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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16. 은혜 받을 자 / 마태복음 9:13


체부동(體府洞)


盖人之心, 好善而惡惡, 稱美而掩醜者何也. 醜惡人之所惡也. 美善人之所好也. 今讀聖書, 則主不爲義人而來, 爲罪人而來云, 然則爲罪反爲福乎, 此言誠然矣. 今云罪者何? 非特指盜賊犯淫等而爲罪也. 罪者不足也. 盖人自認不足者, 主使自足故, 曰有福也. 自其未有自足而能足者也. 比如器滿不能添物也. 海常不足故常受不盈, 山亦不足故不辭微塵也. 人之於主誰不有罪也? 自稱爲義者多而自稱有罪者甚少也. 非但甚少也, 絶無可也. 向在獄者問之則皆曰無罪也. 以此觀之, 人皆不知受福之法也. 光何處爲光也? 必在暗黑而後爲光也. 義何處爲義也? 必在罪惡而後爲義也. 今言爲福者卽光乎義乎. 今暗黑以受光爲福, 罪惡以受義爲福也. 故受福者非光也義也, 乃暗黑也, 乃罪惡也. 在山者無更上之所望, 在山下者自降之所望. 今朝鮮人在山上乎, 在山下乎? 勿謂泰山之高, 必將理屐持杖爲將發之勢進進不已可也. 此時稅吏馬太, 受世人之排斥, 放逐于社會之外, 猶人不與同坐, 不與同食, 不與幄手, 無罪而實若有罪, 是時在馬太者暗黑而已, 苦痛而已, 不快而已也. 何嘗有生世之樂也? 或自反曰我亦人乎, 黃金雖多不足慰其心, 地位雖要亦不足慰其心, 知舊雖多亦不能慰其心, 自分雖生如死也. 此時主來臨于馬太之家, 握馬太之手曰, 兄弟乎! 爾捨稅職而從我. 於是馬太之心滿足, 生平愉快, 前日之煩悶, 怳如雪消. 心內始覺平安, 如獲至寶也. 今衡平社員雖曰解放, 而與平民無異然, 猶不得心安, 不知受福之源在何處也. 憂虞者, 欲忘憂而痛飮, 亦不可忘, 欲忘憂而觀劇, 欲忘憂而登山臨水, 亦不可忘, 亦不知忘憂之源在何處也. 有人謂馬太曰, 汝已解放勿憂, 或謂如前, 汝欲忘憂, 必飮酒觀劇, 亦不忘而憂悶如前也. 然今日馬太之歡樂, 非前日之 馬太也. 何故也? 主赦其罪而慰之故也. 主又曰傳道於貧者, 今貧者在何等不安, 無罪而爲罪人, 無過而爲小人, 不齒於人, 不人於黨, 自然羞愧, 貧寒果罪惡乎? 有曰君子安貧, 古人以貧爲道, 顔子簞瓢空時, 人不以爲非, 原憲不厭糟糠, 世人猶不輕視, 而今日貧困, 視如一種罪惡, 貧者不敢擧頭, 弱者不敢發言, 猶大社會尤甚, 貧者甚至鬻爲奴隸, 猶人爲奴於羅馬, 不知幾萬人, 慘哉貧之禍也. 主來世尤恤貧者, 歎嫠婦之投錢, 食曠野流離之五千人, 以救貧爲自己之義務, 故使猶大掌財行之, 貧有兩種, 有靈貧有肉貧, 兩皆不容於世, 其數比富者尤多, 將何以救之? 我民之流離入間島者, 目不認見, 欲東渡而不能, 但彷徨海濱者數千人云. 幷將何以救之? 吾人當爲之祈禱可也. 此時貧者當受福, 貧故古儉節用, 貧故有向上之望, 貧故能淸潔不汚, 貧故能勤儉, 故主曰心貧有福, 天國乃其有也. 此自云無罪者無希望, 自認有罪哀痛者有福, 今爲人哀恤者甚多, 而爲自己哀痛者不多, 犯淫之女誰可赦之乎? 只欲石擊殺之, 而主則曰更勿犯罪, 架上之强盜, 誰能恤之? 只欲咀呪殺之, 而主則曰我與爾在樂園, 以此視之, 主非但爲罪人之同情也. 實爲罪人之福. 如陰崖日照, 窮巷雪消也. 陽春布德澤, 萬物生光輝云. 主卽陽春, 萬物甦生也. 故受福者非義人也, 卽罪人也.


대개 사람의 마음이 선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며, 아름다운 것은 칭찬하고 추한 것은 가리어 막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추악한 것은 사람들이 미워하고, 착하고 아름다운 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성서>를 읽어보면 주님께서는 의인을 위하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위하여 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죄가 도리어 복이 된다는 말입니까? 이 말은 실로 그럴 듯합니다. 지금 여기서 죄라고 한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특별히 도적이나 간음을 범한 자 등의 죄를 진 사람을 지칭한 것이 아닙니다.

죄라고 한 것은 부족한 것을 이름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스스로 부족함을 인정하게 되면, 주께서 만족하게 만들어 주시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것이 있는 것으로부터 만족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물건이 그릇에 가득 차 있으면 더 이상 담을 수가 없습니다. 바다는 늘 부족하기 때문에 아무리 받아들여도 가득차지 않습니다. 산도 늘 부족하기 때문에 작은 티끌도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사람이 주님에 대하여 누군들 죄를 짓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스스로 옳은 일을 했다고 하는 이는 많지만, 스스로 죄가 있다고 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적을 뿐만 아니라 아주 없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자를 향하여 물어보면 모두 무죄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들은 모두 복을 받는 방법을 모릅니다.

빛은 어디에 있어야 빛이 납니까? 반드시 어둠 속에 있어야 빛이 납니다. 의는 어디에 있어야 의가 됩니까? 반드시 죄악에 있어야 의가 됩니다. 지금 여기서 복이라고 한 것은 빛이고 의입니다. 지금 어두운 시기에 빛을 받아야 복이 되고, 죄악 속에 있으니 의를 발휘하여야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는다는 것은 빛도 의도 아니고, 바로 암흑이며 죄악입니다.

산에 있는 자는 다시 더 올라가겠다는 소망이 없고, 산 아래 있는 자는 내려 가야할 소망이 없습니다. 지금 조선 사람은 산위에 있습니까, 산 아래 있습니까? 태산이 높다고 이르지 말고 반드시 신발과 지팡이를 준비하여 출발할 형세를 갖추고 그치지 않고 나아간다면 오를 수 있습니다.


이 당시 세리인 마태는 세상 사람들의 배척을 받아 사회의 밖으로 쫓겨나서 유대인과는 같이 앉을 수도, 함께 먹을 수도, 서로 손을 맞잡을 수도 없었습니다. 죄가 없는데도 실제로 죄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당시에 마태에게 있는 것은 암흑뿐이었습니다. 고통뿐이었습니다. 불쾌뿐이었습니다. 어디 세상에 살고 싶은 낙(樂)이 있었겠습니까?


때때로 자신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나도 사람인가? 황금이 아무리 많아도 내 마음을 위로하는데 부족하고, 지위가 비록 중요한 직책을 가졌어도 마음을 위로하는데 부족하며, 친구가 아무리 많아도 내 마음을 위로할 수 없으니, 자신의 운명은 살아 있어도 죽음과 같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에 주님께서 마태의 집에 오셔서 마태의 손을 잡고 말하기를 형제여! 너는 너의 세리직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마태의 마음은 만족하였고, 유쾌해졌으며, 지난 날 번민은 눈처럼 녹았으며, 마음속이 비로소 평안해져서 마치 지극한 보배를 얻은 것 같았습니다.


지금 형평사(衡平社)의 회원들이 해방을 얻었다고 주장하나 평민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여 어디를 가서 어떻게 하여야 복을 받을 근원을 찾을지 모르고 있습니다. 근심에 쌓인 자는 근심을 잊기 위해 술을 마구 마시지만 그래도 근심을 잊어버릴 수 없고, 근심을 잊으려고 연극을 본다든지, 등산이나 물가에 노닐어 보지만 역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근심을 잊을 수 있는 근원이 어디 있는지를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마태에게 이르기를 너는 이미 해방되었으니 근심하지 말라고 하고, 어떤 이는예나 똑 같으니 네가 만일 근심을 잊으려거든 음주와 관극을 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근심을 잊지 못하고 여전히 근심과 안타까움에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태의 기쁨은 지난날의 마태가 아닙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주님이 그 죄를 풀어주고 위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또 말씀하기를 가난한 자에게 전도하라하셨습니다. 지금 가난한 자는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죄가 없는데도 죄인이 되었고, 허물이 없어도 소인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끼이지도 무리들에 들어가지도 못하여 스스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워지게 되었으니 빈한한 것이 과연 죄악입니까?

어떤 사람이 이르기를 군자는 가난을 편히 여겨야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가난은 도를 닦는 과정으로 삼았으므로, 안자(顔子)는 도시락의 밥도 자주 비어, 먹을 것이 없었으나 사람들은 그를 그르다고 하지 않았고, 원헌(原憲) 같은 사람은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고 살았어도 사람들은 오히려 얕잡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빈곤은 일종의 죄악 같이 보아서 가난한 자는 머리도 들지 못하고, 약한 자는 감히 제대로 말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유대사회가 더욱 심하여 가난한 자는 심지어 노예로 팔리게 되니, 유대인으로 로마에 종으로 팔린 자가 몇 만 명인지 모릅니다. 가난의 화는 이렇게 참혹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나오시어 가난한 자를 더욱 돌보시고, 과부의 헌금을 감탄하셨습니다. 광야에 떠도는 오천 명의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시며 가난을 구제하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삼았습니다. 그리하여 유대인으로 하여금 재물을 맡아 구제하는 일을 행하도록 하였습니다.


가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영혼이 가난한 영빈(靈貧)이 있고, 육체가 가난한 육빈(肉貧)이 있습니다. 둘 다 세상에서 용납해 주지 않는데 그 수는 부자(富者)보다 더 많습니다. 장차 어떻게 구원해야 하겠습니까?

우리 조선 백성 중에 가난으로 떠돌아다니다가 간도(間島)로 들어간 사람들은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합니다. 고국이 있는 동쪽으로 건너오려고 해도 되지 않아 물가에서 방황하는 자가 수천 명이라고 합니다. 모두 장차 어떻게 구제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마땅히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이때 가난한 자 마땅히 복을 받습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검소하고 절약하여 쓰게 되고, 가난하기 때문에 위로 발전할 희망이 있으며, 가난하기 때문에 오염되지 않고 청결할 수 있으며, 가난하므로 부지런하고 검소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주께서 이르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 복이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천국은 바로 그가 가지게 됩니다. 이는 스스로 무죄하다고 하는 자는 희망이 없고, 스스로 죄가 있어 애통하다고 인정하는 자는 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남에게 슬픔과 동정을 받는 사람은 매우 많지마는 자신의 죄악을 슬퍼하고 아파하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간음을 범한 여자를 누가 용서하려고 합니까? 단지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였지만 주께서는 다시 죄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를 누가 능히 어루만져주겠습니까? 다만 저주하고 죽이려고 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르기를 너는 오늘 나와 낙원에 있으리라 하였습니다. 이로 보면 주님께서는 비단 죄인을 위하여 동정해 줄 뿐만 아니라, 실로 죄인의 복이 되었습니다. 마치 그늘 속의 절벽에 햇살이 비치어 깊숙한 골짜기에 눈을 녹이듯 하였습니다.

따뜻한 봄이 봄기운을 퍼뜨려 만물이 빛을 발하게 하듯 하였습니다. 주님은 바로 따뜻한 봄으로서 만물을 소생시킵니다. 그러므로 복을 받는 자는 의인(義人)이 아니고 바로 죄인(罪人)입니다.


* 형평사(衡平社) :

천민 계급, 특히 백정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정치적 투쟁을 목적하여, 1923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창립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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