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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28. 창조적인 신앙(創造的信仰) / 베드로후서 3:10-13, 로마서 8:11-끝


연천(涓川), 정동(貞洞)


凡看聖書記神之事爲, 其成分非因襲依賴, 皆無中生有, 而使人創見者也. 三友悅主伊西(이새?)家, 將膏見俊秀欲膏, 主曰非也. 至一矮兒膏之, 摩西擧杖 不知海擘而水忽壁立. 皆人意想不到處也. 故主曰 信神非曰知神也, 自古無知神之人, 信神之人則多也. 神每以新世示之, 使人有生之味, 若恒夜不勝暗, 恒晝不勝明, 恒春恒新亦然, 故神常常變易節序以示之, 知此道則人不必欣慽. 「古詩曰 得莫欣欣失莫悲, 古今人事若花枝. 可晏然受之而安心立命也. 那時貧賤, 那時富貴, 那時阨窮, 那時通達, 惟神所定, 然亦人所召也. 故主曰 學我學主非但謙虛也. 勇敢亦學主也, 學主非但忍耐也, 攻擊亦學主也.」 忽風忽雨天之事也, 惟禍惟福人之事, 非但靈界也, 物界亦然. 京居之人, 離京十年後, 更入京見之, 則必有瞠視者. 今十年之後更見之, 則尤有瞠視者, 或曰宇宙未成品, 方在神創造中, 桑田爲碧海, 松柏爲摧薪, 誠然之矣. 主在世亦然, 其事爲皆創造也. 無一因襲, 容赦犯淫之女, 安息摘窮餠魚異蹟, 皆所創見者也. 今人好言改造, 改造與創造異矣. 改造因襲的, 創造有建設之意. 人間若無建設, 而只事改造, 則物盡而事窮, 無復餘望, 譬如人衣服, 若無新製者, 卽常濯舊衣而着用, 則衣能久乎? 今創造有兩方, 物界有創造, 靈界亦有創造者, 漢王拜將, 人人各自以爲大將, 而至拜大將乃韓信, 信乃淮陰乞人, 面黃而無風采, 一軍皆驚, 彼得乃漁父, 且無知識, 而主選爲使徒, 五旬節施洗三千, 世人皆驚. 朝鮮人亦然, 初代傳道人, 皆非赫赫之人, 又無學者, 而神選之爲僕, 其事業有可驚者, 體府洞買一屋, 其敎友皆貧民無可出力者, 而某禮拜時, 捐補收一千餘円, 買一屋以二千円也. 此亦神之創出者, 主曰學我者何也? 卽學創造也. 能於無中生有, 使萬物各得其所也. 今我無立場, 無袖不能舞, 無錢不能賈, 欲漁無網, 欲彈無琴, 此將如之何? 余以傳道人答靑年之問, 發答甚難, 若以不合理者答之, 使彼誤却平生, 非彼之過, 實我之罪也. 不可不審愼答之, 卒業後將何爲也? 務農則曰無土地, 答曰營業則曰無錢, 無土無錢, 農商幷不可爲, 非農商不可也. 方法不可也. 今向神無中生有之言, 當奮發計劃, 使各成一家, 不依他人, 自立之臺, 各自爲之. 無此落伍, 失望落膽, 不尤人則必怨天. 此何故也? 無創造力故也. 在朝鮮人就職, 不可論, 敎會出身者, 用於敎會方面, 而範圍甚狹, 亦不可盡用. 官學出身者, 用於官邊, 而此則日人占領, 朝鮮人不可入, 今日就職之難, 難於上天, 莫不失望, 將何術救之, 今常設機關雖多, 非我可入, 己築之坮雖高, 非我可登也. 我登之坮我築, 我入之關我設, 然後有快樂, 有幸福. 余前聞우커우와승론之物語, 亦創造的人物, 欲創何事, 欲創何物, 非忍辱冒難則不可. 人笑不關, 世罵不顧, 所創雖幼稚, 不必自小. 曾於昔日, 南山下見土屋二層, 人皆笑之, 然亦是主人翁之創作, 年前印宣琥氏創驄帽子, 自前於材一物, 而連以驄制手提가방, 亦是創作, 始創雖不美, 累加硏究則必精美, 洋靴骨保朴電等, 次次發明, 可喜可賀, 前日發明不無多, 自國家不裦揚, 故卽潛消無餘矣. 豈非可恨者乎? 非但物界也, 事業界亦然, 切望伊後, 種種有新創者, 新創書籍, 我屋上有蜘蛛網, 惡之捲去, 朝而見之復如故, 且捲去朝而見之又如故, 我故置之不顧. 以色烈族在埃及, 其困苦似不可維持, 而煉壁營倉, 漸次旺盛, 雖以法規之威, 亦不能更係, 其生活在無中有之, 神恩中, 故勿落心, 進進不已, 我目前見突兀之樓坮矣. 念之哉!


성서를 보면 하나님의 일과 행위에 대해 기술하였습니다. 그것은 그 성분모두 인습에 의한 것이 아니고, 모두 없던 것에서 새로 생긴 것으로 사람에게 새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들어가 기름을 가지고, 준수한 사람에게 기름을 부으려 하니, 주께서 이르시기를,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아이에게 이르러 기름을 부었습니다.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어느 새, 바다가 갈라지면서 갑자기 물이 벽을 이루고 섰으니 모두 사람들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이르기를 하늘을 믿는 것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하늘을 아는 사람은 없고 하늘을 믿는 사람은 많습니다. 하늘은 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어서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맛이 있게 합니다. 만일 늘 밤이라면 어둠을 견디지 못할 것이고, 늘 낮이라면 밝은 것을 견디지 못할 것이며, 늘 봄이면 늘 새로운 것도 역시 그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항상 절서(節序)를 바꾸어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도리를 안다면 사람들은 기뻐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고시(古詩)에 이르기를 얻었다고 좋아할 것도, 잃었다고 슬퍼할 것도 없나니/ 고금의 인사는 꽃나무 가지와 같네(得莫欣欣失莫悲 古今人事若花枝)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가히 편안한 자세로 받아들여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떤 때는 빈천하고, 어떤 때는 부귀하고, 어떤 때는 곤궁하고 이런 때는 통달이 오는가 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이 정한 것이고 또한 사람이 불러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이르기를나 자신을 배우고 주를 배우는 것은 겸허해야 할 뿐 아니라, 용감한 것도 역시 주께 배우는 것이다. 주께 배우는 것은 인내뿐만 아니고 공격도 역시 주에게서 배워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갑자기 바람 불고, 갑자기 비 오는 일은 하늘의 일이고, 화를 만든다든지 복을 만드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영혼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물질세계에서도 그러하니 서울에 살던 사람이 서울을 떠난 지 십년 뒤에 다시 돌아와 보면 반드시 눈을 휘둥그레 뜨고 볼 것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십년 후에 다시 본다면 더욱 휘둥그레 해 가지고 볼 것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우주는 미완성품으로 지금도 하나님이 창조하는 중이다라고 합니다. 뽕밭이 바다[桑田碧海]로 되고, 소나무 잣나무가 꺾여 불쏘시개[松柏摧薪]가 된다고 하는 말이 실로 그럴 듯합니다. 주께서 세상에 계셨던 것도 역시 그러하니, 그 하신 일과 행동은 모두 새로운 창조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한 가지도 과거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 없습니다. 간음을 범한 여자를 용서하였다든지, 안식일에 곤궁한 자를 골라 떡과 물고기로 기적을 보여주신 것은 모두 새로 보는 것들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개조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개조와 창조는 다릅니다. 개조는 인습적(因襲的)인 뜻이 있고, 창조는 건설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이 건설하는 일이 없이 다만 개조만 해 간다면 물건은 다 없어지고, 할 일은 끝나고 말아 남은 희망이 없습니다. 비유해 본다면 사람이 옷을 입는데 새로 만들어내지 않고 옛날 옷을 늘 세탁하여 입는다면 그 옷이 오래 가겠습니까?


창조에는 두 가지 방면이 있습니다. 물질세계의 창조가 있고, 영혼세계에도 역시 창조가 있습니다. 한왕(漢王)이 대장을 임명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대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대장으로 임명된 이는 바로 한신(韓信)이었습니다. 한신은 회음(淮陰)지방의 걸인으로 얼굴은 누렇고 풍채도 없었으므로 전군이 다 놀랐습니다. 베드로는 바로 어부로서 또한 지식도 없었으나 주께서는 사도로 선출하여 오순절에는 3천 명에게 세례를 베풀어 주어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조선사람도 그러합니다. 초대 전도인(傳道人)은 모두 특출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또한 학자도 없었지만, 주께서 선택하여 종으로 삼았는데, 그들이 이룬 사업은 놀랄 만 한 일이었습니다.

체부동(體府洞)에 집 하나를 샀는데 교우들은 모두 가난한 사람들로서 힘을 낼만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어느 곳에서 예배할 때 연보로 1천여 원을 거두어 집을 사는데 2천 원이 들었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주께서 나를 배우라고 한 것은 무엇입니까? 곧 창조하는 일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능히 있도록 만들어내어 만물로 하여금 각기 처할 곳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서 있을 장소가 없습니다. 소매긴 옷이 없어서 춤도 출 수 없고, 돈이 없어 장사도 할 수 없으며, 어부노릇을 하려고 하나 그물이 없으며, 연주를 하려고 하나 거문고가 없습니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전도인으로 청년의 물음에 답을 해 주어야 하는데 답을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만일 불합리한 답을 하면 그들로 하여금 평생을 그르칠 수가 있습니다. 이는 그들의 허물이 아니라, 실로 내가 잘못 지도한 잘못이기 때문에 불가불 신중하게 답해야 합니다. 그들이 졸업하고 나면 장차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농사에 힘쓰려니 토지가 없고, 그렇다고 영업을 하라고 답하려니 돈이 없습니다. 토지도 없고 돈도 없으니 농사나 장사는 아울러 할 수가 없으나 농사나 상업이 아니면 할 것이 없습니다.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을 빌어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마땅히 분발하고 계획하여 각각 한 부문에 권위자를 이루어서 타인에게 의지하지 말고 자립의 토대를 각자 만드십시오. 이것이 없으면 낙오가 되어 실망하고 낙담하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을 원망하지 않으면 하늘을 원망하게 될 터이니 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창조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선 사람에게 있어서 취직은 논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 출신자는 교회 방면에 쓰는데 범위가 너무 좁아 역시 모두 채용해 줄 수 없습니다. 공립학교 출신들은 관공서 주변에 채용되는데, 이곳은 이미 일본 사람이 점령하여서 조선인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취직의 어려움은 하늘에 올라가기보다 어렵습니다. 실망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를 무슨 방법으로 구해야 합니까?


지금 상설기관은 비록 많지만, 우리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자기들이 쌓은 축대가 하도 높아도 내가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올라갈 축대는 내가 쌓고, 내가 들어갈 기관은 내가 설치하여야 쾌락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내가 전일에 부커 워싱턴의 일화를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창조적 인물이었습니다. 무슨 일을 새로 만들어 내려고 하든지 어떤 물건을 창조하려면 욕됨을 참고 어려움을 무릅쓰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사람들이 웃어도 관계하지 않고, 세상이 욕해도 돌아보지 말며, 창조해 낸 것이 비록 유치하더라도 스스로 하찮게 여길 필요가 없습니다.

지난 날, 남산 밑에 2층의 흙벽돌집을 보았는데 사람들은 모두 비웃었으나 역시 주인 늙은이의 창작이었습니다. 연전에 인선호(印宣琥) 씨가 말총모자[驄帽子]를 만들었는데, 앞의 재질 한 가지로 연달아 말총 수제가방을 만들었으니 그 역시 창작품이었습니다. 처음 창작한 것은 비록 아름답지가 못했으나, 여러 번 연구하면 반드시 좋고 아름답게 될 것입니다. 구두, 골보(骨保?) 박전(朴電?) 등이 차차 발명되고 있으니 기쁘고 축하할 만합니다. 지난 날 발명된 것도 많지마는 국가에서 포상하고 드러내 주지 않으니 곧 사라져버리고 남은 것이 없습니다. 어찌 한스럽지 않습니까?


물질세계뿐만 아니라 사업계에도 역시 그러하니 절실히 바라는 것이 있으면 종종 새로운 것을 창조하거나 새로운 서적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 집 옥상에 거미줄이 있는데, 그것이 미워 걷어내고 난 뒤에 아침에 보면 또 전과 같이 줄을 쳐 놓았습니다. 또 걷어버리고 그 다음 아침에 보니 또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냥 버려두고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있을 때, 증오와 핍박으로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들을 괴롭히려고 벽돌을 굽게 하고 창고를 만들게 하였으나, 그들은 점차 왕성하여져서 비록 법의 위엄으로도 그들을 다시 묶어둘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활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므로 낙심하지 말고 그치지 않고 나아가고 나아가면 우리 앞에 우뚝 높이 솟은 누대가 보일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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