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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20. 신앙의 진보(信仰의 進步) / 마태복음 5:17-끝


정동(貞洞)교회


主讀聖書累加活解, 非但以本文仍解, 加生命的解釋, 凡看聖書, 心活則主言生, 心死則主言沒, 故我以生命讀聖書, 書由我而生, 我由聖書而生, 此乃信仰之進步也. 凡事無進步則必有故障, 比如兒生不長則必有病矣. 故常常省察己有病乎. 今言信仰進步云者, 可指何而言也? 堂宇崇美敎人衆多, 音樂瀏流, 儀式整齊, 美則美矣, 而其中若有腐敗不可謂之進步, 烏山大邱平壤等敎會是也. 故進步不在有形, 不在物資, 只在精神的生命的也. 今言敎會之進步,則可謂敬歎. 1927年前, 一兒呱呱于伯利恒(Bethlehem)之馬槽, 而始傳者非碩, 乃無文牧者也. 漸漸浸占世界, 據一千九百年報告, 則全世敎人乃五億人以上云, 其進步由何而進也? 不在數字乃在生命, 今言進步者數條,

而一, 知神進步, 古代以神爲賞善罰惡的神, 今人亦以此爲信條, 見敎友有病則曰, 悔改後可病愈云, 無子者則曰, 信主則可有子云, 此傳道人乃傳古代之罰惡的神, 今則不然, 雖有罪者卽不見報, 雖有善者亦卽不見報, 雖卽不報, 至終必有應. 主乃寬弘仁恕, 待其悔改, 一視同仁的神也. 雨暘不擇善惡照沾, 僉位欲知神, 不可以狹義解釋, 必以七七番恕人可也. 且以神爲帝王, 使之高高在上, 使人不能親近, 故經曰見上帝者必死云, 而今則不然, 神乃父母也. 親近萬民, 使有溫情近易, 靜可聽主, 黙可見神, 雖愚夫愚婦, 亦可近之, 乃父母的也, 非帝王的也. 故子而愛父, 不如父而愛子也. 古代以神觀之, 今日以人觀之. 古之神事只神之事而已, 今之神乃人之事也, 人以愛神, 不如神以愛人. 古代猶人以神爲民族的上帝也, 今之人以爲萬國民之父也. 時代之神觀如此不同, 以其知神進步也. 讀破萬卷書交賢師友, 猶不能知神, 乃於靜室祈禱時乃知神也.

二, 實行進步, 或爲敎人數三年祈禱, 而友人猶不信, 其故何也? 友人必見敎人之不足故也. 有二敎人互相哢談, 傍有願信靑年聽之, 乃不信曰, 敎人如此好淫不必信, 又有人心火猛然見忿不能忍, 歐人打人無所不至, 乃信主感化, 此人乃牛乳畜也. 一日搾乳, 牛動覆乳, 乃損數十円也. 畜乃笑曰, 我信而非但我受福也, 牛乎汝亦受福也. 我未信時, 可見如此境遇, 則汝必死矣. 有一宣敎師與妻言爭, 必忍以後乃可, 故欲停心火不能, 乃入地下室而立面赤, 家奴見之曰, 何故立此, 對曰勿煩. 此皆信後實行進步也.

三, 事業進步, 信故人任之, 信故事業興, 某信主而營業漸漸旺, 與贈有望. 金仁湜氏言曰, 此必不禮拜, 作非敎人故也. 納爾云者, 百年前美國禁酒之先驅者, 納爾幼時, 見其父一日自友人家歸之, 面有憂色, 納爾問母曰, 父主何故有憂, 此何事也? 母問之, 父曰我友人好盃酌不已, 妻飢兒寒, 今至破産, 汝長後必斷飮可也. 納爾心甚感覺, 及長不飮一滴, 與二妹一日設宴, 納爾曰, 勿設酒以茶代之, 妹曰必不味於人口, 不必然. 爾乃以茶代之, 不見一人降倒, 鄕隣乃效之成風, 後爲消防隊長, 命隊員勿飮, 有一員甚惡之, 請隊員勸酒曰, 此水也, 水克火, 飮此善消火. 對曰 水雖滅火, 酒則滅人, 不可飮云. 其後乃請于州議會, 提起議案, 自此遂行於全美, 此信仰進步之證也.

故曰 主讀聖書, 常常活看, 勿殺人, 惡人乃殺人, 勿犯淫, 有淫欲乃犯淫也. 惡讎愛後, 乃曰愛讎, 此活看聖書故也. 僉位讀經時, 必活看可也.


주님께서 성서를 읽으시다가 여러 군데 해석을 붙였는데, 본문을 그대로 풀이하였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불어넣는 생동적인 해석 활해(活解)를 더 보태었습니다. 대개 성서를 읽다가 마음이 살아 움직이면 주님의 말씀이 산 것이고, 마음이 가라앉아 죽은 것 같으면 주님의 말씀도 죽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가지고 성서를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서는 나 때문에 살아나는 것이 되고, 나는 성서 때문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진보입니다.

모든 일에 진보가 없으면 반드시 고장이 납니다. 비유해 보건대 아이가 태어나 잘 자라지 못하면 반드시 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늘 병이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금신앙의 진보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지적하여 말한 것이겠습니까? 교회당이 크고 아름다우며, 교인이 많고, 음악이 유창하며, 의식이 잘 갖추어져 있으면 아름답다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만일 부패한 곳이 있으면 진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예로 볼 수 있는 곳이 오산, 대구, 평양 등의 교회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보는 형태에 있지 않고 물자에도 있지 않으며 다만 정신적이며 생명적인 것에 있습니다.


지금 말하는 교회가 진보된 것은 가히 경탄할 만합니다. 1927년 전에 한 아기가 베들레헴의 말구유에서 태어났는데, 그 소식을 처음 전한 자는 큰 학자가 아니고, 글을 모르는 목자였습니다. 이때의 신앙이 점점 세계에 번져 1천 9백 년도의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 교인은 바로 5억 명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 진보의 이유는 어디 있다고 생각합니까? 숫자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생명에 있습니다.


이제,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이 두어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에 대한 인식의 진보입니다.

옛날에는 하나님이 착한 자에게 상주고 악한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도 이것을 신조로 삼아 교우가 병이 있을 때, 잘못을 회개하면 낫는다고 말합니다. 아들을 못 낳을 때 주님을 믿으면 아들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전도하는 사람들이 옛 사람들의 상선벌악의 하나님으로 그 전통을 이어받아 그러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렇지 않아 비록 죄를 짓더라도 곧바로 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착한 일을 하더라도 즉시 보답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즉시 보답을 안 받더라도 마침내 가서는 응보가 있는 것인데 주님께서는 널리 용서하시기 때문에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려 똑같이 사랑을 베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비 내리는 것이 태양이 좋고 나쁜 곳을 가려 젖게 하고 쐬고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께서 하나님을 알고자 한다면 좁은 의미로 해석하면 아니 됩니다. 반드시 일곱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해 주는 것이 옳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제왕으로 생각하여 높고 높은 자리에 앉아 있으므로 사람들이 친근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경서에 이르기를 하나님을 본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하늘은 바로 부모이기 때문에 만민과 친근하여 온정을 가지고 가까운 곳에서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조용히 있으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묵묵한 가운데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하찮은 서민들도 가까이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바로 부모님이고 제왕이 아닙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만 못합니다. 옛날에는 하나님을 인식했었는데, 오늘날은 인간 세상에 오신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하나님께서 하는 일을 다만 하나님만이 하는 일로 여겼으나, 하나님도 사람의 일을 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옛날에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유대민족의 하나님으로 생각하였으나,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국의 아버지로 여깁니다. 시대에 따라 하나님을 보는 관점이 이와 같이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진보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 권의 책을 읽어 훌륭한 스승과 벗들을 사귀어도 하나님을 알 수는 없습니다. 바로 고요한 방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실제로 행하는 것이 진보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교인이 되어 수삼 년 동안을 기도하였어도 벗이나 사람들이 신앙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는 반드시 사람들이 교인의 부족한 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교인 두 사람이 서로 농담을 하고 있는데 신앙을 가지려는 청년이 곁에서 듣고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서 말하기를 교인들이 저렇게 음란한 것을 좋아하니 믿을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답니다.

또 어떤 이는 성질이 불꽃같아서 분한 것을 보면 참지를 못하고 남을 구타하는 일까지 거침없이 하다가 주님을 믿고 난 뒤에 감화를 받았습니다. 이 사람은 우유를 짜는 목축업자인데 어느 날 우유를 짜다가 소가 움직여 우유 통을 엎어서 수십 원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목축업자는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신앙을 가짐으로써 내가 복을 받은 것뿐만 아니고, 소야! 너도 역시 복을 받았다. 내가 믿음이 없을 때 이런 경우를 당하였으면 너는 반드시 죽었을 것이다라고 하였답니다.


어떤 선교사가 아내와 언쟁을 하다가 반드시 참아야 되겠는데 성낸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얼굴을 벌겋게 해 가지고 지하실에 가서 있었더니 부리는 아이종이 보고 왜 여기서 계세요하고 묻자 괜찮으니 조용히 해라하고 대답하였답니다. 이게 모두 신앙을 가진 뒤에 실제 행동이 진보한 것입니다.

셋째, 사업의 진보입니다.

신앙이 있으므로 사람들이 믿고 맡기고, 신앙이 있기 때문에 사업이 흥왕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믿어서 영업이 점점 왕성하였으나 재물을 바치는데 인색함이 있었습니다. 김인식 씨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반드시 예배를 드리지 않아서 잘못 된 신상 때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납이(納爾)라는 사람은 1백 년 전 미국의 금주선구자(禁酒先驅者)입니다. 납이가 어릴 때에 그 아버지가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다가 돌아 왔는데 얼굴에 매우 근심하는 빛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납이가 어머니에게 묻기를아버지께서 왜 저리 근심하십니까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캐어물으니, 아버지가 말하기를 친구가 술을 좋아하다 보니 아내는 배를 곯고, 자식은 추위에 떨고 있는데 지금 그 집은 파산이 되고 말았으니 너는 자라거든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납이는 아버지의 이 말을 명심하였다가 장성한 뒤에도 술을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두 누이동생과 잔치를 베풀었는데 납이가 말하기를 술 대신에 차로 접대하자고 하였습니다. 누이는 사람들이 싫어할 터이니 술을 준비하자고 하였으나, 납이는 끝내 차로써 술을 대신하였습니다. 그러자 한 사람도 술에 취하여 한 사람도 쓰러지고 자빠지는 사람이 없게 되었고, 마침내 이웃 마을도 그것을 본받게 되어 차로 대접하는 것이 풍속으로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뒤에, 납이는 소방대장이 되어 대원들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하니 대원 중 한 사람이 그 명령을 듣기 싫어서 친구인 대원을 청하여 술을 권하며 말하기를 이것은 물일세, 물은 불을 이기니까 이 술을 마시면 불도 잘 끌 수 있네하자 그 대원이 대답하기를 물이 불은 끌 수 있지만, 술은 사람을 망치니 마실 수 없소라고 하였답니다. 그 뒤에 납이는 주의회(州議會)에 초청을 받아가서 금주하는 일을 의안(議案)으로 제출하여, 마침내 전 미국에 금주가 행해졌다고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진보가 된 증거입니다. 주님은 성서를 읽을 때 생명을 불어넣는 생동적인 해석인 활간(活看)으로 보았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악인은 살인을 하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음욕을 가지면 간음을 범하였느니라.하였는데, 악한 원수도 사랑을 한 뒤에는 원수를 사랑하게 되느니, 이것은 성서를 활간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읽을 때에 활간으로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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