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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277. 시견위죄(恃見爲罪) 요한복음 9:41


주 일찌기 말씀하시기를 나는 세상을 심판하시 않는다 하셨으니 요3:17, 8:15, 12:47절에 다 그 뜻이다. 그런데 9:36절을 보면 당신이 심판하러 세상에 오셨다 하니 무슨 뜻인가 이는 주가 심판하심이 아니요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를 심판함이라. 즉 2:35절 말씀과 같이 여러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리라 함 같이 주는 저절로 사람의 생각에 드러나는지라.


이곳에 눈뜬 사람은 주의 은혜로 눈을 떴으니 그 마음에 감사가 저절로 금할 수 없이 드러나 은혜를 찬양하고 바리새 사람들은 주의 이적을 보고도 감사치 않고 도리어 주를 경멸히 여기며 바로의 마음이 이적을 보고도 점점 강팍함 같고 또 질흙이 태양을 보면 도로 굳어짐 같은지라.


그 후에 눈뜬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 자기 눈뜬 것을 자랑하고 예수라 하는 이가 고쳐 주었다고 자꾸 선전함에 저의 다니던 교회에서 선전치 말라 금하여도 불고선전을 쉬지 않는지라. 그 교회에서 출교까지 하여도 여전히 선전하는지라. 그 후에 주께서 그 사람을 만나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느냐. 주여 누구오니까. 주 가로되 내가 곧 그로다 하시니 눈뜬 사람이 경배하는지라. 그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그를 출교까지 시키고 생명의 구주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니 실로 눈이 먼 사람들이라. 주가 이렇게 만든 것 아니요 저들이 스스로 눈을 감고 보지 않으려 함이라.


모세 얼굴에 수건을 가리우고 바울의 눈에 비늘이 덮여지고 마귀가 복음의 광채가 가리우지 못하게 함이라. 저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눈이 멀지 않았다 하니 이것이 죄를 정함이라. 자기가 자기를 심판함이라 마 11:25 말씀 같이 지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 숨기시고 어린아이 같고 맹인에게 나타나시니 참 감사합니다. 예수를 모르는 것이 일시에 착오에 지나지 않으나 그것이 변하여 실패가 되니 실패가 변하여 죄가 된다. 거라사 사람들이 예수를 영업방해자로 알고 축출함 같이 유대사람들은 예수를 축출함으로 죄가 되어 영벌을 받는다.

오늘 조선 사람은 예수를 보는가? 보지 못하며 보는 체하고, 알지 못하며 아는 체하고, 능치 못하며 능한 체하는 것이 죄이다. 체라는 것이 죄이고 우상이다. 전일 함자 군수 태선은 체로 망하였지요. 양반인 체, 글하는 체, 잘 안 체, 자저를 자행하다가 민란을 만나 쫓겨 갔지요.


우리도 믿는 체하고 주를 배반하면 멸망을 자취한다. 이것은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파고 자기 노끈을 자기를 결박함이라. 이런 사람은 주도 할 수 없이 버려둘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롬 1:28 말씀과 같이 악한 마음을 사랑한 대로 버려둘 수밖에 없다. 그런고로 자기가 자기를 심판하여 버린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까지 구원키로 정하였으나 자포자기하는 자는 할 수 없다. 딤후 3:5을 보면 모든 악에서 돌아서라 하였으니 돌아서는 자는 살고 그냥 가는 자는 죽는다. 결단바위를 지나지 말라고 불러도 듣지 않는 것 어찌합니까.


유대 사람의 멸망이 저에게 있다. 유대사람들은 칭찬받기 좋아하고 아는 체 능한 체 체가 많다. 방송신장의 소리 날 때 한탄한 들 무슨 소용 있는가. 조선 사람이 나라를 모르고 토지 귀한 줄 모르고 지내다가 나라가 없어지고 토지가 없고 보니 이제야 비로소 아이고 하고 탄식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하고 회심하기 바라오.


오늘 나라가 회복되고 토지도 회복되게 된 이때도 아직 깨지 못하여 갈팡질팡하는 생활은 계속하니 곧 깨기를 바라오. 저들이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비오고 개일 것을 알고 무화과 잎을 보고 봄 오고 가을 오는 것을 알면서 저들의 심령적 기후가 화를 불러 로마 병정이 불구에 예루살렘에 이를것을 모르면 벨사살이 술을 마시던 날 밤에 파사군대가 자기를 잡아 갈 것을 몰랐다. 차라리 눈이 멀엇더면 죄가 없을 터인데 본다 함으로 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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