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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24. 할 수 있는 자(有可爲者) / 마태복음 7:15-끝

신흥우(申興雨)

余前日傳道于此言, 有可爲者, 百事可做, 若言不可能, 則不但自己無力也, 且使他人落心. 有可爲云者, 卽勢力之便也, 理想之根也. 觀夫電氣充滿宇宙, 若發見水中之電氣, 則能行諸車, 又發電燈, 然科學者若但言理想, 而不能實行, 則何益之有也? 故理想至實行然後可也. 且發見空氣中一分子, 不要太陽而能生萬物云, 且若發見理想中一分子, 可發能力也. 吾人不可傍觀, 吾幼時見隣舍失火, 人皆觀光如一劇場, 吾亦往觀, 有一人大呼曰, 請汲水來, 而自己則不動一指, 彼如曰 吾有力於救火者云, 則何人能信之? 但呼之, 亦有功乎? 吾社會之艱危, 卽發火已無異, 而各相大呼而已. 敎會亦然, 人皆言社會之缺點, 經濟墮落, 道德腐敗, 科學退步, 民生日縮, 苦憂溢目, 如隣舍發火, 但以大呼能救之乎? 發火無不知之, 缺點無不知之, 但疾聲而已, 則此能救社會乎? 但使惡聲傳播, 千人落心, 萬人落心, 一無生氣, 已如死亡, 雖扁鵲不能救之也. 吾人乘氣球登于空中, 下視世界, 美惡無不知之, 自經濟言之, 則必自小而始, 此眞理無不知之. 自萬釐而至萬金, 自一滴而至大海, 誰不知之? 人無能行之者, 悲夫! 商人陳列外方物品, 而人不往賣, 則此商店必破滅, 故不賣同盟, 甚有力, 往賣則協助也. 某人有制燈者, 學日人工場後, 乃欲自營, 設一工場而制之, 屋上懸自己門牌, 無一人來買者, 朝鮮人不知用燈, 好用者日人也. 日人無協助之心, 故不買. 此人乃生一計, 乃借日人之名而揭牌, 乃有買者沓至云. 今日日人如彼昌强者卽何也? 卽協助之力也. 吾社會如欲復活, 則非協助則不可. 彼來往太平洋之大船, 卽캐나다 所造也. 可要六百乘客, 而或時有四十名, 此船之費用, 一個月要數萬円, 甚有大損, 又恐舟輕, 取鐵滿載以重船以行之, 然則船費辦出于何處? 卽自政府出金輔助, 使此船能維持, 今欲買牛乳一壺, 或要五十錢, 或要三十錢, 此三十錢, 勿論有損, 然久忍爲之, 則必不久援明也. 且以敎育言之, 則學生風紀紊亂, 經費太窘, 此何也? 校長以下諸敎員, 先自己改造, 然後可造善良生徒, 敎役者亦然, 信仰墮落, 經費難辦, 敎人言牧師之不力, 牧師言敎人之無識云, 此可救其弊乎, 牧師出力傳道, 盡誠訪問, 敎人出力捐助, 以助牧師, 互相協助可也. 世人之非難宗敎何故? 卽非難吾敎人之生活也, 非宗敎也. 吾生活非宗敎故也. 모도與각각不同, 모도는合力也, 각각은解體也. 去甲申年美軍艦入仁港, 當放艦砲, 而無大砲矣, 乃預設衆砲齊放之則爲大砲矣. 然衆砲不能齊放, 或先或後, 如各砲而未成大砲之聲矣. 何故? 不齊力故耳. 吾人社會齊力, 則成功而各自解體, 非但不統一也, 乃各相非謗, 萬無成就之處也. 此何故也? 此牧師日日敎我之所謂罪也. 有罪則神經痲痺, 昔參孫之力在首, 科學人之力, 亦云在頭, 魔以女拔參孫之髮, 乃無力. 人格亦然, 雖云大呼, 然 或反無力也. 有人夜行見鬼有聲, 初則其聲甚微, 心漸恐㥘, 聲亦漸大, 至門前乃驚倒不省, 朝視之無一物, 乃鳶係在門, 罪在吾心, 故使我無力, 恐在吾心, 故乃倒顚也. 病人謂之弱者, 罪人謂之弱者, 不可尤人, 又不怨天. 當奮發得力, 不待他助. 今日言朝鮮人中, 姑無學者. 而必科目爲科學者可也. 敎人生無固定, 進進不已然後乃成功, 故當言有可爲. 無可爲云者, 反使人落心, 無勇進之力也. 拿破倫(나폴레옹)字典中, 無不能二字云, 吾人之信仰, 當如拿翁之勇敢. 至誠所到, 金石可透, 吾人無誠又無力, 何可望成也? 無可爲云者, 乃地獄之子也. 自陷又陷人, 吾之口中, 無無能之言可也. 僉位念之云.


내가 전일에 여기서 전도할 때 말하기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자는 백 가지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고 하였는데 만일 불가능하다고 말하게 되면 자기만이 무력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낙심하게 만듭니다. 할 수 있다고 이르는 자는 바로 능력의 편에 있으며, 이상의 근원이 됩니다.


우리가 볼 때 전기가 우주에 가득 차 있는데, 만일 물속에 있는 전기를 발견하게 되면 모든 차를 다 운행할 수가 있고 또 등불도 다 켤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다만 그러한 이상만 말할 뿐, 실행을 할 수 없다면 무슨 소득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이상은 실행으로 옮겨야 됩니다. 또한 공기 중에 1분자의 힘은 태양이 없이도 만물을 생산하여 낼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상 속에 1분자를 발견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곁에서 방관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내가 어릴 때에 본 일입니다.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사람들이 와서 보기를 마치 극장 구경을 하듯 하였습니다. 나 역시 가서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큰 소리로 외치기를 빨리 물을 떠 오시오하였으나, 그 사람은 손끝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놓고 뒤에 그가 말하기를 내가 불을 끄는데 힘을 보태었다고 한다면 어떤 사람이 믿겠습니까? 그냥 큰 소리만 친 것도 공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가 당한 어려움은 불이 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런데 각자 큰 소리만 외칠 뿐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사회의 결점을 말하기를 경제의 타락, 도덕의 부패, 고학의 퇴보로 국민들의 생활이 쪼그라든다라고 합니다. 이러한 고통과 근심이 넘쳐나는 데도 마치 이웃집에 불이 난 것처럼 단지 큰 소리로 외치어 가지고 구할 수 있겠습니까?


불이 난 것을 모르는 사람도 없는 것처럼 우리의 결점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다만 급하다고 소리만 지를 뿐이라면 사회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나쁜 소문만 전파되어 천 사람, 만 사람이 낙심하게 되어 생기라곤 없게 되면 이미 사망한 것과 같아서 아무리 편작 같은 좋은 의원이 와도 구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기구(氣球)를 타고 공중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좋고 나쁜 것을 다 알 수 있습니다. 경제를 가지고 말할 때 반드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진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만 푼[釐]이 모여서 만 금이 되고, 물 한 방울이 모여서 큰 바다를 만드는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능히 실행하지 않으니 슬픕니다.

장사꾼이 외국물품을 진열해 놓았으나 사람들이 가서 팔아주지 않으면, 이 상점은 반드시 거덜 나고 맙니다. 그래서 불매 동맹(同盟)이 아주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 집에 가서 팔아주는 것은 협조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일본 공장에서 전등 만드는 기술을 배워 가지고 스스로 사업을 경영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장을 하나 만들고 전등을 만든 뒤에 그 집 옥상에다가 자기 이름을 쓴 간판을 달았더니 한 사람도 와서 사 주지 않았습니다. 조선 사람은 전등을 쓸 줄도 몰랐고 잘 쓰는 사람은 일본 사람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협조할 마음이 없어서 사주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한 가지 계획을 만들어 내었답니다. 곧 일본 사람 이름으로 간판을 바꾼 것입니다. 그랬더니 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본 사람들이 저렇게 번창한 것은 바로 무엇 때문입니까? 곧 협조하는 힘입니다. 우리 사회도 다시 부활하려면 협조하지 않고는 아니 됩니다.


태평양을 오고가는 큰 배는 캐나다에서 만든 것입니다. 6백 명 승객을 태울 수 있는데 때로 40 명밖에 안 탄답니다. 이 배가 소요하는 비용은 1개월에 수만 원이 되는데 큰 손해를 보고 있답니다. 게다가 승객이 적어 배가 너무 가벼워서 쇠붙이를 가득 실어 가지고 배를 무겁게 하여 운행한답니다.

그렇다면, 그 배의 비용은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곧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타서 이 배를 유지하도록 한답니다. 지금 우리가 우유 한 병을 사려고 하면 혹은 5십 전, 혹은 3십전을 요구하는데 이 3십전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참으며 그렇게 한다면 반드시 오래지 않아 돕지 않아도 될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교육을 가지고 말해 보겠습니다. 학생의 풍기는 문란하고 학교 경비는 매우 군색하니 이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교장 이하 모든 교원들이 먼저 자기 개조를 하고 난 후에야 생도들을 선량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교회의 교역자도 역시 그러합니다. 신앙은 타락하고, 경비는 마련하기 어려우니 교인들은 목사가 힘을 쓰지 않는다고 하고, 목사는 교인이 무식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폐단을 구제하려면 목사는 힘써 전도하고 성의를 다하여 방문하며, 교인은 힘을 다하여 연보를 해서 목사님을 도움으로써 서로 협조하여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종교를 비난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우리 교인들의 생활을 비난하는 것이고 종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생활이 종교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두와 각각은 같지 않습니다. 모두는 힘을 합쳐야 하고, 각각은 해체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갑신년(고종 21, 1884.) 미군이 인천항에 들어올 때 우리는 마땅히 함포를 쏘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대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개의 포를 미리 설치하였다가 한꺼번에 대포를 쏘았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 포들을 한꺼번에 쏘지 못하고 혹은 먼저, 혹은 뒤에 시차를 두고 쏘니 포의 소리가 작아 대포의 소리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힘을 합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힘을 합하면 성공하지만 각자 해체가 되면 통일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각자 서로 비방하여 만에 하나도 성취할 곳이 없게 됩니다. 이는 무슨 까닭입니까? 이는 목사가 날마다 이른바 죄만을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죄가 있게 되면 신경이 마비됩니다. 옛날 삼손의 힘은 머리에 있었고, 과학자의 힘도 머리에 있다고 합니다. 마귀가 여자를 시켜 삼손의 머리털을 뽑아서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인격도 그러합니다. 비록 큰 소리로 불렀더라도 간혹은 도리어 무력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밤길을 가다가 귀신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리가 아주 작았는데 마음이 점점 두려워지자 소리도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집 문 앞에 이르러 그만 쓰러져서 인사불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무것도 없고 연이 문에 매어달려 있었답니다. 죄가 내 마음에 있었으므로 내가 무력하게 되었고, 두려움이 내 마음에 있었으므로 쓰러졌던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약자라고 하고, 죄인을 약자라고 합니다. 남을 탓해서 아니 되고 또 하늘을 원망해서도 안 됩니다. 마땅히 분발하여 힘을 얻을 것이며, 남의 도움을 기다려서도 아니 됩니다.


오늘날 조선인 중에는 학자가 없다고들 말합니다. 반드시 과목을 과학으로 공부하여야 되겠습니다. 사람의 생활이 고정됨이 없이 그침 없이 앞으로 나아간 뒤라야 성공하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여야 합니다.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자는 도리어 사람들을 낙심시키어 용감하게 나아갈 힘을 없게 만듭니다. 나폴레옹의 자전에는 불가능이 없다(無不能)라는 두 글자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마땅히 나폴레옹처럼 용감하여야 하겠습니다. 지극한 정성이 이르는 곳에 금석(金石)도 뚫어 낸다고 합니다. 우리가 정성도 없고 노력도 없으면서 어찌 성공하기를 바라겠습니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지옥에 갈 사람으로 자기도 함정에 빠지고 또 남도 빠뜨립니다. 나의 입에서는 할 수 없다는 말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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