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LOGIN

회원로그인

ID/PW 찾기회원가입

Favorite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17. 직업 중에서 본 예수(職業中에본 耶蘇) / 요한복음 21:1-14


猶人指耶蘇曰, 彼非木手之子乎? 主實木手之子, 在家庭助其父木工故云也. 然聞主之講說, 則或說醫學, 或說畜業, 或說農業, 或說漁業, 無非眞理. 余於貞洞키불牧師講道時聞之, 則某都會館閣設主像, 使過之者仰瞻, 有一學者過之曰眞我師, 有一畜業者過之曰, 眞我畜師, 有一農業者過之曰, 眞我農師, 有一醫者過之曰, 眞我醫師, 由是觀之 則余在職業中不可不仰瞻耶蘇也. 今彼得前在加利海, 終夜投網, 不得一魚, 彼得深諳漁業, 不得一魚徒勞而已. 此時主謂彼得曰, 舟移深處投網, 彼得以爲自己深諳漁理, 主則木手之子, 何嘗識漁也? 初甚輕之, 後乃順從投網, 大魚入網, 幾不能擧, 招傍人助力上維. 彼得乃服曰我實罪人. 主被釘之後, 門徒遭逼各散, 彼得復歸前業, 亦無所得魚, 主又曰投網, 亦得大魚一百五十三尾. 今吾人作業時, 當思彼得之所遭, 吾等皆作業者, 當祈禱力行, 黙念主言. 昔有傳道數人, 欲制祈禱文, 累日不就, 一朝問于炊婦, 婦曰我無時不祈禱, 早起着衣時曰, 主之愛如衣衣, 洗米時曰, 洗我罪如洗米. 炊火時曰, 賜我熱信炊火云. 諸師聞之甚當, 吾人無論我業當祈禱, 不祈禱不效. 美國카넥이工場, 工人三十萬名, 各場始工時, 必禮拜讚美, 其意願使物堅做, 利及他人焉. 他工場每每스트라익, 而此工場小不携貳, 且且進步. 以上炊婦及工人, 於其業中見主. 勿論何事, 不合眞理不成. 거라사牧豕之業, 不合其時之眞理, 今日敎人酒業, 亦如거라사之豕業, 主謂彼得曰, 爾愛我乎? 爾愛我牧我羊. 牧民者當思此言, 故摩西爲救民而捨埃及宮中之富貴, 但以理不食宮中之饋而爲民祈禱也. 今朝鮮人失業者以萬數, 各國失業者續續出焉. 今以何術救之? 不平滿滿. 主牧我羊, 主則爲羊捨命, 卽其職也. 在上當思此訓可也. 吾人當思作業時, 如主勤勉, 如主忍耐, 如主勇敢, 職業中見主者果何人也? 吾等見牧者, 見主暗夜守羊使不失所, 飢則與粮渴則與飮, 以盡牧者之職, 故主現顯慰其勤勉守職. 吾等勤於職守, 主曰我來何時見何等守職賞之, 見失職罰之, 豈非以此也? 此忍耐者見主, 눅 16章 거지납살로(나사로), 何等苦惱, 受辱不一, 驅逐逼迫, 無所不至, 不發惡言至終忍之, 故在아부라함之懷中黙示, 又曰 爾守忍之道, 則我冕旒系云. 吾等忍耐職守, 主必懷之, 勇敢者見主, 스데반이 何時見主也. 被石擊臨終時, 見人子立右, 故吾等活潑勇敢, 如主大勇, 主在架上, 天使下降, 皆其例也. 若臨難苟且非主徒矣. 吾等懦弱, 畏首畏尾, 則不敢見主, 主嘗曰 爾勿懼殺肉者, 當畏殺肉而更殺靈者可也. 此言使人勇敢, 버스막이에 此言激勵, 全國民使獨逸强於天下矣. 吾等當念之哉.


*거라사 : '쿠르시'(Kursi)는 거라사의 현재 지명. 돼지 떼가 빠져죽음.


유대인이 예수를 가리키기를저 사람이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하였는데 주님은 실제로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집에 있을 때 그 아버지의 목공 일을 도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강연하는 소리를 들으면 혹은 의학에 대하여, 혹은 축산업에 대하여, 혹은 농업에 대하여, 혹은 어업에 대하여 말하였는데 모두 진리가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내가 정동교회에서 케이블 목사님이 설교를 할 때 들었는데, 어느 도시의 건물에 예수님의 상을 걸어놓고 지나는 나그네들에게 우러러 보도록 하였답니다. 그런데 어떤 학자가 지나다가 보고 참으로 나의 스승이라 하고, 어떤 축산업자는 참으로 우리 축산업의 스승이라 하고, 농업을 하는 사람은 우리 농업의 스승이라고 했으며, 의원는 지나다가 보고 우리 의학계의 스승이다라고 하였답니다. 이러한 것을 가지고 볼 것 같으면 직업을 가진 우리들은 불가불 예수님을 우러러 보도록 하여야겠습니다.


저 베드로가 옛날 갈릴리 바닷가에 있을 때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으나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어업에 대하여 깊이 잘 알고 있었는데도 애만 썼을 뿐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는데, 그 때 주께서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배를 깊은 곳으로 옮겨 그물을 던지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생각하기를자신은 어업의 이치를 깊이 알고 있지만, 주님은 목수의 아들로 어찌 물고기 잡는 일을 알 것인가? 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님의 의견을 가벼이 여기다가 뒤에 주님이 말한 대로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큰 물고기들이 걸려들어 그물을 들어 올리지 못하게 되자, 곁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 도움을 청한 뒤에 벼리밧줄을 끌어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뒤에 베드로가 복종하기를 내가 실로 죄인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뒤, 주님께서 못 박히시고 제자들이 핍박을 받고 흩어지자, 베드로도 전업인 어업으로 복귀하였는데, 역시 물고기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또 나타나시어 투망할 곳을 지정해 주자, 역시 대어 153마리를 잡았습니다.


지금 우리들은 작업을 할 때에 베드로가 당하였던 경우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니 마땅히 기도하고 힘써 행하며 주님의 말씀을 묵념해야 합니다.

옛날에 전도하는 두어 사람이 기도문을 지으려고 여러 날을 생각하였으나 생각이 나지 않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부엌아주머니 한테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부엌아주머니가 이르기를 나는 기도를 하지 않는 때가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옷을 입을 때는 주님의 사랑이 옷을 입는 것처럼 해 주옵소서 하고, 쌀을 씻을 때는 나의 죄를 이 쌀과 같이 씻어주옵소서 하고, 불을 땔 때는 나의 믿음의 열정을 이 불꽃처럼 해 주옵소서 하였습니다고 하니, 여러 전도자들이 그 말을 듣고 매우 합당하다고 하였답니다.


우리는 나의 직업이 무엇이든 막론하고 마땅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습니다.

미국의 카네기 공장에 공인이 30만 명인데 각 작업장마다 일을 시작할 때 반드시 예배로써 찬미하였는데, 그 예배의 뜻하는 바는 만드는 물건들이 견고하여 이익이 다른 사람에게도 미치게 하소서하는 내용이었답니다. 이 때 다른 공장들은 늘 데모가 일어났으나 이 공장에는 작은 분쟁도 없어서 계속하여 발전해 나갔답니다. 앞에 예로 든 부엌아주머니나 공장 종업원들은 그 작업 중에서 주님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을 막론하고 진리에 합당하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거라사에서 돼지를 기르는 업은 그 당시의 진리에 맞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 날 교인들이 술을 생산하는 업도 거라사의 돼지 기르는 일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거든 내 양을 기르라 하셨는데,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마땅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애굽 궁중의 부귀도 버렸고, 다니엘은 궁중에서 주는 음식도 먹지 않고 백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지금 조선인의 실업자가 수 만 명이나 됩니다. 각국의 실업자도 계속하여 나오는데 지금 무슨 방법으로 구제하겠습니까? 불평만 가득합니다. 주께서는 나의 양을 기르라 하고, 주께서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바로 그 직분이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마땅히 이 가르침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은 마땅히 작업할 때에 주님처럼 근면하고, 주님처럼 인내하고, 주님처럼 용감하여야 합니다. 직업 중에 주님을 본 자는 과연 어떤 사람입니까?


우리는 목자를 보면서 주님께서 어두운 밤에 양들이 잠자리를 잃지 않도록 지키며, 배고플 때 양식을 주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여 목자의 직책을 다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다시 나타나시어 근면하게 직책을 지키고 있는 것을 위로하였습니다.

우리는 직책을 지키는데 부지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나는 어느 때고 와서 무엇이든 보아 직책을 잘 지키면 상을 줄 것이고 직책을 잃으면 벌줄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어찌 이것이 부지런함을 권장한 말이 아니겠습니까?


여기 인내한 자 주님을 본다고 한 것은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가 얼마나 많은 고뇌를 하였는가를 말한 것입니다. 나사로는 욕을 본 것이 한 가지뿐만이 아니었고, 쫓기고 핍박받는 일이 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악한 말을 발하지 않았고 끝까지 참았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품속에 안기어 묵묵히 계시하였습니다.

주께서 또 말씀하기를 네가 참는 도를 지키면 나의 면류관을 주리라 하였는데, 우리가 인내로 직책을 지키면 주께서는 반드시 품에 안으실 것입니다. 용감한 자가 주님을 봅니다. 스데반이 언제 주님을 만났습니까? 돌에 맞아 죽어갈 때에 주님이 하나님의 오른 편에 서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활발하고 용감한 것을 주님처럼 크게 용감해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그 때 천사가 내려온 것이 모두 그러한 예입니다. 만일 어려움을 당하여 구차하게 살려고 한다면 주님의 무리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나약하여 매우 의심하며 두려워한다면 주님을 감히 만나 뵐 수가 없습니다.

주께서 일찍이 이르시기를 너희는 육체의 죽임을 두려워하지 말고, 육체를 죽이고 다시 영혼을 죽이는 자를 두려워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용감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비스마르크가 이 말을 가지고 격려하였더니, 전 국민이 독일을 천하에 강국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여야 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교인명부 및 원입 및 세례 aesan 2013.12.16 11199
공지 서평 - 전창희 박사 aesan 2013.10.12 9054
공지 무화과 설교집을 출판하면서 aesan 2013.09.27 8223
공지 김진호 셋째 아들 김희영 회고 aesan 2013.09.27 8565
공지 ‘무화과’ 간행에 참여하면서-오세종 aesan 2013.09.27 7983
공지 <무화과> 탈초 및 번역 후 소감-번역자 조면희 aesan 2013.09.27 8644
공지 출판 및 원본저자와 번역자 aesan 2013.09.20 7821
공지 무화과 노트설교 1권 원본표지 aesan 2013.09.13 8168
55 20. 신앙의 진보(信仰의 進步) / 마태복음 5:17-끝 - 029~030 aesan 2013.10.27 1550
54 19. 강건(强健) / 에베소서 6:10-20, 고린도전서 16:13 /이명직 / 027~029 aesan 2013.10.27 1487
53 18. 천국은 가까이 왔느니라(天國近) / 마태복음 4:17. 또 6:9-15 /옥강 / 026~027 aesan 2013.10.27 1479
» 17. 직업 중에서 본 예수(職業中에본 耶蘇) / 요한복음 21:1-14 - 024~026 aesan 2013.10.27 1453
51 16. 은혜 받을 자 / 마태복음 9:13 - 022~024 aesan 2013.10.27 1382
50 15. 좋은 직책을 선택하라(擇此善職) / 누가복음 10:42 - 021~022 aesan 2013.10.27 1356
49 65. 그리스도께서 세 번 나타나심(基督之三顯) / 히브리서 9:23-끝 aesan 2013.10.18 1557
48 49. 하나가 되라 / 요한복음 17:11-12 aesan 2013.10.18 1969
47 무화과 노트설교 1권 021 file aesan 2013.10.18 1497
46 14. 예수를 배우는 법 / 마태복음 11:29 - 019~021 aesan 2013.10.18 1693
45 13. 이상적인 인물 / 마태복음 8:1-15 / 신석구 목사 / 019 aesan 2013.10.18 1654
44 12. 나의 책임이 무엇이냐 / 에베소서 5:6 / 케이블 / 017~019 aesan 2013.10.18 2286
43 11. 가난한 자의 복음(貧者의 福音) / 누가복음 4:16-40 - 016~017 aesan 2013.10.18 1681
42 10. 주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主內無不能) / 빌립보서 4:13 - 015~016 aesan 2013.10.18 1621
41 9.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我有罪時基督死矣) / 로마서 5:1-8 / 정남수 / 015 aesan 2013.10.18 1686
40 8. 참 자유 (眞自由) / 요한 8:31-36 - 014~015 aesan 2013.10.18 1504
39 7. 신년의 첫 예배(新年 첫 禮拜) / 에베소 4:17- 24 / 김종우 목사 / 014 aesan 2013.10.18 1671
38 6. 항상 나의 말에 거하라(恒在我道) / 요한복음 8:31 - 013~014 aesan 2013.10.18 1424
37 5. 새 마음 / 마태복음 9:16 - 011~013 aesan 2013.10.18 1613
36 4. 사관(舍館)과 말구유 / 누가복음 2:1-20 - 010~011 aesan 2013.10.18 1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