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LOGIN

회원로그인

ID/PW 찾기회원가입

Favorite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26. 십자가의 생활(十字架의 生活) / 마태복음 16:22-28


조병옥(趙炳玉)


世人呼我以基督人, 而我亦自稱基督人也. 然則吾之生活可合乎基督乎? 若與基督相違, 則必非基督人也. 吾等讀馬太所記, 則以歷史的讀之, 則主自加里海, 而來往說敎, 或不合羅馬政治家, 又不合京城宗敎團. 與一般猶人之相衝突, 一日至午間, 與弟子訓之曰 我來世攻擊社會之罪惡, 故得不平不得于負十字架矣. 主言款曲之將來, 而感動門徒之心, 弟子之情, 大興奮歎說, 女子,其夫臨死必勸勿殺也. 門徒中彼得, 欲斂此諫, 主曰. 人情與天理斟酌. 諫曰 禍勿及主, 主曰 斯但退, 萬古呼主祈禱之人, 皆如此不負己之十字架, 則不能爲敎人矣. 故主釘架之前, 己先克己, 己在曠野, 克三試而後, 出世至終不變, 今日吾社會內, 各言改造, 而不克自己, 則皆空論而已. 今日人人皆言改革, 建理想天國可也? 建此理想, 必不虛矣. 負架何故也? 自問答不無疑惑, 聞愉快之音樂, 見姸嬋之物色可也, 而今日見人,不能發展自我, 何故也? 皆不能克己故也. 信主之人亦然, 不能完全從主, 故有弱點. 社會之不完全, 不在社會, 只在自己也. 今日經濟問題, 政治問題, 宗敎問題, 皆在此克己也. 主故曰 革命內心而後, 可革命其環境也. 其次主曰 日日負架從來何故也? 繼續負架也. 人類歷史一次完全而後有不完, 有不完而後又一完全故也. 其次負架卽生命, 反復思之, 甚有不解得一예슈


세상 사람들이 나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며, 나 역시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일컫습니다. 그러면 나의 생활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어긋난다면 이는 반드시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태의 기록을 읽을 때 역사적인 관점에서 읽어보면 주님께서 갈릴리 바다로부터 와서 설교할 때에 간혹 로마의 정치가들에게 맞지 않았고 또 수도 예루살렘의 종교 그룹과도 맞지 않아 일반 유대인과 서로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낮에 제자들에게 교훈하기를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사회의 죄악을 공격하게 되니, 불평을 얻게 되어 부득이 십자가를 지게 되었노라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장래의 일에 대하여 간곡하게 말씀하시니, 제자들의 감정이 크게 흥분하여 한탄하며 말하기를그 지아비가 죽게 되면 여자는 죽이지 말게 해 달라고 비나이다 하고, 제자 중에 베드로가 이러한 말들을 모아 간하니, 주님이 말씀하시되 인정과 천리를 짐작하였느니라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간하기를 이 화가 주께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하니, 주께서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만고에 주를 부르며 기도할 사람은 모두 이와 같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교인이 될 수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자기를 먼저 극기(克己) 하셨고, 자신이 광야에서 마귀로부터 받은 3번의 시험을 이긴 뒤에 세상에 나와 끝까지 변치 않으셨습니다.


오늘 날 우리 사회에서 제 각기 개조를 말하지마는 자기를 이기지 못하니 모두 헛된 이론이 될 뿐입니다. 오늘 날 사람마다 모두 개혁을 말하고 이상 천국을 건설하자고 말하지만 옳은 것입니까? 이러한 이상을 건설하는 것은 반드시 헛된 일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스스로 문답하여 볼 때 의혹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유쾌한 음악을 듣고, 아름다운 물건을 보는 것처럼 옳은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에 있어서 사람들을 보면 자기 스스로를 발전할 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모두 극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를 믿는 자도 역시 그러하니, 온전히 주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에 약점이 있습니다. 사회가 불완전한 것은 사회에 그 원인이 있지 않고 단지 자기에게 있습니다. 오늘 날 경제문제, 정치문제, 종교문제는 모두 이 극기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이르기를 속 마음을 혁신한 후에 그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도 또 주께서 이르기를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십자가 지는 일을 계속하라고 하는 뜻입니다.


인류의 역사에는 한번 완전한 뒤에는 불완전 것이 있고, 불완전한 후에는 또 완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십자가를 지는 것은 바로 생명이라고 하였는데, 반복하여 생각하여 보아도 매우 이해하지 못할 것이 있습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교인명부 및 원입 및 세례 aesan 2013.12.16 11209
공지 서평 - 전창희 박사 aesan 2013.10.12 9065
공지 무화과 설교집을 출판하면서 aesan 2013.09.27 8228
공지 김진호 셋째 아들 김희영 회고 aesan 2013.09.27 8574
공지 ‘무화과’ 간행에 참여하면서-오세종 aesan 2013.09.27 7989
공지 <무화과> 탈초 및 번역 후 소감-번역자 조면희 aesan 2013.09.27 8653
공지 출판 및 원본저자와 번역자 aesan 2013.09.20 7830
공지 무화과 노트설교 1권 원본표지 aesan 2013.09.13 8179
115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61 file aesan 2013.11.13 1110
114 40. 동정(同情) / 로마서 12:15, 누가복음 19:41 / 065 애산 2013.11.08 1518
113 39. 성신(聖神) / 갈라디아서 5:25-26 / 박봉조 / 064 aesan 2013.11.08 1331
112 38. 감상(感想) / 사도행전 1:12-14 / 063 애산 2013.11.08 1304
111 37. 허영을 버리라 / 마가복음 10:35-46 / 홍병철 / 062 aesan 2013.11.08 1836
110 36. 합당하지 못한 사랑 / 마태복음 10:34-39 / 060~061 애산 2013.11.08 1320
109 35. 지금은 자다가 마땅히 깰 때로다(此時寢當醒) / 로마서 13:11 / 058~058 애산 2013.11.08 1413
108 34. 착오된 사랑 / 마태복음 10:34-39, 19:16-30 / 055~057 aesan 2013.11.08 1274
107 33. 주님이 사랑하는 사랑(愛主之愛) / 누가복음 14:25-끝, 마가복음 12:28-34 / 이상철 / 055 aesan 2013.11.08 1674
106 32. 뒤를 돌아보지 말라(勿顧後) / 누가복음 9장 끝 / 052~054 애산 2013.11.08 3198
105 31. 몸을 쳐셔 복종케 / 고린도전서 9:27 / 049~051 애산 2013.11.08 1360
104 30. 교회의 기초(敎會의 基礎) / 마태복음 16:13-20 / 신석구 / 048 [1] aesan 2013.11.08 1269
103 29. 완전한 생활(完全한 生活) / 에베소서 3:14-끝 / 김영섭 / 047 aesan 2013.11.08 1174
102 28. 창조적인 신앙(創造的信仰) / 베드로후서 3:10-13, 로마서 8:11-끝 / 045~046 애산 2013.11.08 1249
101 27. 성신의 법(聖神의 法) / 로마서 8:2-4 / 042~044 애산 2013.11.08 1255
» 26. 십자가의 생활(十字架의 生活) / 마태복음 16:22-28 / 조병옥 / 042 aesan 2013.11.08 1236
99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60 file 애산 2013.11.08 1118
98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59 file 애산 2013.11.08 1141
97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58 file 애산 2013.11.08 1103
96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57 file 애산 2013.11.08 10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