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LOGIN

회원로그인

ID/PW 찾기회원가입

Favorite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27. 성신의 법(聖神의 法) / 로마서 8:2-4


체부동(體府洞)


此使徒保羅之看證也. 今日吾人處死地, 當硏究此問題, 吾人之生命果自何而得, 今在死地, 當硏究生路, 今日政治經濟敎育宗敎, 無不尋生路, 而皆不得也. 今日人皆扶棘而往, 生之一路果在何處也? 神本有生命, 無生命卽非眞身, 故保羅曰 神勿皆信, 出自基督而後爲眞神也. 五旬節神降如風, 主曰 風任意而吹, 皆言聖神有生命也. 始信而無動之意則不可, 信者非如坐脚者, 美門之坐脚者起而行者何故? 有信故也. 信者無不自初地而動, 主謂馬太棄稅而從我, 又謂彼得棄網而從我者, 皆自初地而動也. 不動則無生命也, 動有精神, 動有肉體, 到五旬節之使徒先有精神動, 覺前日之所未覺, 言前日之所未言, 渙然氷釋, 怡然理非復前日之阿蒙矣. 其精神能支能自己之生活, 今人皆言革新, 欲革環境, 欲革他人, 而不知自己之有所革者也. 難革者環境也, 難革者他人也, 不可不先自我. 而革自我者當何先也, 欲改無識爲有識, 欲改貧困爲有餘, 欲改弱者爲强者, 皆我之所欲也. 然其最先當改者精神也. 精神界腐敗, 行動隨而腐敗, 精神流動, 事業隨而流動. 今日社會之形形色色, 皆精神流動之證也. 今日古物學者, 堀地數十丈, 得一古代物品, 以證古代人之精神, 美國人之精神, 先入巴拿馬(파나마)海峽, 遂通運河, 猶人之精神, 先入迦南, 遂入占領羅馬(로마)人之精神, 沈醉忘國, 遂乃失國. 秦人之精神, 不堪苦痛, 遂乃擾亂. 今日自殺者踪出, 其精神先死故也. 敗而復起, 失而復得, 冒險前進者, 其精神先生也. 今日社會生乎死乎, 先觀其精神動作也. 其次肉體動也. 肉體者精神驅使之物也. 精神往東則肉往東, 精神往西則肉往西, 一從精神指揮, 肉何苦, 有自由也故, 古之賢將攻人之國, 攻心上也, 攻城次之. 岳飛曰 山中敵易制, 心中敵難制, 宋帝問岳飛曰 何以爲國? 對曰 武士不惜命, 文臣不愛錢, 皆言其精神也. 孔明攻南蠻, 七縱七擒, 獲乃服, 亦所服其精神也. 今聖神之法, 先使我精神活動, 後能脫出死亡, 能脫出罪惡也. 此精神之法也. 聖神運動大猛烈不可防, 過中世而帝王將軍, 以腕力欲撲滅敎徒而不能滅, 能殺肉而不能殺靈, 以此觀之, 生在于靈而不在于肉也. 世之法使有罪者當之, 可刑者刑之, 可囚者囚之, 可殺者殺之, 是世之法也. 神之法不然, 雖七七犯容恕, 其理生生, 其德愛愛, 其大無比, 不可測量也. 其法無國境, 無種族, 無貴賤, 無富貴也. 人情愛欲其生而惡欲其死也. 神之法純愛而已也, 以血自服而來者赦之, 血指生命, 以生命依主者赦之, 比如幼兒出遊, 誤落坑塹, 流血狼藉, 是過失自招, 慈母見之而泣, 兒雖有離母之罪, 見其血而乃發悲, 是神之法也. 故主以 여리고 不汗黨맞은人比之, 其酒其油, 乃神之治法, 今赤十字軍, 乃證神法一班矣, 一面銃殺殷殷, 積屍如山, 血流成川, 而赤軍乃入其中, 遇兵而有生者, 卽舁之入院醫治, 勿論彼我, 一般愛護也. 神設天國于世, 毆傷罪惡者, 橫罹死亡者, 勿論何種, 皆舁入天國. 此神之法也. 所異者非舁入也. 乃招來也. 人不知此法, 徒好罪之法, 屈服于罪法而不服于神法, 自取滅亡哀哉. 幸有一線之生伏于地中, 天地閉塞, 氷雪壓之, 頓若無生命, 而至地雷一動, 線生亦動, 至掀撼宇宙, 裝飾宇宙, 沛然不可御, 大哉生也! 此聖神之法, 今逼我者, 氷雪也野火也. 若不能保生, 今吾人之中, 有線生乎, 無線生乎? 有則雷動之日, 可以發生, 無則四肢厥冷死已久也. 成服後藥論不可得. 今朝鮮皆曰 惟死, 此言一播, 四面皆走卒而已. 經濟也尤甚, 敎育宗敎次之, 然勿曰必死, 有線生則可, 線者弱也, 無力也, 病雖重, 診脈者診之, 而有生脈則可醫, 有生脈乎否乎, 야이로 迎主入室, 哭聲吹笙, 聲聞于外面, 主曰 只信之, 此時야이로之信線弱, 故主曰 只信之也. 僉位念之哉!


이것은 사도 바울의 간증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지(死地)에 처해 있으니 마땅히 이 문제를 연구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과연 어디서부터 나왔습니까? 지금 사지에 있으니 마땅히 살 길을 연구하여야 합니다. 오늘의 정치, 경제, 교육, 종교에 있어서 살길을 찾지 않는 데가 없지만 모두 찾지 못 하고 있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모두 가시넝쿨을 잡고 나갑니다. 살 길이 과연 어디 있습니까?


영(靈)은 본래 생명이 있으므로 생명이 없는 것은 참된 몸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르기를영이라고 다 믿지 말라. 그리스도에게서 나와야 참 영이다라고 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바람처럼 내려오므로 주께서 이르기를 바람이 뜻대로 불어오니 모두들 성령이 생명이 있다고 한다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움직이지 않는 뜻으로 믿는다면 옳지 못합니다. 믿는 것은 앉은뱅이와 같지 않습니다. 미문(美門)의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어간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信者)는 처음에 있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주께서는 마태에게 세리의 일을 버리고 따라오라 하였고, 베드로에게는 물고기 잡는 투망을 버리고 자신을 따라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다 처음 있던 자리에서 움직인 것입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움직이면 정신이 있고, 움직이면 육체가 있으므로, 오순절을 맞은 사도에게 먼저 영이 움직여 전일에 깨닫지 못하던 것을 깨닫게 되었고, 전일에 말하지 못하였던 것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얼음 녹듯 확 풀려서 편안하게 되었으니 다시는 전 날에 어리석음이 아니었습니다. 그 정신은 능히 자기의 생활을 지탱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은 모두 혁신을 말하는데 환경을 혁신하고 싶어 합니다. 남을 혁신하려고 하면서 자기 자신이 혁신할 것이 있는 줄을 모릅니다. 혁신이 어려운 것은 환경이고, 혁신이 어려운 것이 불가불 먼저 자신으로부터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부터 혁신하는 데는 무엇을 먼저 해야 마땅할까요? 무식을 유식으로 개혁하려고 하고, 빈곤을 부유한 것으로 개혁하려고 하고, 약한 것을 강한 것으로 개혁하려고 하는 것이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바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개혁하여야 되는 것은 정신입니다.


정신세계가 부패하면 행동이 따라서 부패하고, 정신이 유동하면 사업도 따라서 유동합니다. 오늘 사회가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것은 모두 정신이 유동한 증거입니다. 오늘 고물(=고고)학자가 땅을 수십 길 파서 고대물품을 하나 발굴해 내어 고대인의 정신을 증명하였습니다.


미국인의 정신은 먼저 파나마 해협에서 마침내 운하를 개통한 데 있고, 유대인의 정신은 먼저 가나안에 들어가서 마침내 점령한 데 있고, 로마인의 정신은 깊이 도취되어 나라를 잊고 있다가 마침내 나라를 잃어버린 데 있으며, 진인(秦人)의 정신은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난리를 일으켰습니다.

오늘날 자살자가 속출하는 것은 그 정신이 먼저 죽었기 때문입니다. 실패한 뒤에 다시 일어나고, 잃고 난 뒤에 다시 얻기 위하여 모험을 하면서 전진하는 자는 그 정신이 먼저 살아납니다. 오늘의 사회가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를 알려면 먼저 그 정신의 동작을 보아야 합니다. 그 다음은 육체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육체는 정신이 부리는 물건입니다. 정신이 동쪽으로 가면 육체도 동쪽에 있고, 정신이 서쪽으로 가면 육체도 서쪽에 있습니다. 모두 정신의 지휘에 달려 있습니다. 육체가 얼마나 괴로운가는 스스로 하기 나름입니다. 그러므로 옛날에 훌륭한 장수는 남의 나라를 칠 때 먼저 상대의 마음을 공격하고 성을 치는 것은 그 다음이었습니다.

송나라 장수 악비(岳飛)는 산중에 있는 적군은 제압하기 쉽지만, 마음 속에 있는 적은 이기기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송나라 황제가 악비에게 나라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자, 대답하기를 무사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문신은 돈을 사랑하지 않으면 됩니다라고 하였답니다. 모두 그 정신을 말 한 것입니다. 제갈공명은 남만(南蠻)을 칠 때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어서[七縱七擒], 맹획(孟獲)이 마침내 항복하였는데 이 역시 그 정신을 항복 받은 것입니다.


지금 성령의 법도 먼저 나의 정신을 활동시킨 다음에 사망에서 탈출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것도 정신의 법입니다. 성령의 운동은 막을 수 없도록 매우 맹렬하여 중세를 지나면서 제왕이나 장군이 완력으로 신자들을 박멸하려 하였으나 없앨 수 없었고, 육체는 죽일 수 있었으나, 그 영혼은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목숨은 영혼에 있고 육체에 있지 않습니다.


세상의 법은 죄 있는 자가 거기에 해당하면 형벌을 줄 자는 형벌로 다스리고, 가둘 자는 가두며, 죽일 자는 죽이는 것이니 이것이 세상의 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그렇지 않아서 비록 일곱 번씩 일곱 번을 범하여도 용서해 주니, 그 이치는 산 사람은 살게 하고, 그 덕은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니, 그 위대함은 비교할 데가 없습니다. 그 법은 국경도 없고, 종족도 없으며, 귀천도 없고, 부귀도 없습니다.

사람의 정은 사랑하면 살려주고 싶고 미워하면 죽이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의 법은 순전히 사랑할 뿐입니다. 피로써 스스로 복종하여 오는 자를 놓아주니, 피는 생명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곧 생명으로 주님에게 의지하는 것이므로 놓아주는 것입니다. 비유해 본다면, 어린아이가 놀러 나갔다가 잘못하여 구덩이에 빠져서 피를 흘리게 되면 그 과실이야 어린 아이가 스스로 부른 것이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보고 애처로워 웁니다. 아이에게는 어머니를 떠난 죄가 있다고 하나 그가 흘리는 피를 보고 슬픈 마음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여리고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에 비유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발라준 것은 비로 하나님의 치료법이었습니다. 지금 적십자군(赤十字軍)이 바로 하나님의 법을 실증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편에서는 전쟁으로 마구 총살을 하여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그 흐르는 피는 시내를 이루었으나, 적십자군은 그 시체 가운데 들어가서 살아있는 병사를 만나면 바로 들것에 실어 입원시켜 치료하는데 적군이나 우리 군사를 따지지 않고 똑 같이 보호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천국을 설치해 놓고 구타로 상처받은 죄악자, 잘못 걸려들어 사망한 자 등 어떤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들것에 실어 천국에 들어오게 하니, 이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세상의 법이 다른 것은 들것으로 실어들이지 않고 불러들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법을 모르고 천국은 죄를 좋아하는 법인 줄 알고, 세간에서는 죄를 다스리는 법에만 굴복하고 하나님의 법에는 복종하지 않습니다. 이는 스스로 멸망을 가져오는 것이니 애달픈 일입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한 줄기 생명이 땅속에 잠복해 있어서 천지가 꽉 막히고, 눈과 얼음이 그 위를 내리눌러 마치 생명이라곤 없는 듯 하다가도 땅이 한번 들썩이면 조그마한 생명이 움직이게 되는 것처럼, 그것이 우주를 흔들어 움직이고 우주를 장식하게 되면 그 왕성한 기운을 막을 수 없게 되니 생명은 위대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법입니다. 지금 우리를 핍박하는 것은 얼음과 눈이며 들판을 태우는 불입니다. 마치 생명을 보존시킬 수 없을 듯합니다. 지금 우리 중에는 한 줄기 생명이 있습니까? 가느다란 생명도 없습니까? 있다면 지진이나 천둥이 흔들어 움직일 때 가히 생명이 피어날 것입니다. 없다면 사지가 추위에 얼어서 죽은 지 오래일 것입니다.

죽어서 상복까지 입은 뒤에 약을 처방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 조선은 모두 이르기를 죽었다고 합니다. 이 소문이 한번 퍼짐으로 사방에서는 도망치는 졸개들뿐입니다. 경제는 더욱 심하고, 교육과 종교는 그 다음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죽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한 줄기 생명만 있어도 됩니다. 한 줄기란 약하다는 뜻입니다. 힘이 없습니다. 병이 비록 중하지만 의원이 진맥해 보고 살아 있는 맥이 있으면 고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맥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야이로가 딸의 병을 고치려고 주님을 모셔 방에 들어갈 때 우는 소리와 피리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습니다. 주께서 이르시기를믿기만 하여라 하였습니다. 이때 야이로의 신앙은 가늘고 약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다만 믿기만 하여라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십시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교인명부 및 원입 및 세례 aesan 2013.12.16 11209
공지 서평 - 전창희 박사 aesan 2013.10.12 9065
공지 무화과 설교집을 출판하면서 aesan 2013.09.27 8229
공지 김진호 셋째 아들 김희영 회고 aesan 2013.09.27 8574
공지 ‘무화과’ 간행에 참여하면서-오세종 aesan 2013.09.27 7989
공지 <무화과> 탈초 및 번역 후 소감-번역자 조면희 aesan 2013.09.27 8653
공지 출판 및 원본저자와 번역자 aesan 2013.09.20 7831
공지 무화과 노트설교 1권 원본표지 aesan 2013.09.13 8179
115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61 file aesan 2013.11.13 1111
114 40. 동정(同情) / 로마서 12:15, 누가복음 19:41 / 065 애산 2013.11.08 1518
113 39. 성신(聖神) / 갈라디아서 5:25-26 / 박봉조 / 064 aesan 2013.11.08 1331
112 38. 감상(感想) / 사도행전 1:12-14 / 063 애산 2013.11.08 1304
111 37. 허영을 버리라 / 마가복음 10:35-46 / 홍병철 / 062 aesan 2013.11.08 1836
110 36. 합당하지 못한 사랑 / 마태복음 10:34-39 / 060~061 애산 2013.11.08 1320
109 35. 지금은 자다가 마땅히 깰 때로다(此時寢當醒) / 로마서 13:11 / 058~058 애산 2013.11.08 1413
108 34. 착오된 사랑 / 마태복음 10:34-39, 19:16-30 / 055~057 aesan 2013.11.08 1274
107 33. 주님이 사랑하는 사랑(愛主之愛) / 누가복음 14:25-끝, 마가복음 12:28-34 / 이상철 / 055 aesan 2013.11.08 1674
106 32. 뒤를 돌아보지 말라(勿顧後) / 누가복음 9장 끝 / 052~054 애산 2013.11.08 3198
105 31. 몸을 쳐셔 복종케 / 고린도전서 9:27 / 049~051 애산 2013.11.08 1360
104 30. 교회의 기초(敎會의 基礎) / 마태복음 16:13-20 / 신석구 / 048 [1] aesan 2013.11.08 1269
103 29. 완전한 생활(完全한 生活) / 에베소서 3:14-끝 / 김영섭 / 047 aesan 2013.11.08 1174
102 28. 창조적인 신앙(創造的信仰) / 베드로후서 3:10-13, 로마서 8:11-끝 / 045~046 애산 2013.11.08 1249
» 27. 성신의 법(聖神의 法) / 로마서 8:2-4 / 042~044 애산 2013.11.08 1256
100 26. 십자가의 생활(十字架의 生活) / 마태복음 16:22-28 / 조병옥 / 042 aesan 2013.11.08 1236
99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60 file 애산 2013.11.08 1119
98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59 file 애산 2013.11.08 1141
97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58 file 애산 2013.11.08 1103
96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57 file 애산 2013.11.08 1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