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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290. 애하면 볼 수 있다. / 요일 4:12-15

2013.11.11 11:54

aesan 조회 수:1062

290. 애하면 볼 수 있다. 요일 4:12-15


사람은 하나님을 보는 것이 만족한 영광이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 후로 하나님을 보면 죽는다고 성경에 말하였다. 고로 사람들이 직접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간접 곧 다른 방법으로 볼 수 있도록 방법을 베풀었다. 하나님의 별명은 사랑인데 사랑의 대표로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아들을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보는 것으로 법을 정하였다.


요 14:9 오늘 사도께서 하나님 볼 수 있는 법을 말씀하셨으니 곧 사랑이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거기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주가 우리 방에 거하심으로 된다. 주가 우리 마음에 거하시게 되는 것은 성신 주심으로 안다. 성신이 오심은 주가 계신 증거요 주가 계신 증거는 성신 오심이라. 여기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게 있는 사랑으로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으나 오직 주가 계시면 할 수 있다. 신앙과 종교가 이에 지낸다면 미신이 된다. 교회는 빈 껍질뿐이오 교역자는 다 위선자가 된다.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사랑이요 우리가 하나님을 보는 방법도 사랑이다. 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어찌 사랑할 수 있으리오. 이 말씀은 형제를 사랑함이 곧 하나님을 사랑함이라.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오직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을 볼 때 예수 없는 자는 너무 무서워 바위에 떨어졌다.


어떤 사람은 가리워라 하지만 오직 믿는 자는 조금도 두려움 없이 아버지를 뵈올 수 있다. 사랑엔 두려움이 없어진다. 유대 사람들이 예수를 보고도 알지 못함은 사랑이 없는 까닭이라. 주 말씀하시기를 내 위에 볼 것은 보지 못해 사랑으로 보게 하고 보는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니 저들이 가로되 우리가 눈이 멀었느냐 팔 다리 눈이 멀었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 함으로 죄가 있다 하시니 과연 이 세상 사람이 보고도 모르고 사랑 없음으로 보고도 모르고 사랑이 없음으로 자식도 모른다.


사랑하면 볼 수 있다. 사랑하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심은 사랑하면 사람을 볼 수 있고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도 보지 못한다. 사람을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을 대할 때 하나님을 대하듯이 대하여야 한다. 사람을 대할 때 사람 옆에 누가 또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우리를 감시하고 태도를 주시한다. 네가 하나님 앞에만 봉사하고 사람에게 봉사할 줄 모르면 내게도 봉사할 줄 모르는 자이다. 고로 우리 생활은 왕**으로 되어있다. 위에 하나님 그 아래에 나가 있고 내 옆에 사람이 있다.


고로 예물을 제단에 바치려고 오려면 먼저 형제와 사화하라 함이 이 뜻이다. 야곱이 형 에서를 볼 때 원수가 눈 녹듯이 없어지고 내가 형님 얼굴을 대하니 하나님 얼굴 대함 같다고 사랑하면 볼 수 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볼 수 없는 것이 큰 죄악이다.


지금은 마음을 통하여 먼 세상을 희미하게 보이지만 오래지 않아 사랑의 세상이 되면 직접 볼 수 있다고 사도는 말하였다. 이것은 내세의 문제이지만 금세에도 믿음과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이상이올시다. 그러나 볼 수 잇는 사랑을 사랑치 않는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여러 선지가 묵시를 보았지만 특히 요한 사도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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