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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25.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勝世者誰) / 요한 1서 5:1-12

리래원

人之生活은 純是戰爭, 에덴 被逐之後, 四面皆敵國也. 我眇然在其中, 非力戰不能生, 故主曰 我來世使起兵器, 吾人當準備兵器, 勝服敵國而後, 我之生活可安靜無事矣. 我信前無敵, 信後有敵, 此何意也? 信前我爲罪之奴, 不敢敵對, 信後我欲勝服罪惡, 故上典反爲敵也. 今看支那形便, 支那民衆爲軍閥之奴, 故不敢敵對, 至今日知軍閥之非, 故反爲敵對也. 學生以工夫勝利, 工業者以技術勝利, 士以勇敢勝利, 信者俱此三者而後可勝利. 信可工夫而後成? 信似易易甚不然, 今日行一難事, 明日行一難事, 則自源浹不可撓奪, 信有許多工夫, 然必自愛而始, 愛之生活甚難難, 亦甚易易, 古語曰 仁者無敵, 仁是何? 愛也. 愛者實無敵, 諸葛之愛, 死而後已, 仲尼之愛, 守死善道, 顔淵之愛, 樂在陋巷, 잉커언(링컨)之愛, 黑人解放, 愛實無敵. 以上諸聖, 皆工夫克己, 愛是克己, 克己以後成. 慈母抱子, 終夜不寐, 有一貧婦, 臥不炊之突而抱子, 子感冷而啼, 母抱子于腹上, 以自敵冷, 冷侵婦身, 婦克之故, 愛是克己也. 古語兵驕者敗, 驕者不能克己, 己不克而能克人乎? 故曰 克人在克己. 自古哲人成敗, 必自我視之, 不視他人, 故主曰 勿輕人是也. 信有技術而後可成, 孟子曰 仁亦多術, 齊王見牛觳觫, 發不忍心, 孟子因此而諫王, 程子見王編竹渡蟻乃諫王, 此皆仁之術. 信亦多術, 안드레 루 나다나엘 曰 只往見主, 不說許多道理, 只云往見者, 導人多術, 彼得見坐脚者, 曰 我無金銀, 只有主名云, 可謂多術. 醫有方術而後可醫病, 信有方術而後可敵罪. 禮拜祈禱乃信之方, 而禮拜祈禱亦有方術, 不備方術而行, 則徒勞而已也. 有爲此方術而後可勝利, 將之勝敵不在兵器, 只在戰術, 吾勝世可無術而勝乎? 東方博士不見欺于希律者, 必智勝于希律也.信者當有聰明, 辨別是非, 晏然不動. 如有分利則可廢禮拜而往, 好論人長短, 妄動有悔, 皆無知之甚者矣. 吾在世如舟泛水, 舟雖在水, 利用而已, 實無關於水. 如舟失所依之柁, 則 舟必覆于水中, 信者當依主而在世, 如舟泛水也. 舟發當測風雨, 無此知識而妄行, 則舟亦覆矣. 故信有方術而後, 可勝世矣, 信有勇敢而後可成信矣. 勇有蠻勇正勇, 勇於私間, 勇於利己, 勇於犯罪者蠻勇也, 以是亡國, 以是亡家, 以是亡人身, 甚可畏也. 勇於公戰, 勇於救人, 勇於改過, 勇於行善正勇也, 以是興國, 以是興家, 以是發身, 誠可服佩主行勇至死, 至於流血者, 救人贖罪也. 摩西勇於諫王, 勇於棄榮, 勇於公戰, 勇於冒險, 여호슈아議衆曰 强勇乃志云, 故信當勇, 外雖若無勇, 內實强明. 孟子曰 我善養吾浩然之氣, 其爲氣也至大至强, 故信當勇, 요한 勇諫希律, 彼得失勇㤼于婢子, 參孫(삼손), 失勇死于불네솃, 勇爲生命之先驅, 萬事無無勇而成者. 故信當勇, 信者當勇於改過, 過而不改, 是謂罪人, 誰無過, 改之爲貴, 目有芒棘, 卽地拔去, 心有不安, 能不拔去乎? 拔之則如拔痛齒, 心安意快. 勇不可盲目而進, 車不由軌道而進, 則必傷人, 人雖勇往, 不由軌道, 則必改, 得一善路, 必勇往, 非路勿往可也, 顔子之四勿是也. 故勇於進道, 以上工夫也, 技術也, 勇敢也. 皆勝利之道具也. 無此道具而能勝者未之有也. 摩西之攻摩押, 摩西上山祈禱, 手上則勝, 手下則敗. 祈禱亦勝世之一方也. 無兵器而出戰, 無祈禱而出世, 皆一般危險矣. 金庾信入中岳山祈禱, 而克復三國, 아보라함잉커언 入室祈禱, 能勝服南美, 人力甚弱, 神力甚强故也. 今吾人非但勝世, 此身乃社會之身, 則何等强勇而後可成功, 身若阿罪惡 而作一無用之人, 則何可爲社會犧牲也. 主乎! 當强勇我身, 使作社會之犧牲焉.


인생은 순전히 전쟁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로 사방이 모두 적군입니다. 우리는 하찮은 존재로서 그 가운데 살게 되니 힘써 싸우지 않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이르기를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병기(兵器)를 일으키도록 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마땅히 병기를 준비하여 대적자를 승복시킨 뒤에라야 우리의 생활이 안정되고 무사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신앙을 가지기 전에는 대적자 없더니, 신앙을 가진 뒤에 대적이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무슨 뜻입니까? 신앙을 가지기 전에는 내가 죄의 노예가 되어, 감히 적을 상대할 수가 없었는데 신앙을 가진 뒤로 나는 죄악을 승복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이전의 상전이 도리어 적이 된 것입니다.


지금 중국의 형편을 보십시오. 민중이 군벌의 노예가 되어서 감히 군벌을 적대하지 못하였는데, 오늘에 이르러 군벌의 그릇된 점을 알게 되니 도리어 적으로 상대하게 된 것입니다.

학생은 공부로 승리해야 하고, 공업자는 기술로 승리하여야 하고, 병사는 용감으로 승리하여야 하며, 신자는 앞의 3 가지를 다 갖춘 뒤라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신앙은 공부한 이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까?

신앙은 쉬운 일을 쉽게 하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 어려운 일을 하나 실행하고, 내일 또 어려운 일을 하지만, 실행하게 되면 근원부터 충분히 스며들어 흔들리고 빼앗을 수가 없게 됩니다.

신앙에는 여러 가지 공부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사랑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사랑의 생활은 매우 어렵고 어렵지만, 또 한편으로는 매우 쉽고 쉽습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어진 자 적이 없다 [仁者無敵]이라고 하였습니다. 어질다는 인(仁)은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사랑에는 실로 적이 없습니다. 제갈량의 사랑은 죽은 뒤에 끝난다고 한 것이고, 공자의 사랑은 훌륭한 학설[善道]를 죽음으로써 지키는 것이고, 안연의 사랑은 가난 속에 사는 시골 생활에서도 즐거움을 찾은 것이고, 링컨의 사랑은 흑인 해방이었으니 사랑에는 실로 적이 없습니다.

앞서 의 여러 성인들은 모두 공부로써 자신을 이기는, 곧 극기(克己)를 하였습니다. 그러니 사랑이 바로 극기입니다. 극기를 하고 나야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자애로운 어머니가 아이를 안고 밤새 잠을 자지 않은 일이 있습니다. 한 가난한 여인이 불을 때지 않은 방에 아이를 안고 누웠는데 아이가 차가워서 우니까 어머니가 그 아이를 배 위에 올려놓고 밤을 새웠답니다. 이는 그 어머니가 차가운 냉기와 싸워 이겼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사랑으로 극기한 것입니다.

옛 말에 병사가 교만하면 패전한다고 했습니다. 교만한 자는 극기할 수가 없습니다. 이씨 자신도 이기지 못하면서 남을 이기겠습니까? 그래서 말하기를 남을 이기는 것[克人]은 자기를 이기는 데[克己]에 있다라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철인[哲人]의 승패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먼저 보고, 다른 사람은 보지 않는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남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믿음도 기술이 있고 난 뒤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전국시대의 맹자가 이르기를 인(仁)을 하는 일도 방법이 많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제왕(齊王)이 도살장에 끌려가면서 벌벌 떨고 있는 소를 보고 차마 죽으러 가는 것을 볼 수 없다고 한 말을 빌미로, 맹자가 왕에게 그 마음을 백성에게 돌리라고 간언하였습니다. 송나라 학자 정자는 왕을 보고 덕을 쌓아 백성을 구제하라는 뜻으로, 어떤 어떤 서생이 물에 떠내려가는 개미떼를 구제하려고 대나무를 엮어 다리를 놓아주었다고 하는 편죽도의(編竹渡蟻)의 일화(逸話)를 가지고 간언하였습니다. 이게 모두 인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신앙을 가지는 방법에도 역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안드레 루 나다나엘이 이르기를 다만 가서 주님을 볼 것이고 여러 가지 도리는 말하지 말라하였는데 다만 가서 보라고 한 것은 사람을 인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보고 말하기를 ‘내게는 금이나 은은 없지만 단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만 가지고 있다라고 하고 일어나 걷게 한 것도 여러 가지 방법의 하나라고 할 만합니다.

의원은 고치는 방법을 가진 뒤에 병을 고치고, 신자는 신앙의 방법을 가진 뒤에 죄를 대적할 수가 있습니다. 예배와 기도가 바로 신앙을 가지는 방법입니다. 방법을 갖추지 않고 행한다면 헛수고만 할 뿐입니다. 이 방법을 가지고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장수가 적군을 이기는 것도 병기에 있지 않고 다만 전술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내가 세상을 이겨나가는 것을 아무 방법도 없이 되겠습니까?


동방박사가 헤롯 왕에게 속임을 당하지 않은 것은 반드시 지혜로 헤롯 왕을 이겼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마땅히 지혜가 있어야 시비를 분별할 수 있어서 편안한 자세를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만일 조그마한 이익만 있어도 예배를 피하고 달려가며, 남의 장단점이나 따지며 함부로 행동하다가 뉘우치는 것은 다 아주 무지한 짓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마치 배가 물에 떠 있는 것 같습니다. 배가 아무리 물에 있다고 하더라도 물을 이용할 뿐입니다. 사실은 물과 관련이 없습니다. 만일 배가 방향을 잡아주는 키를 잃어버리면 배는 반드시 물에 엎어지고 말 것입니다. 신자가 주님을 의지하여 세상에 살아가는 것이 마치 배가 물에 떠 있는 것 같습니다. 배를 출발시킬 때는 마땅히 비바람을 예측해야 합니다. 이런 지식이 없이 함부로 떠나면 배도 반드시 물에 전복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방법이 있은 뒤에 세상을 이기게 됩니다. 신앙에는 용감한 뒤에 성공하게 됩니다. 용기에는 함부로 하는 만용(蠻勇)이 있고, 정당하게 하는 정용(正勇)이 있습니다. 사사로운 일에 용감하고 이기적인 일에 용감하며 범죄에 용감한 것은 만용입니다. 이것 때문에 나라도 망하고, 이것 때문에 집안도 망하고, 이것 때문에 자기의 몸도 망하게 되니 매우 두려워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한 전쟁에 용감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에 용감하고, 허물을 고치는 일에 용감하고, 좋은 일 하는데 용감한 것이 정용입니다. 이로써 나라도 일으키고, 이로써 집도 일으키고, 이로써 자신도 발전시키면 진실로 감동하여 복종할 만합니다.

주님은 용감하게 죽으시어 피를 흘리는 데 까지 이르러 우리의 죄를 속죄하여 구하셨습니다. 모세는 임금에게 간하는 일에 용감하였고, 영화를 버리는데 용감하였고, 나라의 전쟁에 용감하였고, 모험에 용감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무리들과 의논하기를 뜻은 강하고 용감하게 하여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마땅히 용감하여야 하는데 밖으로는 비록 용기가 없는 것 같아도 안으로는 실로 강하고 밝아야 합니다.

맹자가 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길렀다라고 하였는데. 그가 말한 기운은 지극히 크고 강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마땅히 용감하여야 합니다. 요한은 헤롯왕에게 용감하게 직간하였고, 베드로는 용기를 잃고 종에게 겁을 먹었으며, 삼손은 용기를 잃고 블레셋에서 죽었습니다.

용기는 생명의 앞잡이입니다. 만사는 용기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마땅히 용감해야 합니다. 신자는 허물을 고치는데 용감하여야 합니다. 죄를 짓고도 고치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죄인입니다. 비록 허물이 없더라도 고치는 것은 고귀한 일입니다. 눈에 가시가 들었으면, 그 자리에서 뽑아버려야 합니다. 마음에 편치 못한 것이 있으면 능히 빼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빼어버린다면 마치 앓던 이를 뽑아버리는 것 같아서 마음이 상쾌할 것입니다.

용기만 가지고 맹목적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수레를 몰고 궤도를 따르지 않은 채 진행한다면 반드시 사람을 다칠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용감하게 나아간다 하더라도 궤도를 따르지 않고 나가거든, 반드시 방향을 고쳐 좋은 길을 찾은 뒤에 반드시 용감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길이 아니거든 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안자(顔子)가 말한 바예가 아니거든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움직이지도 말라고 한 사물(四勿)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길로 나아가는데 용감해야 합니다. 이상이 공부의 기술입니다. 용감은 승리를 위한 도구입니다. 이 도구가 없고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세가 모압을 공격할 때, 모세가 산상에 올라가 기도하는데 기도하는 손이 올라가면 세상을 이겼으나 손이 내려가면 세상에 패했으니, 기도도 역시 세상을 이기는 한 방법입니다. 병기도 가지지 않고 전쟁에 나가거나, 기도도 없이 전쟁에 나가는 일은 모두 똑 같이 위험합니다. 김유신 장군은 중악산(中岳山)에 들어가 기도한 뒤에 삼국을 이겼고, 아브라함 링컨은 집에 들어가 기도한 뒤에 미국의 남군을 승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힘은 매우 약하지만 하나님의 힘은 매우 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을 이겨야 될 뿐이 아닙니다. 이 몸은 바로 사회의 몸입니다. 얼마나 강하고 용감하여야 가히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내 몸이 만일 죄악에 아부한다면 아무짝에도 못 쓸 사람이 되고 말 터이니, 어찌 사회를 위하여 희생할 수 있겠습니까?


주여! 마땅히 내 몸을 강하고 용감하게 만들어 사회의 희생이 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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