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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14. 예수를 배우는 법 / 마태복음 11:29


홍제원


主時學耶蘇者多, 而不一其攢也. 彼得初學主, 見主蹈海, 己亦欲蹈海. 見波濤而陷, 他弟子見主醫病, 見痐兒不能醫, 至使兒父落心. 他門徒從主, 見神推之隱赫而已, 亦欲坐高位, 至聞主釘死落心, 他門徒從主, 而見祝餠食五千人, 乃動虛榮而從之, 主曰勿爲腐粮而從事也 學主皆非此等也. 僉位不見主遇試乎魔試? 幷害事而已. 少不能成功者也. 故主斥之. 魔試卽何也? 一曰心. 今日朝鮮人亦此試中, 모든 問題, 모든 罪惡, 皆從此出也. 實非易易之事. 主祈文曰 ‘主乎! 賜日用之粮. 主若不賜之, 我不能生’ 今朝鮮人之만나卽何也? 勿理別件, 僉位不讀田夫之遺言乎? 勞力卽만나, 流汗卽田寶也. 二曰能力, 今吾人亦在此試, 幸人人皆欲得力, 力在於何也? 英語乎,日語乎,諸科學乎? 信仰可能力也. 力不在于人, 卽在于神. 信神有能力, 務專一進進不已, 則可得能力也. 今人狂求曲于人, 人不予則發憾情發惡言, 此何等不法也? 勿履人足, 我癢我瘙, 我飢我飽, 信心亦然, 只信而不務信行, 則何益之有也? 如臥果樹之下而望果入口也. 不觀摩西乎? 不觀河伯잉커언乎? 吾人當力行不怠也. 三曰虛榮, 魔曰天下之榮乎, 主云此何等誤謬也? 今吾人皆動於虛榮, 如風動之葉, 無方向無主着, 向一主義不顧淸濁而言從, 今某會某主義, 如雨後之竹筍, 日時幷發, 不可防止, 蓋榮自恥辱中來, 今拜魔甚辱也. 然爲虛榮爲拜則不可得, 句踐屈辱會稽復越, 와싱톤 屈英國爲得自由, 今支那久屈强國爲今振興, 吾人不如是, 久屈爲欲得捽富貴, 亦不可得也. 故學主者皆非此等也. 宗敎有美術, 使人類愉快忘憂矣. 美術有各種建築家, 以美術建築, 則家室甚美, 文學家以美術著述, 則使人生覺醒. 音樂以美術頌揚, 則使聽者快樂, 此等皆吾生活上爲美術, 而不宗敎之美術也. 假令吾人爲住居, 建一屋, 盡精美栽花草, 備置樂器, 又設書畵, 吾人處此, 何等快樂也? 然此亦不可樂吾人. 吾嘗在仁川, 過一洋屋之外, 聞紛爭之言, 又聞哭泣之聲, 過時聞之, 回時亦聞之, 其中甚有不平之事, 此無宗敎故也. 國家亦然, 使道路整理, 設置公園, 設宏大之建物, 雜飾道路, 而民有怨聲則可乎? 吾等欲學耶蘇, 學其謙遜及勞力可也. 非謙則不可勞, 謙與勞不可相離. 拜魔非謙也, 卽謙於所事, 我當事者何也? 我爲人僕乎, 當謙也. 我爲人子乎, 當謙也. 我爲人父乎, 當謙也. 我爲人先生乎, 當謙也. 故謙於所事. 我爲人敎育者乎, 當謙也. 我實業者乎, 當謙也. 我傳道者乎, 當謙也. 謙者非謙於物也, 非謙於人也. 卽謙於事也. 無謙於事之心, 不可成功. 今人常有失敗, 不謙於事故也. 人常怨俸給之少, 常怠於所事, 故不成. 北美婦人喪夫有二兒, 生活極難, 爲人縫婦, 初則一週七弗, 終則一週一百二十弗云, 此謙於事故也. 且勞於事是學主, 天下無不勞爲得者, 勞有兩種, 有勞於己者, 有勞於人者. 勞於己者中也, 勞於人者上也. 耶蘇勞於人者也. 又有勞於假者, 有勞於眞者, 勞於假者敗, 勞於眞者成也. 夢中起樓數百間, 朝起則皆虛間也. 勞於假者非徒無功也. 卽生罪惡, 害及萬民, 當思今日我之勞力, 虛耶眞耶, 故保羅曰勿爲擊空, 擊空千百番, 而終無聲也. 願僉位勞己乎勞人乎? 勞眞乎勞虛乎? 汗卽勞也. 汗之流下, 勿論空間時間, 有偉大歷史者, 皆汗之史也. 大矣汗之力也. 美人醫巴孚鳥, 英人 락쑤쓰 開運河, 救主設天國, 人間有偉大發明家, 皆汗之功也. 非汗無以成功, 古云功塔不壞云,빠벨塔雖高必壞, 뻬델梯雖高必保, 願僉位念之哉!


주님 시대에 예수님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그 모임이 일정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주님을 배울 때 주님이 바다 위를 걷는 것을 보고, 자기도 바다 위를 걸어보려고 하다가 파도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른 제자는 주께서 병을 고치는 것을 보고, 횟배를 앓는 아이를 고치려 하다가 고치지 못하자 아이의 아버지가 낙심하게 된 일도 있습니다. 또 다른 제자는 높은 자리에 앉아보려고 따르다가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을 보고 낙심한 이도 있습니다. 또 다른 제자는 주님께서 축사와 아울러 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먹이시는 것을 보고, 허영심으로 따랐으나 주께서 말하기를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배우는 일은 모두 위와 같이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이 시험당하는 것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마귀의 시험은 모두 해로운 일 뿐이었습니다. 조금도 성공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마귀를 물리치셨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곧 무엇이었습니까?


첫째, 마음의 시험, 돌들로 빵이 되게 하라는 문제였습니다. 오늘의 조선 사람들도 이 시험 속에 있습니다. 모든 문제, 모든 죄악이 모두 이 시험에서 나왔지만, 실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주기도문에 이르기를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주께서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조선인의 만나는 곧 무엇입니까? 특별히 다른 문제로 다루지 마십시오. 여러분께서는 농부의 유언을 읽어보지 않으셨습니까? 노력이 바로 만나이고, 땀이 바로 밭의 보배입니다.


둘째는 능력, 성전 꼭대기서 뛰어내리라는 문제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이러한 시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은 모두 힘을 얻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힘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영어나 일어나 모든 과학을 배우는데 있겠습니까? 신앙이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힘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능력을 얻게 되니, 오로지 한결 같이 전진하는 일을 그치지 않으면 능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그릇되게 생각하고, 사람에게 능력을 구하려고 하다가 사람이 능력을 주지 않으면 감정이 생겨 나쁜 말까지 하게 되는데 이 얼마나 불법적인 일입니까? 남의 발을 밟지 말고, 가려운 곳은 내가 긁으며, 배고프면 스스로 배불리도록 하라하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그냥 믿기만 하고 믿음을 실행하는데 힘쓰지 않으면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과일나무 밑에 누워서 과일이 입에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를 보지 않았습니까? 아브라함 링컨을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이들과 같이 힘써 실행하고 게으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허영, 마귀가 자기를 경배하라고 한 문제입니다.

마귀가 이르기를 천하의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고 하자, 주님께서 답하기를 이 무슨 잘못된 말이냐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모두 허영에 움직입니다. 마치 바람에 휩쓸리는 나뭇잎처럼 방향도 중심도 없습니다. 향일주의(向一主義)는 좋고 나쁜 것을 가리지 않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어떤 모임이나 어떤 주의들이 우후죽순처럼 한꺼번에 생겨나서 막을 수가 없습니다.


대개 영광은 치욕 가운데서 스스로 오는 것인데, 지금 마귀에게 절을 하는 것은 매우 욕된 일입니다. 허영을 위하여 절을 하게 되면 영광을 얻을 수 없습니다.

월왕 구천은 회계의 굴욕을 견디고 월나라를 회복시켰고,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톤은 영국의 굴욕에서 자유를 얻었으며, 지금 중국은 오랜 동안 강국의 굴욕에서 떨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 같이 하지 못하여, 오랜 굴욕 속에서 허영을 위하여 갑자기 부귀를 얻으려고 하나, 역시 이룰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배우려면 이와 같이 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에 미술이 있는데 이는 인류에게 유쾌함을 주어 근심을 잊게 하는 것입니다. 미술에는 각종 건축가가 있어서 미술 건축을 한 집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문학가가 미술적인 방법으로 글을 지으면 인생을 각성하게 하고, 음악도 미술적인 방법으로 찬양하는 노래를 하게 되면 듣는 이가 쾌락을 느낍니다. 이들은 모두 우리 생활상의 미술이 되고 종교의 미술이 아닙니다.


가령 우리가 주거를 위하여 집을 하나 지었다고 합시다. 아름다움을 다 갖춘 집에 화초를 심고, 악기를 비치하고 또 글씨와 그림을 걸어놓은 뒤에 우리가 여기에 살게 되면 얼마나 유쾌하겠습니까? 그러나 이것만으로 역시 우리 인간을 즐겁게 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일찍이 인천에 있었는데 양옥집 밖을 지나가다가 집안에서 나오는 다투는 소리와 흐느끼며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도중에 또 들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아주 많은 불평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는 종교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도 이와 같습니다. 도로를 잘 정리하고 공원을 설치하며 큰 건물들을 짓고 여러 가지로 길을 꾸며놓았다고 하더라도 백성의 원망하는 소리가 난다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배우려고 하는 것은 그의 겸손함과 노력을 배워야합니다. 겸손이 아니면 노력할 것이 없으니, 겸손과 노력은 서로 떨어질 수가 없습니다. 마귀에게 절하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하고 있는 일에 겸손해야 하는데 내가 당면한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남의 종이 되기 위하여 겸손해야 하고, 남의 자식이 되기 위하여 겸손해야 하고, 남의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겸손해야 하고, 남의 선생이 되기 위하여 겸손해야 하니, 곧 하는 일에 겸손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의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도 겸손해야 하고, 실업자로서도 겸손해야 하고, 전도자로서도 겸손해야 하는데, 겸손이라는 것은 물질에 겸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는 일에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일에 겸손하는 마음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늘 봉급이 적다고 원망하며, 하고 있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므로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부인이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기르며 살았는데 생활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남의 바느질하는 여자로 취직하였는데, 처음에는 1주일에 7불씩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침내는 1주에 1백 20불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하는 일에 겸손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노력하여 일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노력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노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자신에게 노력하는 것과 남에게 노력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노력하는 것이 중간이라면 남에게 노력하는 것이 위가 됩니다. 예수님은 남을 위해 노력하신 분입니다.

또 노력에는 가짜로 노력하는 것이 있고, 진짜로 노력하는 것이 있습니다. 가짜로 노력하는 자는 실패하고, 진짜로 노력하는 자는 성공합니다. 꿈속에 수백 간의 집을 지었어도 아침에 일어나면 모두 헛된 공간이 됩니다. 이렇게 가짜로 노력하는 것은 성공이 없을 뿐 아니라 곧 죄악을 낳아 만민에게 해를 끼칩니다.


마땅히 오늘날 내가 한 노력이 가짜인가 진짜인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빈 공중을 치지 말라 하였습니다. 텅 빈 공중을 천 번이나 백 번을 쳐봐도 끝내 소리는 나지 않습니다.

바라건대 여러분께서는 자신을 위해 노력하겠습니까, 남을 위하여 노력하겠습니까? 진짜로 노력하겠습니까, 가짜로 노력하겠습니까? 땀이 곧 노력입니다. 공간이나 시간을 막론하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위대한 역사가 있는 것은 모두 땀의 역사입니다. 땀의 힘은 큽니다. 미국인 의사 파부조(巴孚鳥)와 영국인 락쑤쓰는 운하를 만들었고, 구주(救主)께서는 천국(天國)을 만들었으며, 인간에 있어서 위대한 발명가는 모두 땀의 공과입니다. 땀이 없으면 성공이 없습니다. 옛말에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바벨탑은 아무리 높아도 반드시 무너졌고, 베델 사다리는 아무리 높아도 잘 보존되었습니다. 바라건대 여러분은 이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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