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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35. 지금은 자다가 마땅히 깰 때로다(此時寢當醒) / 로마서 13:11


當寢而寢, 當醒而醒, 是自然元則, 譬如日往月來, 不可變易, 若有變易, 則必有災異 不觀朝鮮近古事乎? 君臣上下, 晝則臥眠, 夜則迭蕩, 亡國敗家, 皆由此矣. 聖經累言寢, 寢者死亡之意, 信者有復活, 故寢非永寢, 乃破冥搖而復起云. 然此云寢者, 指各種罪惡, 卽貪食醉酒, 淫亂放蕩, 爭鬪猜忌等也. 今世之人, 如此等 各種恣行無忌, 而自謂之生, 生非眞生, 死亡無日矣. 新聞云鐵路沿邊之人, 夏夜納凉, 枕鐵而臥, 不覺睡深, 汽車忽到, 二人轢死云, 罪中之人, 與此無異, 死亡猝至, 謂陵掩我, 謂樹掩我, 皆不能掩, 初不如遠避也. 故寢當醒, 寢則不能預備, 不見愚女五人乎? 不知新郞之猝至, 欲預備燈油則, 已不及矣. 預備者備未來也. 防飢防寒是也. 以歷史的徵求, 過去壬亂以無備而發, 其後丙亂亦然, 國家以無備亡, 吾朝鮮人痛徵此無備. 今日之貧困, 亦由此無備, 農夫之無穀, 學生之落第, 皆由此無備而致之, 甚矣無備之害也, 何人果無備也? 卽眠者寢者也, 寢時田畝荒, 寢時詩書蠹. 古語曰 白蟻囓大樹, 無備之害, 而甚徵細不能察知, 然至大樹顚覆後始覺也. 嗚乎晩矣! 故常戒其小, 不必戒其大也. 溺沒大洋者甚小, 溺沒于一酒杯者甚多, 何故也? 不戒其小故也. 故人當有備, 有備者誰敢侮之? 詩云 撤彼桑土, 綢繆牖戶, 孰敢侮也? 彼不孝云者何也? 非虐其父母者也. 卽惰其四肢, 博奕好飮酒者是也. 如是放逸者, 何暇顧父母乎? 故各種罪惡, 生于惰怠也. 勤勉者, 無犯罪之暇, 勤耘者, 誰勸賭博乎, 勤讀者, 誰勸其酒色乎? 賭博酒色, 皆惰怠者之道具也. 故寢當醒, 寢者不覺魔試, 主曰 睡眠之間, 讐來播種也. 人心如弓, 不持滿則矢不放, 人心一有懈弛, 万事不成, 經曰 魔乘隙而入, 隙者何也? 卽學生之時, 心飽眞理, 則物不可添, 心無眞理, 則他物易入也. 諺曰 針孔入牛風, 此何意也? 針孔至小, 如牛之風, 豈可入乎? 受風之人, 心上風害之大, 不可形言故云耳. 人心之隙, 雖小如針孔, 魔一入之, 則其害甚大也. 且如農者, 常察己田, 如有雜草則, 卽時拔去, 無使正穀被害可也. 農者懈怠, 不顧己田則, 不知不覺之間, 稂莠蓄生, 無俟正穀矣. 更解隙字, 若陽貨欲遺孔子以物, 而 孔子不欲受, 故瞰孔子之無而遺之, 無者隙也. 兵營有把軍, 心有把軍, 常把守門口, 使敵不敢入, 敵瞰無把軍, 欲忽入之, 危哉隙也! 隙果指何而言也? 心之隙, 有各種綿弱時有隙, 或飢渴, 或疾病, 貧乏無能力之時, 試誘易入, 此時毅然不動者, 可謂大丈夫, 主之克三試者在此也, 四十日之飢, 苦不可形言, 而小不動心, 重陷試苦者當仰瞻, 見虛榮時, 試誘易入也. 心無眞則假入, 眞假不相容, 眞則假不成, 假則眞不成也. 世本虛假, 我亦虛假, 假而又假, 眞何處覓得乎? 惟祈主見之, 主眞故我亦眞, 眞而又眞, 則假何處從生也? 故警省自己, 常常充滿聖神, 庶試誘不入也. 故寢當醒, 激動時, 試誘易入, 敵我爲對, 敵常挑我, 使之發怒, 妄動後邀擊其虛, 而無備則敗矣. 戰術彼我相同, 我亦對敵如是, 我若無眞, 則此時狂叫亂發, 失敗十常八九矣. 激非本性, 使水激而在山, 非水之性 幼兒好食, 人激勸之, 則必破腹爲死也. 魔術使我 激惡陷罪, 人若不察而陷之, 則必死也. 故寢者當戒此. 魔入之隙甚多, 然被激時尤難, 或曰 人在万瀑洞, 初甚恍惚不省矣, 後神經倦怠, 忽易致睡也. 人在万事叢集之中, 初甚恍惚, 後乃倦怠 不注意, 蹉跌墮之, 危哉睡也. 保羅在 드로아 講道, 夜久유두고 不勝睡而墮死云, 吾人睡久, 非但遇試 必入死亡, 故保羅曰 寢當醒, 僉位勉之.


잠잘 때 자고, 깨야할 때 깨어나는 것이 자연의 원칙입니다. 비유해 말하면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은 변경시킬 수 없는 것인데, 만약 이것을 변경시켰다면 반드시 재앙이나 이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조선의 근고 역사를 보지 않았습니까? 임금과 신하, 아래와 위가 낮에 낮잠 자고 밤에는 질탕하게 놀이를 하니 나라가 망하고 집안이 거덜 난 것이 모두 이 때문입니다.


<성경>에 여러 번 잠자는 데 대한 말이 있습니다. 잠자는 것은 죽은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신앙을 가진 자는 부활하므로 잠을 자도 영원히 자지 않습니다. 어둠을 흔들어 깨뜨리고 다시 일어나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잠이라는 것은 각종의 죄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곧 음식을 탐내고, 술에 취하고, 음란하고, 방탕하고, 다투고, 시기하는 것들입니다. 요즈음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여러 가지를 거침없이 함부로 행하면서 그것을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참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죽음이 언제 닥칠지 모릅니다.

신문에 난 사건인데 철길 가에 사는 사람이 여름밤에 더위를 시키려고 철길을 베고 누웠다가 그만 깊이 잠이 들어 갑자기 달려온 기차에 두 사람이 치어 죽었다고 합니다. 죄를 진 사람도 이와 다를 게 없습니다. 죽음이 갑자기 닥치면 산이 막아주겠습니까, 나무가 막아 주겠습니까? 모두 막아주지 못합니다. 애초에 죽음을 멀리 피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잠을 깨어 있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잠을 자면 미리 대비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처녀 다섯 명을 보지 않았습니까? 신랑이 갑자기 올 것을 몰랐다가 갑자기 등유를 준비하려고 하였으니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예비라는 것은 미래를 대비하는 것입니다. 굶주림을 막고 추위를 막는 것이 이것입니다.

역사적 사건으로 증거를 찾아봅시다. 임진왜란도 준비가 없어 발생한 것입니다. 그 뒤에 병자호란도 역시 그러합니다. 국가도 예비하지 않으면 망하게 됩니다. 우리 조선 사람들은 이와 같이 준비가 없는 것을 통렬히 반성해야 합니다. 오늘날 빈곤도 역시 이와 같이 준비가 없는 데서 온 것입니다. 농부가 곡식이 없고 학생이 낙제하는 것도 이와 같이 준비를 못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준비하지 않은 피해가 이렇게 큰데 어떤 사람이 과연 준비를 하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런 사람이 바로 잠자는 사람들입니다. 잠자는 동안에 밭이 묵어버리고, 잠자는 동안에 책들이 좀먹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흰 개미 큰 나무 물어 쓰러 뜨린다라고 했는데, 방비하지 못한 피해로써 작을 때 살피지 못한 것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 큰 나무가 쓰러진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아차! 하면 늦게 됩니다. 그러므로 늘 조그만 일에서 경계하여야 합니다. 큰 것만 경계할 필요는 없습니다. 큰 바다에 빠져 죽는 자는 매우 적고, 도리어 작은 술잔에 빠져 죽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작은 것을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땅히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준비가 있으면 누가 감히 업신여기겠습니까? <시경>에 이르기를 장마가 지기 전에 뽕나무 껍질과 흙을 주워다가 튼튼한 둥지를 만들면 누가 감히 나(새)를 업신여길까 하였습니다.

불효라고 이른 자는 그 부모를 학대한 자가 아닙니다. 바로 자기의 사지(四肢)를 게을리 하고 도박을 좋아하며 술을 잘 마시는 자가 그런 사람입니다. 이와 같이 방탕하고 게으른 사람이 어느 겨를에 부모를 돌보겠습니까? 그러므로 각종 죄악이 게으름에서 생겨납니다. 부지런한 자는 죄를 지을 여가가 없습니다. 부지런히 밭가는 자에게 누가 도박을 권할 것이며, 부지런히 공부하는 자에게 누가 주색(酒色)을 권하겠습니까? 도박이나 주색은 모두 게으른 자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이 마땅합니다. 잠자는 사람은 자기도 몰래 마귀의 시험에 빠져듭니다. 주님께서 이르기를 잠자는 동안에 원수가 와서 가라지 씨를 뿌린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활과 같아서 활줄을 꽉 차게 당기지 않으면 화살이 나가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한번 해이해 지면 만사를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마귀는 틈을 타서 들어 온다고 했습니다. 틈이란 무엇입니까? 곧 학생일 때에는 마음에 진리를 배불리 가지면 다른 물건을 더 보탤 수가 없지만, 마음에 진리가 없으면 다른 물건이 비집고 들어오기 쉽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바늘구멍에 황소바람 들어온다(針孔入牛風)라고 했습니다. 이는 무슨 뜻입니까? 바늘구멍은 지극히 작은데 소와 같이 큰 바람이 어떻게 들어옵니까? 바람을 받는 사람의 마음에 바람의 피해가 큰 것을 형용할 수가 없어서 이르는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속의 틈이 바늘구멍처럼 작아도 마귀가 한번 들어오면 그 피해가 매우 큽니다. 또한 농사짓는 사람이 늘 자기의 밭을 살피다가 만일 잡초가 돋아나면 즉시 뽑아버림으로써 진짜 곡식의 피해가 없도록 해야 옳은 것과 같습니다. 농사짓는 자가 게을러서 자기의 밭을 돌보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강아지풀들이 더부룩하게 자라서 좋은 곡식의 수확을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다시 틈[隙]에 대하여 풀이해 보겠습니다.

양화(陽貨)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나, 공자가 받지 않으므로 공자가 집에 없는 것을 엿보고 있다가 선물을 보내었습니다. 없는 사이가 틈이었습니다.

병영(兵營)에도 파수꾼이 있고, 마음에도 파수꾼이 있어서 늘 문을 지켜서 적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적은 파수꾼이 없는 틈을 타서 갑자기 들어오려고 하니 틈은 위태롭기도 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틈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마음속의 틈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마음이 허약할 때 틈이 있습니다. 허약하다는 것은 굶주리고 목마를 때나, 병으로 앓을 때나, 가난하여 능력이 없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마귀의 시험이 쉽게 침입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마음을 꿋꿋이 하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가히 대장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마귀의 세 가지 시험을 극복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40일 동안의 굶주림은 그 괴로움을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이지만 조금도 마음을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의 고통에 빠진 자는 마땅히 우러러 보아야 합니다.

허영을 볼 때에 마귀의 시험이 침입하기 쉬우니, 마음에 진실이 없으면 거짓이 끼어듭니다. 진실과 거짓은 서로 용납하지 않습니다. 진실에는 거짓이 끼어들 수 없고, 거짓에는 진실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본래 허영과 가식으로 되어 있는데, 나 자신 또한 허영과 가식으로 되어 있다면 거짓에 거짓이 또 보태는 것이므로 진실을 어디서 찾아내겠습니까? 오로지 주님에게 기도하여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께서 진실하기 때문에 나도 진실하게 되고 진실이 또 진실을 더하게 되면 거짓이 어디서 나타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여 자기 자신을 깨우쳐 늘 성령이 충만하게 되면, 어떤 마귀의 유혹도 침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이 마땅하다고 한 것입니다.

어떤 일이 거세게 격동하는 때에 마귀의 시험에 유혹이 쉽게 침입합니다. 적과 내가 맞닥뜨리면 적이 늘 나에게 도전하여 성을 내도록 하고, 내가 함부로 움직일 때 적이 나의 허점을 맞이해 공격하여 내가 준비가 없으면 패하게 됩니다. 전술이 저와 내가 서로 같다면 나 역시 적을 이와 같이 상대하게 되는데, 내가 만일 진실이 없다면 이렇게 마주할 때 미친 듯 울부짖는 일을 함부로 뱉어 내어 십중팔구 실패하게 됩니다. 거슬리는 것[激]은 본래의 성질이 아닙니다. 물을 거슬리어 산에 올리게 되면 이는 물의 본성이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음식을 좋아한다고 사람들이 이치에 거슬리도록 권하면 반드시 배가 터져서 죽습니다. 마귀의 기술은 우리로 하여금 악으로 거슬려 죄에 빠지게 합니다. 사람이 잘 살피지 못하여 죄악에 빠지게 되면 반드시 죽게 됩니다. 그러므로 잠자는 사람은 마땅히 이것을 경계하여야 합니다.

마귀가 침입하는 틈은 매우 많지마는 거슬려 격동하게 되면 피하기 더욱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금강산 만폭동 있게 되면 처음에는 매우 정신이 어지러워 자세히 살피지 못하다가 조금 뒤에는 신경이 누그러지고 게을러져서 문득 잠자기도 쉬워진다고 합니다.

사람이 만 가지 일이 몰려 있는 그 속에 있게 되면, 처음에는 정신이 어리둥절하지마는 이내 권태로워져서 주의하지 않다가 미끄러져서 함정에 빠집니다. 위태롭도다. 조는 일이여! 바울이 드로아에서 밤이 깊도록 도를 강론할 때, 창문에 앉았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떨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오래 잠자게 되면, 비단 마귀의 시험을 만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자다가 마땅히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여러분은 이것을 힘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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