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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편 1:2)

52. 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我成父旨) / 요한복음 4:34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避勞者 勿食)

데살로니가후서 3:10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이니라

(流汗而食)

창세기 3:19

손을 움직일 것

(以手作用)

사도행전 20:34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신다

(於種者給粮)

고린도후서 9:10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踏穀之牛勿網口)

디모데전서 5:18


체부동(体府洞)


摛聖經而言, 人之犯罪, 蓋由於食, 食有誘惑, 不察而食罪也. 人不食則死, 故民以食爲天, 言食之貴也. 然今看世人之浪費, 一食千金, 一卓之費, 可當貧者一年之食. 古者洛陽有富者, 日食萬錢, 無下箸處云, 不可謂無罪, 朱門酒肉臭, 道有餓莩骨, 甚哉浪費之害也! 朝鮮之內, 昨一年酒價, 幾近四千萬円, 此食而犯罪者也. 豈不寒心哉! 常食之物, 皆自何而出也, 幷出自勞作, 古詩曰 誰知盤中飱, 粒粒皆辛苦. 前日京居之貴人, 或散步出郊, 見稻黃不知問人, 人曰 此是쌀남우也云, 吾朝鮮幾百年如是而來, 欲不飢, 幾乎難矣. 古者皇帝重農, 親耕以示民, 后妃親蠶以示民, 今俗澆漓, 反不如古, 甚矣末俗之不可爲也! 主言我成父旨云者 何? 卽代勞之意也, 主前言父, 主今勞我, 亦勞作云, 然則成父旨者, 卽代勞作之意也. 勞作是我粮, 此主非刱言, 必依聖經而言, 刱三장 十九절, 流汗而食, 亦勞作得食之意也. 但勞作各異, 不可盡同, 吾人之勞作, 與主之勞作不同, 然勞作一也. 神有賜物, 人非勞作則不可受, 近日吾敎會漸入迷信, 主謂神愈者, 可不藥而醫病云, 又神無中生有, 則今雖赤貧, 後必主賜爲富云. 甚虛妄矣. 自古僥倖及非分, 皆失敗無成, 世無僥倖之物, 又無僥倖之功, 吾信者當知此可矣. 吾信者當讀데살後三장十, 避勞勿食, 爲吾敎會之標語. 主曰 富入天國難矣, 此何意也? 富非罪也, 何故難入天國也, 富何嘗爲罪也? 但欲富者, 無所不爲, 欺人掠奪橫利等皆罪也. 如是害人肥己, 皆不勞而得也. 十指不動, 欺人卽得 故爲罪也. 我有萬円之通帳, 而皆流汗而得則義也. 然其中一分金, 若有寡婦之淚, 幼兒之寃則罪也. 富何嘗爲貴也? 故主言此等之富而言也. 園有丁香之樹, 其近傍之木, 皆枯死者, 以丁香木之熱也. 以上貧富所在之地, 人皆枯死, 故主言難入天國也. 保羅知此意, 故手作一業, 卽造帳之業以營生以傳道, 사도二十장 三十四, 已言之. 今人家靑年, 雖有文學政治法律等高等學識, 而皆無作業之工, 文學者欲以文學而食, 法律者欲以法律而食, 未知其他一朝有事, 無所施其工夫則將何以營生也? 故保羅時代敎育, 可謂盡美矣. 某道知事, 公退餘必營生云, 亦美擧. 吾幼時父兄敎余以織屨, 曰 世亂無屨不能行 必知造屨可也云, 此等皆營生之一般矣. 故我勞作而後可有糧, 深信勿疑可也. 成父旨又有一意, 生活必有法度之意. 何事何業非主之意則必敗, 成父旨暗指此意也. 汽車終日行之, 必由軌道, 若不由軌, 則車必顚覆, 不能行目的地. 開一花結一實, 皆神之法, 何况人事乎? 鳥巢林而魚游海, 皆神之法, 何况人生乎? 人欲妄行自以爲是, 神之存在一切否認, 出處虛妄做事乖異, 有何人能成功乎? 譬如傭人受主人付託, 做工不隨主人之指使, 妄行己志, 違其節度背其規則, 主人能給與傭直乎? 不惟不給, 必請賠償, 放逐傭人, 不復任事, 苟主招人任事, 或辰時或巳時或申時, 皆給銀二分, 此給銀, 豈非主人之意乎? 傭人無抗議之權. 吾人生于神國, 生于神恩, 其事業皆神之所監視, 따윗이曰 神在空中, 又在海底, 萬物無不總察, 觀夫萬物, 何嘗有違神者乎? 花開時必開, 葉落時必落, 動物亦然, 何者有違神者乎? 如有違之者, 不敗則死. 看夫요나不聽神諭往, 多數神使요나, 入巨魚之腹中, 요나在魚腹中, 乃發悲祈禱, 自服違命, 人皆如是, 初甚自由欲自行, 失敗無餘後, 乃欲祈禱, 乃欲悔改禮拜, 然則我之糧何在? 在乎從神旨而行, 種豆而望菽, 種菽而望豆皆非矣. 故主曰 於蒺藜不可指無花果, 其理甚明, 春種而夏耘而後, 秋有實, 幼而讀後, 壯而行之, 神旨眞理也. 人失眞理, 不可望成, 如緣木而求魚也. 故主祈文曰 願賜我今日之糧, 神不許, 則今日必無糧矣. 我之所有何莫非神有也. 古者爲人子者, 不敢有其身, 不敢私其財, 亦此意. 人之於神, 何嘗有私之者乎? 取之必由父旨, 用之必由父旨, 是成父旨, 若一違父旨, 取捨皆無自由也. 故我之糧, 任父之旨而取捨可也. 今朝鮮人之生活, 架虛鑿空, 不由法度, 不由規則, 法當流汗而食, 欲不汗而食, 法當自利而食, 欲依人而食. 法當有學而食, 欲不學而食, 奈何不窮且貧也? 是皆違父之法也. 人之嫁娶, 皆壯長而成者何也? 男女皆有生活力而後可. 今口乳者成娶, 甚矣父母之誤解也! 使子幼而不學, 幼而有妻, 不知爲父之道, 而有子女, 後至貧窮, 無奈至埋父母於是子之糧無矣. 何故? 違父之旨故也. 成父旨又有服從之意, 世人欲以非理服人, 而主則欲以眞理服人. 眞理有生命, 非理有死亡. 世人不察, 捨生命而欲從死亡, 哀哉. 小兒獻餠于主, 則主賜五千人食, 以色列從主, 主降嗎喇, 彼得從主, 得盤網之魚, 由此觀之, 主爲萬物之主, 可不順而得乎? 順之者昌, 逆之者亡, 今欲致富, 欲掠人而得之可乎? 人汨沒於未定之間, 欲以僥倖得之, 甚不可. 今朝鮮之貧乏, 皆逆理故也. 余嘗傳道于人, 則曰 余僞言得財, 不可信, 得財而後信云. 然則物皆僞乎, 甚不然. 物有理 人不知理, 故不得而已, 貪則不知理, 不貪猶知理, 故欲得物, 先知理, 其次順理是求物之方也. 彼丁抹國, 以農業冠世界, 彼知農理, 又順農理故耳. 今欲逆理而得, 不惟不得, 終必敗亡, 昔陶朱之置千金, 未聞陶朱之貪, 而陶朱知金之理, 故得金, 馬援入北地 牧牛羊, 牛羊滿谷, 馬援未嘗貪財, 而知牧理. 又順牧理故也. 一則知理, 一則順理. 人之立志, 在知理, 用力在順理. 自然有進步, 如或有障碍, 亦冒險而往而已, 故成旨有順理之意, 其中自有生涯, 踏穀之牛不網口, 彼野馬順理, 故食野花, 順理故衣人, 而可以不如彼乎? 吾等當念之. 故主曰 先求其用及其義, 亦此意也.


<성경>에 쓰인 내용들을 가지고 말씀해 보겠습니다.

사람의 범죄는 대개 먹는 것에 원인이 있습니다. 먹는 것에 유혹되어 살펴보지 않고 먹는 것이 죄입니다. 사람은 먹지 않으면 죽습니다. 그래서 백성은 먹는 것으로 하늘을 삼는다(民以食爲天)고 하였는데, 이는 먹는 것이 소중함을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세상 사람들의 낭비를 볼 것 같으면 한 번에 천금의 돈을 내고 식사를 합니다. 식탁 하나의 비용으로 가난한 사람 1년 동안 먹을 것을 당할 수 있습니다.


옛날 중국의 낙양에 부자가 있어서 하루에 만 전(錢) 가치의 음식을 먹어도 젓가락 댈 곳이 없다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죄가 없다고 못할 것입니다. 부잣집에는 술과 고기가 썩는 냄새가 나고, 길에는 굶어죽은 시체가 있습니다.’. 낭비의 폐해는 이렇게 심합니다.


조선에서 지난해 소비한 술값이 4천만 원에 가깝다고 하니 이것은 먹어서 죄를 범한 것이니 어찌 한심하지 않습니까? 먹는 물건은 모두 어디서부터 납니까? 다 노력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옛 시에 이르기를 그 누가 알 것인가? 소반 가운데 얹힌 밥이, 낱낱이 애써 노력한 결과라는 것을(誰知盤中飱 粒粒皆辛苦)이라 하였습니다.

지난 날, 서울에 사는 귀족 출신 한 사람이 어느 날 교외에 나가 거닐다가 벼가 누렇게 익은 것을 보고 무엇인지 몰라서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그 사람이 쌀나무라고 했답니다. 우리 조선이 몇 백 년을 이런 식으로 살아왔으니, 굶주리지 않으려고 하나 어찌 어렵지 않겠습니까?

옛날에 황제는 농사를 중히 여기어 몸소 밭을 갈아 백성의 본보기로 삼았고, 황후와 비빈들은 몸소 누에를 길러 백성에게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은 풍속이 경박하여져서 옛날만도 못 하게 되었으니 심하기도 합니다, 말세 풍속의 쓸모없음이여!


주께서 나는 아버지의 뜻을 이룬다라고 하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노력을 대신하겠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앞에 아버지를 말하고 주님이 지금 나도 일한다라고 한 것은 역시 노력하여 만들겠다는 말입니다. 그런즉 아버지의 뜻을 이룬다는 것은 바로 대신 노력하여 만들겠다는 뜻입니다. 노력해 만드는 것이 바로 우리의 양식입니다. 이는 주님이 새로 만들어낸 말씀이 아니고 <성경>에서 따다가 한 말입니다. 창세기 4장 19절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는다라고 한 말은 역시 노력하여 만들어야 먹을 것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다만 노력하여 만드는 일은 각각 달라서 다 같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이 노력해 만든 것은 주님께서 노력하여 만든 것과 다르나 노력하여 만들었다는 점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물건을 내려 주시더라도 사람이 노력하지 않으면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요즈음, 교회는 점점 미신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을 하나님이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약을 쓰지 않고 고치는 것이다라고 오해합니다. 또 하나님은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생겨나게 하셨으니, 지금 비록 아주 가난하더라도 뒷날 주께서 부자를 내려 주신다고 말합니다. 이는 매우 허망한 말입니다. 예로부터 요행이나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은 모두 실패하고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요행으로 얻을 수 있는 물건이 없고, 요행으로 이룰 수 있는 공적도 없습니다. 우리 신자들은 마땅히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신자들은 마땅히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을 읽고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하는 말을 교회의 표어로 삼아야 합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무슨 뜻입니까?

부자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닌데, 왜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셨을까요? 부자가 일찍이 죄 진 일이 있습니까? 단지 부자가 되려고 하면 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되어, 때로는 남을 속이고, 또 힘으로 재물을 빼앗는다든지, 이익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등의 죄가 될 일을 모두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남을 해치고 자신만 살찌게 하는 것은 모두 노력하지 않고 얻은 것이 됩니다. 열 손가락 꼼짝하지 않고 남을 속여 바로 얻었기 때문에 죄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만 원짜리 저금통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다 땀을 내어 노력해 가지고 얻은 것이면 의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한 푼의 돈에서라도 과부의 눈물이 묻은 것이거나, 어린이의 억울함이 깃들어 있으면 죄가 됩니다. 부자를 어찌 존귀하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주께서는 이런 유의 부자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동산에 정향(丁香)나무가 있는데 그 근방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말라죽습니다. 그것은 이 정향나무의 열 때문입니다. 이처럼, 부자가 있는 곳에 가면 가난한 사람이 다 말라 죽습니다. 그래서 주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뜻을 알고 손으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장막을 만드는 업으로 생활을 영위하며, 한편으로는 전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이는 곧 사도행전 20장 34절에 이미 말하였습니다.

오늘 날 청년들은 비록 문학이나 정치나 법률 등의 고등 학식을 가지고 있어도, 모두 일을 하는 공부가 없습니다. 문학자가 문학으로 먹고, 법률학자가 법률로써 먹지만, 그 밖에 다른 것을 모르면 하루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자기가 공부한 것을 써 먹을 데가 없게 됩니다. 그러면 장차, 어떻게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 당시의 교육이 가히 모두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도지사가 하루 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반드시 생업을 경영하였다고 합니다. 이 역시 좋은 본보기입니다. 내가 어릴 때 아버지나 형들이 나에게 신을 삼는 일을 가르쳐주면서 말하기를 세상에 난리가 났을 때 신발이 없으면 피난 갈 수도 없으니 반드시 신발 만드는 일은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것들이 모두 생업을 경영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노력하여 만든 뒤에 먹을 양식이 있다는 것을 깊이 믿고 의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성취시키는 데 또 한 가지의 뜻이 있으니 생활에 반드시 법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나 영업에 있어서 주님의 뜻이 아니면 반드시 패하고 맙니다.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라는 것은 암암리에 이 뜻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차가 종일 달리지만 반드시 궤도를 따라 갑니다. 만일 궤도를 벗어나면 차는 반드시 전복되어 목적지에 갈 수가 없습니다.

꽃 한 송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도 모두 하나님의 법칙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겠습니까? 새가 숲에 깃들이고, 물고기가 바다에 노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법에 따르는데, 하물며 사람의 생활이겠습니까?

사람이 욕심대로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스스로 옳다고 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일체 부인하며 나아가고, 사는 일을 헛되고 망령되게 하며, 하는 일이 이치에 어긋난다면 그 누가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비유해 보건대, 고용을 당한 사람이 주인의 부탁을 받고 일 하는데, 주인이 지시한 대로 따르지 않으며 자기 마음대로 함부로 하면서 절도와 규칙을 어긴다면 주인이 고용의 품값을 줄 수 있겠습니까? 주지 않을 뿐 아니라, 반드시 배상을 요구할 것이고, 결국에는 그 고용인을 쫓아내고, 다시는 일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로 주인이 고용인을 불러서 일을 맡기는데 아침 여덟 시나 열 시나 아니면 오후 네 시에 불러 쓰고, 돈을 두 푼씩으로 주더라도 여기서 주는 돈은 주인의 마음대로가 아니겠습니까? 고용 당한 이는 항의할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태어나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으니, 우리가 하는 일들은 모두 하나님이 감시하는 바가 됩니다. 다윗이 이르기를 하나님은 공중에 계시고, 또 바다 밑에도 계셔서 만물을 다 살펴보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만물을 살펴 볼 때 언제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이 있습니까? 꽃이 필 때가 되면 꼭 피어나고, 잎이 질 때가 되면 반드시 떨어집니다. 동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하나님을 거역합니까? 만일 거역한 자가 있다면 실패하지 않으면 죽습니다. 저 요나를 보십시오. 요나가 하나님의 깨우침을 듣지 않고 다른 데로 갔다가, 하나님의 사자에 의하여 큰 물고기의 뱃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요나는 물고기의 뱃속에서 통회하며 기도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자신의 잘못을 자복하였습니다.

사람들도 모두 이와 같아서 처음에는 매우 자유스럽게 스스로 행하고자 하지만 여지없이 실패한 뒤에는 마침내 기도하고 회개하는 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그런즉 우리의 양식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데 있습니다. 콩을 심어놓고 팥이 열리기 바라고, 팥을 심어놓고 콩 나기를 바라는 것은 모두 잘못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이르기를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한다고 하셨는데, 그 이치는 매우 분명합니다. 봄에 씨 뿌리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열매를 거두듯이, 어릴 때는 글을 읽고, 장성하여서는 실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진리입니다.


사람이 진리에서 벗어나면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緣木而求魚)과 같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도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하였는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오늘은 반드시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나의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남의 자식이 된 자는 자기 자신을 감히 사사로이 가질 수 없고, 재물도 자기 것으로 할 수가 없었는데 이 역시 기도문의 뜻과 같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언제 자신을 사사로이 가질 수 있습니까? 무엇을 가지려면, 반드시 아버지의 뜻을 받아야 하고, 그것을 쓸 때도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한 바를 이루게 하는 것입니다. 만일 한번이라도 아버지의 뜻을 어기게 되면, 모든 일을 해 나가는 데 자유가 없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내가 먹을 양식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가지든 못 가지든 해야 합니다.

지금 조선 사람의 생활은 허공에 집을 짓는 것 같아서 법도도 따르지 않고 규칙도 경유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에는 노력을 하여 먹도록 하였는데 쉽고 편하게 먹으려 하고, 법에는 자신이 벌어서 먹으라고 되어 있는데 남에게 빌붙어 먹으려고 하고, 법으로는 배우고 난 뒤에 먹으라고 하는데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먹으려고 하니, 어찌 궁색하고 가난하지 않겠습니까? 이 모두 아버지의 뜻을 어기는 일입니다.


사람이 시집가고 장가가며 모두 씩씩하게 커서 성취하게 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남녀가 모두 생활력을 가진 뒤에라야 가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젖비린내 나는 어린 사람을 결혼 시키고 있으니 심하기도 합니다. 부모님의 오해여! 자식을 어릴 때 가르치지 않고, 어릴 때 아내를 얻게 하여, 아비의 도리를 알지도 못하고 자녀를 가지게 되니, 뒷날 빈궁한데 이르러서는 자기 자식 먹일 양식이 없다고 그 부모를 땅에 묻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겠습니까? 아버지의 뜻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데는 또 복종의 뜻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그릇된 이치를 가지고 남을 복종시키려고 하지만, 주님께서는 진리로써 사람을 복종시키려고 하셨습니다. 진리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진리가 아닌 것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살펴보지 않고 생명을 버리고 죽음을 따르려고 하니 애달픕니다.

어린 아이가 주님에게 떡덩이를 바쳤습니다. 주님께서 그 떡으로 5천 명에게 먹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주를 따르니, 주께서는 만나를 내려주셨고, 베드로가 주를 따르자 그물에 가득하게 물고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볼 것 같으면, 주님은 만물의 주인이시니, 가히 순종하지 않고 그 뜻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순종하는 자 번창하고 거역하는 자 망하나니, 지금 부자가 되려고 남의 권리를 침략하여 얻어서 되겠습니까? 사람은 정해지지 않는 것을 가지고 요행으로 얻으려고 하면 매우 옳지 못합니다. 지금 조선이 빈곤하게 된 것은 모두 이치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내가 일찍이 사람들에게 전도하였는데 그 사람이 이르기를 내가 거짓말을 하여 재물을 모으려고 하니 신앙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재물을 모은 뒤에 믿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런즉 재물을 모으는데 모두 거짓으로 해야 합니까? 이는 매우 옳지 못합니다. 재물을 얻는데도 이치가 있는 것인데, 사람이 그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얻지 못할 뿐입니다. 물건을 탐내면 이치를 모르지만, 탐내지 않으면 오히려 그 이치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재물을 얻으려면 먼저 이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은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 재물을 구하는 방법이 됩니다.

저 덴마크는 농업으로 세계에 으뜸이 되고 있습니다. 저들은 농사의 이치를 알고 또 농사짓는 이치에 순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만일 이치를 거슬러서 재물을 얻으려고 한다면 얻지 못 할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반드시 패망하게 됩니다.

옛날에 도주(陶朱)라는 사람은 천금을 가지고 있어도 그가 재물에 탐냈다는 소문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곧 도주는 돈의 이치를 알고 돈을 벌었습니다. 마원(馬援)이라는 사람은 북쪽 지역에 들어가서 소와 양을 길렀는데, 소와 양이 골짜기에 가득 찼습니다. 마원은 일찍이 재물을 탐내지 않았으며, 목축하는 이치를 알고 그 목축의 이치에 순응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이치를 아는 일이고, 한 가지는 이치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뜻을 세우는 것도 이치를 알고, 그 이치에 순응하기 위해 힘을 쓰면 자연히 진보하게 되고, 만일 장애가 있더라도 위험을 무릅쓰고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뜻을 이룬다는 것은 이치에 순응한다는 말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스스로의 생애가 있는 것입니다.


곡식을 밟은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않으며, 저 들판의 말은 이치에 순종하려고 들에 있는 들꽃을 먹습니다. 이치를 순종하려고 옷을 입은 사람이 저들만 못 하여 되겠습니까? 우리들은 마땅히 그것을 생각하여야 하므로 주님께서 이르기를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한 것도 바로 이런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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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57. 주의 말씀으로 살리라(以主言生) / 마태복음 4:1-11 / 이시웅 / 087 aesan 2013.12.09 1602
70 56. 신앙(信仰) / 누가복음 17:56 / 케이블 / 086-087 aesan 2013.12.09 1308
69 55. 시기(猜忌) / 야고보서 3:16 / 김근하 / 085 aesan 2013.12.09 1637
68 54. 신자의 무장(武裝) / 에베소서 6:10-17 / 황치헌 / 084 aesan 2013.12.09 1488
67 53. 죄와 병의 치료(罪와 病의 治療) / 마태복음 18:15-20 / 김석규 / 083 aesan 2013.12.09 1423
» 52. 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我成父旨) / 요한복음 4:34 / 080-082 aesan 2013.12.09 1744