원(孤兒院)에서 맡아하고 재정(財政)도 고아원(孤兒院), 직원(職員)도 고아원(孤兒院), 전부가 고아원(孤兒院)에서 주관할 때는 목사가 봉급(俸給)도 받지 못하거든 하물며 저금(貯金)이야 생각하였으랴.


나온 후에는 재정(財政)도 우리가 전정(電灯)도, 집세(貰)도, 석탄(石炭)도 다 우리 손으로 반출(搬出)하고 목사봉급(俸給)도 우리 손으로 장만(腸滿)하고 문권이동비까지 한 구천원도 다 우리 손으로 장만(腸滿)하였으니 진실(眞實)로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아닌가. 문서이동(文書移動)한 날이야 비로서 우리 집에서 마음 놓고 예배를 보았다. 여러 형제자매(兄弟姉妹)들은 할렐루야 찬송(讚頌)을 부르며 기뻐하며 예배하였다. 우리 부처(夫妻)는 다시 감사기도를 드리고 옛날 일을 추억(追憶)하였다.


이 종이 래북(來北) 이후(以後) 청진역(淸津驛)에 하차(下車)하던 날부터 마귀(魔鬼)는 맹렬(猛烈)한 시험(試驗)을 시작(始作)하여 이 종을 넘어뜨리려고 계획(計劃)이 가장 밀밀(密密)하였고 또 나를 시험(試驗)하는 이는 불신자(不信者)가 아니고 다 교회 중진(重鎭)이며 인격(人格)도 상당(相當)한 인물(人物)이다. 최주경, 신종악, 안흥석 삼인은 권사(勸士), 장로(長老), 전도사(傳道師)이다. 당연(當然) 담임자(擔任者)를 위하여 헌신(獻身)하여 교회를 도와줄 터인데 하고(何故)로 나를 반대(反對)하였는가. 나는 아직도 사랑이 부족하여 그들의 심지(心志)를 파악(把握)하지 못하였고 또 나는 남방(南方)의 풍습(風習)과 예법(禮法)만 생각하고 북방(北方)사람의 고유(固有)한 성질(性質)을 알지 못함이 모두 나의 부족이라. 이날에 절절(切切)히 들어 자복(自服)하고 주님의 뜻을 받들어 충성(忠誠)스런 종이 되기를 결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